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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Jan 15. 2024

방황과 우울, 불안 속에서 밟았던 페달

프롤로그 : 일본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나는 운동을 못 하는 학생이었다.


  운동에 재능이 없어서 운동이 재밌지가 않았고, 그래서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엔 다들 하는 축구와 농구와도 거리가 멀었다. 학교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았던 적은 손에 꼽는다. 축구, 농구보다는 게임광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근육을 만들겠다며 헬스장을 끊었지만 다니는 기간은 항상 3개월을 채 가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인간관계와 학교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질 방법으로 15만 원짜리 싸구려 자전거를 구입해서 매일 타기 시작했다. 자취방에서부터 도림천을 지나 한강을 찍고 오는 데 총 20km를 여름방학 1달 남짓 동안 탔다. 그때 내겐 20km조차 버거운 운동이었지만, 기분은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던 때보다 꽤 많이 나아졌었던 것 같다.


  이후 우연히 학교에서 자전거 교양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자전거와 스포츠과학>. 수업 이름만 보면 꼭 자전거의 과학적 원리 같은 걸 배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매주 자전거를 타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매번 10km, 20km, 30km, 50km 식으로 점점 거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기말고사에는 서울에서부터 인천 앞바다까지 총 왕복 100km를 타야만 한다. 꽤 어려워 보이겠지만, 정말 천천히 가도 점심이면 인천에 도착해 다 같이 점심을 먹은 뒤 돌아오는 일정이라 사실 시험이라기보다는 나들이에 가깝다.


  기말고사는 어렵지 않게 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제주도 한 바퀴가 200km라는 말을 들었다. 의외로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수업 때 탔던 거리를 두 번만 타면 되잖아? 나는 망설임 없이 제주도행 티켓을 예매했고, 방학이 되자마자 떠났다. 혼자였지만 제주도 일주는 너무 즐거웠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검은 현무암 풍경, 웅장한 풍차도로를 가로지르며 느꼈던, 온전히 내 두 발로만 해낸 첫 자전거 여행은 이후에도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제주도 일주를 끝내고, 이후엔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종주도 떠났다. 국토종주를 끝내니 대한민국의 정해진 모든 종주 코스를 도는 그랜드슬램이 탐이 나기 시작했고, 방학 2개월 동안 모든 코스를 돌아 그랜드슬램 종주를 해냈다.


   사실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며 방학을 낭만 가득한 추억으로 채운 것은 아니었다. 공부해서 합격했던 일본 교환학생이 코로나로 인한 두 번의 파견 연기와 취소를 당했다. 하염없이 교환학생을 갈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기다렸다. 그때 기다리며 떠났던 것이 한국 국토종주였다.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조차도 막상 여행을 가면, 다리는 부러질 것만 같고,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공포, 극도의 스트레스에 부딪히다 보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수백 번은 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상하게 다시 떠나고만 싶다. 왜 자꾸 도전하게 되는 걸까? 사실 도전 뒤에 남는 것도 딱히 없다. 거창하게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든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던지 하는 흔한 여행기에서 나오는 말들을 억지로 지어내서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뭔가 스스로 도전해서 이뤘다는 성취감에 목이 말라 있었다. 졸업도 아직 하지 못한 30살 대학생. 20살부터 줄곧 도전했던 음악도 성공하지 못했다. 매번 몇 십 군데의 소속사로 보냈던 데모 음원과 이력서의 답장은 감감무소식이었고, 매월 들어오는 음원 수익이라곤 고작 몇 천 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재수 이후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인생은 내 생각대로 잘 풀리지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도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부모님의 입발린 거짓말을 철없이 믿고 성적에 맞춰서 아무 학과를 들어가니 수업에 흥미를 잃었고, 이후에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잠시나마 이뤄냈던 성취로 인테리어를 좋아해서 운영했던 인스타그램이 팔로워가 급격히 늘면서 소위 인플루언서 계정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곧바로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 이후 사실상 팔로워들을 대부분 잃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안정된 직장이라는 편안한 에어팟을 끼는데, 내 인생은 아직 주머니 속의 이어폰 줄처럼 꼬여서 풀리질 않고 있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닿을 수 있는 목표가 내게도 있다면. 내가 지금 나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학창 시절에 축구도 농구도 정말 거리가 멀었고, 운동에 재능이라고는 정말 찾아볼 수 없었던 나에게, 자전거란 그냥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하면 해낼 수 있는, 그런 나라도 해 볼만한 운동이었다. 20대 또래 중에서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사람도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실력을 겨루는 레이싱이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종주라면 체력이 되지 않아도 단지 근성과 시간, 이 두 가지만 있다면 할 수 있었다.



  군 입대를 하고 난 이후 한국은 다 돌아봤으니 이제 해외로 가자,라며 생각했던 곳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일본 종주 글들을 읽을 때마다 일본 종주에 대한 동경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군대에 있던 내내 전역을 하면 자전거로 일본 종주를 갈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며 몇 번이나 공책에 계획을 적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순찰을 나온 대대장에게도 전역 이후에 무얼 할 거냐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괜히 설렌다. 나 역시 여러 가지를 하고 싶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모두 잊어버리고 현실에 치여 살아간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의 종주 기행을 읽고 마음 한편에 하고 싶다,라는 오래되고 낯익은 감정이 깨어났다. 나도 그들처럼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떠나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이 글은 소위 요즘 말하는 ‘영업’ 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내 글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고 떠났으니까.


  인터넷에 자전거 종주기를 올리니, 사람들이 모두 '낭만'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다. 내 여행이 낭만이 있다고? 낭만이라는 게 뭘까? 자전거 종주 중 라디오처럼 들었던 영상에서 김풍 작가가 낭만에 대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낭만은 낭비를 해야 한다. 누군가 볼 때 그 걸 왜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효율과 가장 반대에 있어야 한다.’


  낭만이라는 이름의 낭비로 가득한, 일본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총 3000km를 자전거로 달리며 일기로 남겼던 나의 수많은 기록들과 감정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내 글을 읽고 일본 종주가 또 다른 이의 꿈과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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