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일본 최북단으로

0일 차 : 부산~왓카나이

by 루로우


“엄마. 조심해서 잘 갔다 올게.”


전역 후ᅠ정확히 일주일 뒤 일본으로 출발했다. 준비할 때부터 뭐 하러 그런 고생을 하러 가냐고 하셨었던 어머니도 새벽녘부터 일어나셔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차려 주셨다.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신 아버지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전역을 하고ᅠ모처럼 가족 품으로 돌아왔는데, 마치ᅠ입대 직전처럼 가족과 떨어져서ᅠ다시 혼자가 되었다.


김해공항은 평일 새벽임에도ᅠ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연인, 친구, 가족. 각자 옹기종기 캐리어를 끌고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ᅠ캐리어 대신ᅠ공항 실내에 커다란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다. 공항이란 내겐ᅠ불행도 슬픔도 없는, 오직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한 장소였다(크리스마스의 케빈 가족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를 꼽으라고 묻는다면 바로 공항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게 공항은 행복한 장소가 아니었다.


군대에서부터 줄곧 일본 종주를 꿈꿨지만,ᅠ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것은ᅠ상상 이상으로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속옷 여벌과 휴대폰 하나만 챙겨 떠났던 3박 4일 도쿄나 오사카 여행과는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한 달 이상 일본에 머무를 예정이었기에, 장기간 휴대폰 요금제에서부터ᅠ캠핑을 할지 말지, 한다면 무슨 캠핑 장비를 사야 할지, 자전거에 짐은 어떻게 실어야 하는지, 자전거는 어떻게 비행기로 부쳐야 하는지….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인 실종 소식을 비롯해ᅠ곰에 의한 습격 사건들이 연신 보도되고 있었다. 혹시 일본에서 곰에게 습격당하거나, 사고로 실종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염원해 오던 여행이었는데도, 막상 산더미 같은 준비해야 할 일들과 걱정거리가 코앞에 닥치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며 이런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차라리 가지 않고 군에서 모았던 적금은 아끼는 게 낫지 않을까? 가고 싶어서 사족을 못 쓰던 마음이, 이렇게 하루아침 만에 바뀐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나와의 약속이야. 그렇게 항상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역하면 떠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잖아.’


그렇게ᅠ나 자신을 마치 세뇌하듯 달래 가며 겨우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 왔다. 지난날 일기장에 적어 둔 목표와 버킷리스트들을 수도 없이 어겨왔다. 토플 100점, 바디 프로필 찍기, 재즈 피아노 배우기… 그중 성공했던 것이, 지켰던 것이 과연 몇이나ᅠ될까.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그렇게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를ᅠ질책했지만ᅠ나 자신과 했던 약속에는 정작 그렇지 못했다.


나는 군대에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전역 후 곧바로 일본으로 떠나겠다고. 두렵지만 무작정 발을 떼고ᅠ일단은 출발했다. 이번만큼은ᅠ과거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만 싶었다.




미리 알아본 공항의 포장 업체에 찾아가 자전거 포장을 맡겼다. 카트에 실은 거대한 자전거 박스는 공항에서 본의 아니게 이목을 끌 만했다. 너무 커서 앞이 보이지 않아 사람과 부딪힐까 조심해서 움직였다. 겨우겨우 수하물을 부치고 나서 짐이 사라지자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윽고 삿포로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오전 9시 비행기에 올라탔다. 어젯밤 잠을 거의 못 자서ᅠ그런지, 비행기에서 눈을 감고 눈을 뜨자 일본이었다. 입국 심사대에서는 내가 돌아오는 배편이나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지 않아서 질문이 꽤 길게 이어졌다. 종주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예매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를 수상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11월쯤 후쿠오카에서 배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 하나로 통과할 수 있었다.


삿포로에 머물 틈도 없이ᅠ최북단 왓카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미 포장된 자전거 박스는 다시 그대로 수하물로 부치면 그만이었다. 일본 국내선을 타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국내선이다 보니ᅠ한국어 안내문도 전혀 없거니와, 카운터에는 외국인 관광객 한 명 조차 보기 어려웠다. 거대한 자전거 상자와 함께, 대기줄 펜스를 밀치다시피 통과하여 수속 카운터 앞에 도착했다.

“이 짐도 함께 실으려고 하는데요. 가능할까요?”


직원은 이런 큰 박스를 비행기에 부치는 고객은 난생처음 봤다는 듯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다른 직원을 불렀다. 이윽고 직원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무려 직원 4명이 와서 ‘이 박스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중대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무게는 괜찮은데… 사이즈 때문에 한 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직원은 박스를 줄자로 재고는 전화로 실을 수 있는 사이즈를 한참 동안 알아보는 듯했다. 얼마 뒤 또 다른 직원 한 명이 걸어왔다. “혹시 어떤 문제세요?” 그녀는 한국어로 내게 물었다. 알고 보니 나를 위해 한국인 직원을 부른 것이었다! 회화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일본어가 길어지면 알아듣기 어려웠던 내게는 한 명의 구세주가 찾아온 셈이었다.


“아직 연락을 기다려 봐야 하는데, 비행기가 작다 보니 수하물이 안 들어갈 수도 있어서요. 혹시나 안되면 택배로 부치시는 방법밖에 없어요.”


아니, 비행기가 작아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초장부터 엄청난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에서 올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하지만 항공사 측에서 안내한 수하물 사이즈가 있을 것이고, 준비 없이 내가 사이즈가 맞는지 알아보지 않고 온 것뿐이었다. 내 잘못인데, 웬 불운을 탓하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전거를 실을 수 있길, 두 손 모아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확답이 오는 데에는 장장 1시간이나 걸렸다. 무려 1시간 동안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다행히도 비행기에 실을 수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져 왔다. 오히려 불운이 아니라, 한국인 직원이라는 행운 덕분에 무사히 수속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자전거를 수하물로 부치고, 뒤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왓카나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왜 직원이 비행기에 자전거 박스를 싣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입구에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작은 초소형 비행기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작은 비행기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삿포로에서 왓카나이는 1시간도 안 돼서 도착하는 거리다. 상공에서 바라본 홋카이도는 드문드문 조그마한 마을이나 경작지를 제외하고는, 온통 짙은 초록색의 울창한 숲과 산지로 뒤덮인 대자연 그 자체였다. 홋카이도에는 불곰이 많이 산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정말 불곰이 살기에 좋은 천혜의 환경인 것이다. 바다를 따라 쭉 뻗은 드라이브 코스가 보였다. 바로 저곳이 내일 내가 달리고 있을 길이었다. 비행기로 온 이 길을, 다시 자전거로 돌아오기까지는 과연 며칠이나 걸릴까….


“한국 분이세요?”


갑자기 여성 승무원이 오더니, 밝은 미소와 함께 뜬금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놀라웠던 것은 승무원이 말한 것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였던 것이었다.


“아, 네.”하고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녀는 서투른 한국어로 내게 물었다.


“예전에 공부해서 한국어 조금 할 수 있어요. 왓카나이는 뭐 하러 오셨어요?”


삿포로도 아닌,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에 왜 한국인이 왔을까?라는 듯한 물음이었다.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자전거를 타고 일본 종주를 할ᅠ거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칭찬받으려고 말한 건 아니지만 머쓱한 기분이다.


그녀는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기념으로 내게 ANA 항공이 적혀 있던 경치 사진엽서 몇 장과 사탕을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기내에 탄 승객 모두에게 주는 선물인 것ᅠ같지는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꼭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본 종주에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파이팅!”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야, 좀 더 그 여성 승무원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해볼 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역시 남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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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카나이 공항은 타고 온 비행기와도 잘 어울릴 정도로, 내가 본 공항 중에서 가장 작았다. 공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은 왓카나이 동사무소라고 해도 믿을 만한 크기의 1층짜리 건물이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마지막 비행기였는지 공항 내부는 휑한 기운만 감돌고ᅠ직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 밖으로 나와서 박스에서 자전거를 겨우 꺼냈다. 자전거 조립을 해야만 했다. 짐받이도 다시 조립하고, 각종 가방을 전부 자전거에 고정해야 한다. 바이크 패킹이 처음이라ᅠ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국에서 한 번 해보고 올 걸. 4시 반에 도착했는데 패킹을 모두 마치자 어느덧ᅠ주위가 어둑해진 저녁 6시였다.


‘우왓.’


자전거에 올라탄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휘청대었다. 무거운 짐을 매달아서 평소의 자전거와는 무게감이 달랐다. 겨우 중심을 잡은 채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으며 공항 앞을 빠져나왔다.


막연히 시내와 가까울 거라 생각하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왓카나이의 시내까지 거리는 13킬로였다. 느린 속도면 1시간 가까이 라이딩을 해야 하는 거리다. 다른 교통수단 따위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어둠을 뚫고 달려서 숙소까지 가야만 했다. 이번 종주에서는 해가 지면 라이딩을 멈추고ᅠ무조건 숙소에 들어가자고 정했는데, 정말 종주 시작 첫날부터 그 말이 무색하게도 야간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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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카나이는 인구 3만 명의 도시로, 한국으로 따지면 강원도의 인제나 전라남도의 곡성에 온 격이었다. 거리는 저녁 7시임에도 간간이 불이 켜져 있는 가게 이외에는 한산했다. 이윽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카운터에는 2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앳돼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내게 체크인 시 작성할 용지와 함께 여권을 달라고 말했다.


“아, 혼자서 오셨어요?”


그녀가 갑자기 대뜸 한국어로 내게 질문했다. 깜짝 놀라서 “한국어 할 줄 아세요?”라고 내가 묻자, 그녀는 이화여대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 있다고 대답했다. 벌써 오늘만 두 명씩이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을 만났다. 새삼 말로만 듣던 K 열풍을 이런 일본의 외진 도시에서도 체감할 줄이야.


도미토리에 누워 자기 전 미리ᅠ내일 코스를 확인했다. 일본의 최북단에서 시작하기 위해, 왓카나이보다 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소야곶으로 간 뒤에 다시 그곳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사실상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가 일본 종주의 시작이었다.


홋카이도엔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렇게 멋있게 쓰려고 했지만, 이런 낭만과 기대에 부푼 마음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안전하게만 타자. 제발 사고만 나지 말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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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2524015861021528_20231003222718631.HEIC 첫날 묵었던 왓카나이 더 스테이에서



https://blog.naver.com/ywhfrv/22322382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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