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로우 Jan 15. 2024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일본 최북단으로

0일차 : 김해공항~왓카나이

  9월 22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본 종주를 떠나는 날. 전역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짐을 정리했다. 뭐 하러 그런 고생을 하러 가냐고 하셨던 어머니도 일어나셔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차려 주셨다. 아버지도 새벽에 함께 일어나셔서는, 자전거를 싣고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엄마, 잘 갔다 올게.”

  6시 40분쯤 김해공항 국제선에 도착했다. 한 손엔 짐을 눌러 담은 이불가방과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붙잡고,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누자, 나는 입대 전처럼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평일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여행을 떠나려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연인, 친구, 가족들. 각자 옹기종기 캐리어를 끌고 바쁘게 움직인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흔한 캐리어 대신 짐을 욱여넣은 이불가방과, 공항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는 사람은 정말 단 한 명, 바로 나 자신뿐이었다.

  공항은 어떤 곳일까? 모두 현실을 벗어나서, 꿈의 여행지로 떠날 준비를 하는 장소. 불행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기대감과 행복으로 가득한 장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바로 공항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매번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그랬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군대에서부터 줄곧 꿈꿔왔던 일본종주였지만, 상상 이상으로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았다. 항공편 예약부터 캠핑을 할지 말지, 한다면 무슨 캠핑 장비를 사야 할지, 자전거에 짐은 어떻게 실을지, 자전거는 어떻게 비행기로 부쳐야 하는지, 장기간 여행 시에 휴대폰은 어떤 요금제를 사용해야 할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국토종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계획적인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 실종 소식과 곰에 의한 습격 사건들이 연신 보도되고 있었다. 국토종주 때 부여에서 들개에게 쫓겨본 적도 있고, 고라니에 들이받은 적도 있던 나는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게 동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는데도, 막상 산더미 같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코 앞에 닥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왜 굳이 사서 고생해서 이런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차라리 가지 않고 돈을 아끼는 게 낫지 않을까? 곰에게 습격당하거나 사고로 실종되는 게 아닐까? 가고 싶어서 사족을 못 쓰던 마음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스트레스로 변해버린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되뇌었다.

  ‘이건 나와의 약속이야. 그렇게 항상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역하면 떠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잖아.’ 작년 겨울,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던 강원도의 최전방에서, 근무를 서며 선임과 전역 후 무얼 하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를 떠올렸다. 난 순찰을 나온 대대장 앞에서도 전역 후에 무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일본 전국을 자전거로 여행할 거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렇게 겁먹은 자신을 마치 세뇌하듯이 달래 가며, 나는 겨우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 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미리 알아봐 둔 3층의 수화물 보관 및 포장센터로 향했다. 40000원이면 업체 측에서 자전거 박스 마련과 포장을 모두 해 준다고 해서 찾아온 곳이었다.

  “자전거 포장 때문에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라고 직원에게 말을 걸자, 심드렁한 목소리로 직원은 앞바퀴와 안장을 모두 해체해 달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앞바퀴만 빼면 된다고 해서 앞바퀴 빼는 법만 연습해 왔는데? 게다가 어제 자전거 뒤에 짐을 싣기 위해 조립한 짐받이랙도 모두 다시 분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거 여행 처음부터 쉽지 않구나.

  자전거를 분해하자 직원은 무신경한 듯하면서도 능숙한 솜씨로 중요한 부분은 에어캡으로 감싼 뒤, 자전거를 상자에 집어넣고 테이프를 감았다. 포장한 박스는 정말 성인 남성 두 명 정도가 들어갈 만큼 컸다. 카트를 끌고 와서 박스를 실었는데, 부피 때문에 박스를 가로로 눕히면 사람들 이동에 방해가 될 것 같고, 세로로 세우자니 시야가 가려져 사람과 부딪힐 것만 같아서 난감했다.

  카트를 끌고 지나다니니 모두들 나를 흘겨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얼른 이 커다란 짐짝을 수하물로 보내버리기 위해 겨우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수하물 카운터로 갔다. 항공권과 여권을 건네고, 수하물 무게 측정을 하기 위해 초대형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에 낑낑대며 올렸다.

  “특수수하물 수수료 1만 원, 그리고 6kg 초과로 수수료 45000원입니다. 카드로 결제하시겠어요?”

  자전거를 부치는 데에만 총 5만 5천 원의 추가 비용을 냈다. 자전거 자체가 무겁진 않았지만, 박스를 비롯해 몇몇 캠핑 장비를 비롯해 무거운 짐까지 자전거 박스의 빈 공간에 쑤셔 넣었던 것이 문제였다.

  딩- 하고 결제 비용이 문자로 날아왔다. 자전거 포장 비용을 합쳐서 공항에서 벌써 10만 원이 허공에서 공중분해되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거니와, 공항에서부터 돈 문제로 스트레스받고 싶진 않았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어김없이 자포자기하고 돈을 막 써 버리는 경향이 고쳐지지 않은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지만, 복잡한 준비 과정과 종주에 대한 부담감에 이미 머리가 과부하 상태인 것만 같았다.

  짐이 사라지자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출발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바로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에 왔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인적이 없는 구석진 곳에 가서, 얼마 전 구입했던 액션캠을 꺼내 나름 여행 브이로그라고 영상을 찍어 보았다. “어… 저는 지금 김해공항에서… 김해공항 출국장에 왔습니다.” 30초 영상을 찍는 데 10번 이상 영상을 찍고 지우길 반복했다. 여행 유튜버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많은 여행 브이로그에서 왜 말을 하지 않고 자막만 올리는지 직접 찍어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곧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기는 시간에 맞춰서 9시에 출발했다. 심심할 때 보기 위해 넷플릭스 오프라인 콘텐츠를 몇 개 저장해 두고 비행기에 탔지만, 잠을 적게 자서 그런지 내내 삿포로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잠만 잤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서 내리자, 이제야 내가 일본에 왔다는 것이 비로소 체감이 된다. 역시 입국장에서 나올 때 내가 외국에 왔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일본 종주가 며칠이 걸릴지 모르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매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입국 심사 질문이 길게 이어졌다. 다행히 11월 즈음 후쿠오카에서 배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 하나로도 통과할 수 있었다.


  처음엔 버스와 전철을 고려했으나, 최북단인 왓카나이로도 비행기로 가기로 했다. 이미 포장된 자전거 박스를 한 번 더 수하물로 부치면 그만이었다. 자전거 박스는 일반 수하물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직접 들고 나왔고, 나는 곧장 다시 카트에 박스를 싣고 국내선 수하물 카운터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물론이었다.)


  국제선이 아닌 일본의 국내선에 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역시 일본 국내선이다 보니 한국어 안내문도 없거니와, 카운터에 외국인 한 명 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항공사 수하물 카운터로 가서 나는 거대한 부피의 자전거 상자와 함께 겨우 대기줄 통로를 통과해서 카운터 앞에 왔다.

  “이 짐도 함께 실으려고 하는데요. 가능할까요?”

  라고 직원에게 묻자, 직원은 난생 이만한 박스를 부치는 경우를 처음 봤다는 듯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다른 직원을 부르고, 이윽고 그 직원이 점점 늘어나더니 직원 4명이 내 카운터에 와 있었다.

  “무게는 괜찮은데… 사이즈 때문에 한 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직원은 박스를 줄자로 재고는 전화로 가능한 사이즈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꼭 나 하나 때문에 이 박스를 어떻게 해야 하나 직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회의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직원 한 명이 왔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 직원이었다.

  “아직 연락을 기다려 봐야 하는데, 비행기가 작다 보니 수하물이 안 들어갈 수도 있어서요. 혹시나 안되면 택배로 부치시는 방법 밖에 없어요.”

  또다시 골치가 아파왔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실을 수 있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김해공항에서 자전거 해체하고 추가비용까지 낸 것도 고통스러웠는데… 온 세상의 불운이 여정의 도처에서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항공사 측에서 안내한 사이즈가 있을 것이고, 준비성 없이 내가 자전거 박스 사이즈를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온 것뿐이다. 내 잘못인데 웬 불운을 탓하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는 확답이 오는 데에만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정말 다행히도, 비행기에 실을 수 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죄송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해야 한다며, 테이프를 자르고 확인 후 다시 테이프로 박스를 포장해 주었다. 오히려 불운이 아니라 한국인 직원이라는 행운 덕분에 무사히 일본 국내선 수속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왓카나이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잠깐 여유롭게 시간이 남아서 점심으로 새우라멘을 먹었다. 새우가 올려져 있는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고명으로 다진 새우살이 얹혀 있는, 건새우 향이 풍기는 돈코츠 국물 베이스의 라멘이었다. 새우살의 식감이 너무 재밌고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라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왓카나이행 탑승장엔 정말 사람이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들 삿포로로 출장이나 여행 온 정도의 왓카나이 사람 정도겠지. 여기서 나처럼 종주 같은 이유로 왓카나이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이윽고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왜 직원이 비행기에 자전거 박스를 싣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입구에서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비행기가 작았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작은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것만 같았다.

  삿포로에서 왓카나이는 1시간도 안 돼서 도착하는 거리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홋카이도는, 조그마한 마을이나 경작지를 제외하고는 온통 짙은 초록색의 울창한 숲과 산지로 뒤덮여 있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곰에 대해, 특히 홋카이도에 곰이 많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이러니 곰이 많을 수밖에 없지…’라고 느껴졌다. 바다를 따라 쭉 뻗은 드라이브 코스가 보인다. 내가 내일 저기를 달리고 있겠구나… 얼마나 걸릴까…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한 승무원 분이 오더니 뜬금없이 내게 한국어로 “한국 분이세요?”라고 물었다. “아, 네.”하고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서투른 한국어로

  “한국어는 조금 할 수 있어요. 여기 왓카나이는 뭐 하러 오셨어요?”

  라고 물었다. 내가 느끼기엔 굳이 홋카이도에서도 왓카나이를 왜 한국인이 갈까라는 뉘앙스가 담긴 듯한 물음이었다. 나는 멋쩍게 자전거를 타고 일본 전국을 돌 거라고 대답하니 그녀는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기념으로 내게 ANA 항공이 적혀 있던 경치 사진엽서 몇 장과 사탕을 선물로 주었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기내에 탄 승객 모두에게 주는 선물같은

것 같지는 않아서 기분이 은근 좋아졌다.

  “꼭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본 종주에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화이팅!”


  왓카나이 공항은 내가 본 공항 중에서 제일 작았다. 공항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사실 마을 동사무소라고 해도 믿을 만한 크기의 1층짜리 건물이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마지막 비행기였는지, 이미 공항 건물엔 단 한 명의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서 박스에서 자전거를 겨우 꺼냈다. 이제 자전거 조립을 해야만 했다. 아까 해체한 짐받이 랙도 다시 조립하고, 각종 자전거에 실을 가방을 전부 고정시켜야 한다. 처음 자전거에 패킹을 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한국에서 한 번 해보고 올 걸. 4시 반에 도착했는데 자전거 조립 및 짐가방 정리를 모두 마치니 시간은 저녁 6시, 해가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를 생각 못 했다. 검색해 보니 13km… 1시간 가까이 꽤 라이딩을 해야만 하는 거리였다. 다른 방도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어둠을 뚫고 달려서 숙소까지 가야만 한다. 야간라이딩은 위험하니 이번 종주에서는 해가 지면 무조건 숙소에 들어가자,라고 정했는데, 종주 시작 첫날부터 그 말이 무색하게 야간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왓카나이까지 가는 길은 마을 하나 없어서 정말 어두웠다. 하나둘씩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리도 밝아지고 이윽고 시내에 들어섰다. 구글지도를 확인해 가며, 미리 한국에서 어플로 예약해 두었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어디에 둘 지 몰라서, 건물 벽에 대충 세워두곤 문을 열고 카운터에 갔다. 카운터에는 2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앳되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아, 혼자서 오셨어요?”

  이 여자도 갑자기 대뜸 내게 한국어를 하길래 나는 놀라서 “한국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어보니, 이화여대에 유학을 다녀온 적 있다고 대답했다. 벌써 오늘만 두 번째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을 만나다니, 그것도 이런 외진 곳에서. 새삼 요즘 일본에서의 K 열풍을 체감하는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제가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요… 자전거를 둘 곳이…”

라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입구 옆에 있던 차고를 안내해 주면서 자전거 주차 비용으로 500엔이 든다고 말을 했다. 아니, 자전거 하나 두는 데에 5000원이나 내라고? 다른 주차할 곳은 없냐고 물으니 차고가 아니면 그냥 인도에 세워둘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매뉴얼대로 하는 거겠지만 내심 그 아르바이트생이 야박하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깝지만 500엔을 내고 자전거를 차고에 세워 두었다.

  체크인을 하자 짐은 로비에 전부 풀어둔 채, 씻기도 전에 숙소를 나와 근처의 편의점에 향했다. 공항에서 먹은 라멘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 배가 고팠다. 편의점 이름은 세이코마트(Seico Mart)였는데, 홋카이도에만 있는 편의점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기왕 홋카이도에 왔으니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고르고, 저녁으로 먹을 돈카츠 도시락을 골라서 숙소로 돌아왔다.

  기대와 달리 도시락 맛과 과자 맛 모두 한국에서 먹어본 듯한 익숙한 맛이었다. 홋카이도에 와서 들뜬 기분에 은근 김이 샜다. 콘 아이스크림이 콘의 속까지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이었으면 텅 비어있었을 텐데.

  잠시 자전거에 물건을 꺼내러 차고로 갔을 때, 6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오셔서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바이크를 타고 오셨고 바이크로 홋카이도 종주를 오늘 마쳤다고 하셨다. 홋카이도 종주를 하냐고 묻자, 일본 종주를 한다고 하니 놀라시면서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일본 분들의 감사한 응원을 받게 되다니…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여행인데 말이다.

  자기 전, 내일 목적지와 숙박 장소를 알아보았다. 왓카나이 근처에는 정말 작은 마을조차도 지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일본의 최북단에서 시작하기 위해, 왓카나이보다 더 북쪽인 소야곶으로 간 뒤 다시 그곳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사실상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가 종주의 시작이었다. 홋카이도엔 어떤 풍경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이렇게 멋있게 쓰려고 했지만, 이런 낭만과 기대에 부푼 마음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안전하게만 타자. 사고만 나지 말자.'


이전 01화 방황과 우울, 불안 속에서 밟았던 페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