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소야곶~오로론라인
게스트하우스의 2층 침대는 위층 사람이 조금만 뒤척여도 심히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이러한 층간 소음 문제로 잠을 제대로 못 잔 그 와중에 새벽 6시부터는 한 일본 사람들이 열심히 대화를 하는 소리가 도미토리 룸을 울렸다. 아니, 도미토리 룸에서 대체 왜 저렇게 크게 떠드는 걸까? 결국 잠들지 못하고 나도 마지못해 일어나서 출발을 준비했다.
그래도 그 아저씨들 덕분에 빈둥대지 않고 일찍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오랜만에 쫄쫄이를 입었다. 어찌 보면 벌써 일본에 온 지 이틀차였지만, 어제는 쭉 내내 비행기로 이동만 했었고 오늘부터가 제대로 된 일본 종주의 시작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자, 어젯밤의 어둡고 적막했던 거리는 맑은 하늘 아래 평온하고 조용한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최북단 지점인 소야곶은 여기서부터 30km만큼 떨어져 있다. 단지 시작점까지 가기 위해서 무려 30km를 타야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최북단에서 시작하여 자전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갈 때 다시 이 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왕복 60km를 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왓카나이에서 그냥 바로 출발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최북단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일종의 곤조가 있었다. 그래도 최북단은 찍고 가야 간지가 나지.
시내를 지나 다시 어제 공항에서 왔던 똑같은 길로 되돌아갔다. 공항 부근을 지나자 어제 밤늦게(사실 저녁 6시였다) 어두캄캄해서 보지 못했던 넓고 푸르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라페루즈 해협'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다. 음, 저기가 러시아군.
바다를 끼고 뻗어있는 왓카나이의 국도가 시선 끝에 있는 해안선의 먼 곳까지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져 있었다. 저 해안선 끝이 소야곶일까? 아니면 저 끝을 넘어도 더 가야 할까?
소야곶으로 가는 길엔 사슴에 관한 경고나 표지판이 정말 많다. 한국의 고라니나 일본의 꽃사슴이나 차로 뛰어드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는 국토종주 중에 억새밭에서 튀어나온 고라니와 부딪혀 사고가 났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부디 그런 일이 제발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간간히 나를 제치고 달리는 차량들과 함께 라페루즈 해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전역 후 장장 2년 만의 장거리 라이딩이다. 30km임에도 첫 라이딩이라서 그런지 시원한 경치에 시선을 빼앗긴 채 라이딩을 하다 보니 금새 소야곶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에서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마치 이전에 와 본 것처럼 단번에 소야곶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일본 국토 최북단을 기념하는 삼각형 형태의 기념비와 홋카이도 탐험가라는 마미야의 동상이 보였다. 도착 직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윽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줄을 서서 돌아가면서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었다.
신기하게도 중국인과 서양인은 많았는데 한국인은 정말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나운 배기음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온 일본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이크로 홋카이도 일주를 하는 사람들 같았다. 용기를 내어 “어디서 왔어요?”라고 일본어로 묻자, 그들은 치토세에서 왔다고 대답하며 내게도 어디로 가냐고 되묻길래, 자전거로 가고시마까지 갈 거라고 하자, 일본 특유의 “에~”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들이 바이크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중국인 아줌마들도 돌아가면서 바이크와 사진을 찍느라고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의 사진 역시 중국인들이 구도까지 내게 코칭하며 멋지게 찍어주었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 뭐라도 여기서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소야곶의 ‘최남단 라멘’이라는 리뷰의 한 마디에 꽂혀서 들어간 식당은 '마메야도'라는 라멘 가게였다. 주문했던 가리비 시오라멘에는, 일반적인 돼지 차슈 대신에 커다란 가리비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시원한 가리비 국물이 일품이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할 때에도 바이크 일행과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실상 이제부터 제대로 된 일본 종주의 시작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남쪽으로 가려면 일단 30km의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왓카나이 시내로 간 후, 더 서쪽으로 나가야만 한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강해져 소야곶으로 가던 길보다 바다가 더욱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다소 거세어서 쌀쌀했지만 따가운 햇살과 중화되는 느낌이었다. 시내에 도착해서는 간단하게 맥도날드에서 세트 메뉴 하나를 시켜 먹고, 편의점에서 빵 두 개와 우유를 골랐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끼보다도 너무 적은 양이었다. 빵 두개랑 우유로 내일 아침 라이딩까지 버텨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 70km는 편의점이 없을 예정이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바람에 장거리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길마다 편의점이 많아서 어딜 가도 밥 굶는 일이 없었기에...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조그마한 언덕을 넘는 순간, 지평선 너머에 마치 후지산의 쌍둥이 형제처럼 서 있는 웅장한 리시리 산의 모습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휘감고 뻗어져 있는 긴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부터가 그 유명한 오로론 라인이었다. 오로론 라인은 왓카나이에서 쭉 동해바다를 이어진 국도의 명칭인데, 홋카이도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그 명성처럼 역시 보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는 풍경이었다.
남쪽으로 쭉 뻗은, 아무 장애물도 건물도 보이지 않는 끝없이 이어진 오로론라인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가던 도중 나는 갑자기 뭔가를 느끼고 자전거를 멈추고 뒤로 돌아보았다. 사슴이었다. 자전거를 멈추자, 사슴도 움직임을 멈춘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나 한참을 보았는데 사슴도 한참을 나를 쳐다보길래,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내게 달려와서 부딪히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석양이 드리워질 즈음, 목적지인 ‘코호네의 집’이라는 전망대 겸 쉼터에 도착했다. 3대 정도 차량이 주차장에 보였다. 모두 전망대와 바닷가에서 경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세워둔 차량이었다.
바닷가로 걸어나가자, 지는 석양과 함께 탄성이 나오는 절경이 펼쳐졌다.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바다 너머 웅장하게 우뚝 서 있는 리시리 산의 모습… 점점 빨갛게 물들어가는 하늘. 나는 한참을 넋을 놓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경치에 넋이 나가있던 동안 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고, 곧 어둠이 마중을 나올 것이기에 결국 나는 이곳에서 캠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층짜리 건물의 전망대 옥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민폐이긴 하지만 해도 졌는데, 이제 전망대에 올라 올 사람도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옥상에서 텐트를 폈다. 코호네의 집 현관에는 ‘시설 주위에서 X월 XX일 곰이 목격됨’이라는 무시무시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차장 쪽에 텐트를 치기엔 사방이 열려 있어 너무 위험한 것 같았다. 이곳은 반경 10km 내로 아무것도 없는, 정말 자연의 한복판이었다. 그래서 곰이 옥상에는 올라오진 않지 않을까, 하고 옥상을 선택한 것이었다.
텐트를 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텐트 치는 법'을 검색해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치느라 꽤 시간이 걸렸다. 텐트를 치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이 정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저녁 6시 반인데도 주변 가로등 몇 개를 제외하고는, 360도 모든 방향에서 어떤 인공적인 불빛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석양과 함께 붉게 일렁이던 바다도, 암흑에 뒤덮여 거센 파도소리만 마치 깊은 동굴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내 귓가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공포가 엄습해왔다. 생각해 보니 미친 짓이었다. 보통 일본 종주 중 캠핑하는 글에서 이런 휴게소 주차장에서 텐트를 치고 많이 잔다고 해서 온 건데, 사실 거기서 말하는 휴게소란 많은 차가 다니는 국도변 휴게소 주차장을 말하는 것이지, 이런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외딴곳에서, 그것도 혼자 캠핑을 하는 미친놈이 누가 있을지 싶었다. 정말 곰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캠핑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데 이미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오히려 더 위험하고 늦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좁은 텐트에 엉거주춤 몸을 집어넣었다. 1인용이다 보니 성인 남성 한명이 누울 공간 뿐이었다. 바닷가에다가 옥상이어서 그런지 거센 바람이 텐트 천막을 두들겼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탁, 탁, 탁... 이런 시간에 전망대 위에 대체 누가 올라오는 걸까? 아니, 곰은 설마 아니겠지? 하고 텐트 지퍼를 조심스레 열고 바깥을 보았다. 휴대폰 불빛이 함께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었다. 혹시나 관리인일까 봐 “아,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내게
“아, 괜찮아요. 여기 주변에 곰이 나온다고 하는데 조심하세요.”
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내려가버렸다. 아니, 왜 그런 알고 있는 무서운 사실을 한번 더 상기시켜 주는지… 도대체 누구지?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면서 아래를 보자 해안가 쪽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카메라였다. 출사를 온 사람이었다.
용기를 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별 사진 찍으시는 거예요?”하고 말을 걸었다.
그는 맞다고 대답했다.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다고 한다. 취미라고 해도 이런 외진 곳, 이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왔다니. 사진에 대해 보통 진심이 아닌 듯해 보였다. 사진이 궁금해져서 인스타그램을 물어보니 보여준 인스타그램에는, 별 사진 이외에 사슴 등 여러 다양한 사진이 있었다. 몇 마디를 나누다가 각자 응원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옥상에 있던 텐트로 돌아왔다. 밑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자 큰 안심이 되었다. 혼자 여기 머물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 사람이 떠나지 않길 바랐지만 아마 별 사진을 조금 찍다가 차를 타고 다시 떠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두워진 후엔 텐트에 들어가 있느라 하늘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때 본 별하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별이 보였던 것 같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이라는 표현이 왜 생겼는지, 이런 하늘을 보고 말하는 거구나…. 군대의 최전방 오지에서 근무할 때에도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잘만 하면 은하수도 보일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별이 많으면 휴대폰에도 별이 찍히겠다.'
‘아이폰 별 찍는 법’을 검색했다. 삼각대에 휴대폰을 고정시키고, 노출 시간을 늘리면 된다고 한다. 검색 결과대로 사진을 찍어보니, 정말 저장된 사진에는 밤하늘 위에 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인생 처음으로 찍은 별 사진이었다.
별 사진을 찍은 기쁨도 잠시, 텐트에 들어가 눕자 또다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패드로 영상이라도 보면서 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떼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폰을 끼기엔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무섭고, 소리를 켜고 보자니 주변에 소리가 들릴까 봐 무서웠다. 오늘 제공되는 휴대폰 데이터도 이미 다 떨어졌다.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저녁 8시부터 눈을 붙였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좀처럼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시끄럽다기보다는 꼭 누군가가 텐트를 두드리는 것만 같아서 더 무서웠다. 저녁으로 사 온 빵과 우유도 먹지 않고 굶었다. 혹시나 곰이 냄새를 맡고 올까 봐서...
그러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밤 12시가 되자 바람이 귀신같이 멈추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때부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추위였다. 따뜻하다는 패브릭 침낭을 골랐지만, 경량은 결국 경량이었다. 입고 있던 옷은 가져온 히트텍 하나와 반바지가 전부였다. 텐트 안에는 냉기가 서렸다. 온몸을 벌벌 떨면서 간신히 휴대폰으로 기온을 확인하니 12도였다. 그제야 내가 지금 러시아 위도와 같은 위도에 있구나, 나는 러시아에서 이런 텐트에서 지금 노숙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군대에서 하던 철야 훈련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역을 얼마 전에 했는데 훈련을 스스로 하고 있는 듯한 내 꼴에 웃음이 나왔다.
암흑과 고요를 뚫고 때때로 오로론 라인에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갈증과 동시에 소변이 마려워 참을 수가 없어서 추위를 무릅쓰고 내려갔는데, 마침 자판기를 이용하러 주차장에 들렀던 사람이 날 보고 깜짝 놀랐는지 “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하긴, 이런 외진 곳에서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데, 전망대 계단에서 무슨 집에서 나오는 차림의 남성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면 당연히 나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 같았다.
누워 있는 내내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곰이 정말 옥상 위로도 올라오면 어쩌지? 그럼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하나? 텐트 천장에는 결로가 생겨서 물방울들이 천을 타고 흘러내렸다. 텐트 가장자리에는 이미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결로가 고여 있었다. 침낭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이 오기만을, 차라리 잠이 몰려와서 정신을 잃기만을 바랬다. 곰이 텐트를 서성거리며 노크하지 않기를 빌면서, 이 두려움에 깨어있자느니 기절해서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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