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불안해서 페달을 밟습니다

프롤로그

by 루로우

6년 전 대학교 2학년 시절 정말 힘든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음악을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모두 방송에 출연하거나, 음원 차트에 오르는 와중에 나는 멍하니 지하 1층의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작업실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던 와중 사랑하는 사람도 날 대차게 떠나버렸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벗어던진 뒤, 나는 빨래통에 던졌다고 생각한 양말이 다음 날 묶어서 버리려던 일반 쓰레기봉투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날은 샤워를 하고 빨래통에 넣으려던 수건을 무심코 변기통에 넣으려고 하던 찰나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우울증의 핵심 증상 중 인지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우울증 초기였던 것 같다. 아무렇게나 짐과 옷들이 바닥에 널려있는 햇볕조차 들어지 않는 3평 자취방이 바로 내 정신상태였고, 자존감이 그 바닥을 기다 못해 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먼저 15만 원짜리 싸구려 자전거 한 대를 샀다.

살고 있던 곳에서 근처의 도림천을 따라서, 살기 위해서 한강까지 왕복 20km를 매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자전거가 좋아져서 지금까지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달 정도 타다가 그만두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게 내 정신적인 고통이 나아지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지도 않다. 결국 그런 고통은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어야만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음악을 그만두었던 대신 유학을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열심히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해서 몇 년 전, 게이오 대학교의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입국이 금지되었다. 언젠가는 풀어줄거란 희망을 가지고 학생비자가 열리기만을 기다렸으나, 2학기로 입학이 미루어졌음에도 끝끝내 일본은 입국 게이트를 열어주지 않았다. 1년을 날려버린 나는 눈물을 머금고 교환학생을 포기한 채 군대를 가야만 했다.

그 때 군대에 가기 전 나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여 제주도를 돌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한국 전체를 돌고 있었다. 일본을 못 갔었던 미련을 조금이나마 자전거를 타면서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항상 방황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을 때, 나는 항상 자전거로 여행을 떠났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나는 초중고 시절 내내 전혀 축구를 참여하지 않고 항상 점심 시간엔 교실에 박혀 있던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페달을 밟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100km를 가는 것도 누구나 갈 수 있다. 그저 천천히 가면, 지치면 쉬다가 가면, 중간에 멈춰서지 않는 끈기만 있다면 해낼 수 있는 운동인 것이다.




우연히 휴대폰에 있던 예전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도중 아까 이야기했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시절에, 기억도 나지 않는 인터넷에서 저장해 두었던 자전거 사진 하나가 있었다.



심지어 이 때는 자전거 여행에 아무런 관심도, 생각도 없었을 때인데... 누군가의 자전거 여행기를 인터넷에서 읽다가 저장한 것 같다. 그 당시 나를 갉아먹고 있던 우울증, 그때의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자유를 원했었는지, 왠지 모르게 자유롭고 마음에 들어서 내가 저장해 둔 것만 같았다.

2023년 9월 22일, 군대에서 전역을 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을 때, 나는 군대에서 1년 6개월 동안 그려왔던 목표인, 일본의 최북단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나의 계획은 일본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총 3000km를 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종주 첫 날 찍었던 사진에,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그곳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