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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약

by 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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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튜브에서 커피 관련 영상을 우연히 보던 도중, 너무 해보고 싶어 덜컥 무인양품에서 커피 드리퍼와 커피 그라인더를 구입했다.


그렇게 이제 뭐가 필요하나, 원두는 뭘 사야 하나 알아보다 보면 별의별 전문용어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또 다른 별세상이 펼쳐진다. 내가 좋아서 산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한 번, 영상을 보았던 일 때문에 돈도 쓰고 할 일이 늘어난 셈인 것이다. 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커피 제품을 구입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릴없이 인스타 스토리를 둘러보다가 어떤 책 광고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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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 여기 어디서 본 건물인데.....'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작년 일본에서 자전거 종주를 할 때 지나갔던 곳이었다. 히로시마 근처에 있는 시모세 미술관이라는 곳인데, 당시에도 이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도중 들르고 갈지, 그냥 지나칠지 망설이고 있었다. 시간은 해 질 녘이었다. 숙소에 저녁까진 도착해야 하는데, 이미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저녁에 미술관을 가봤자 예쁠 것 같지도 않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막상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 조금 무리해서라도 가 볼걸...'이라고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지나 온 이후 시모세 미술관은 2024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다카마쓰 여행을 계획하며 히로시마로 이동해 저 미술관을 가려고 하고 있다.


이 미술관을 몰랐더라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냥 저 장소를 찾아보지도 않고 몰랐다면 어땠을까. 커피 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지도에 많은 곳들을 보다가, 이곳도 저곳도 방문하려고 방문하다 보면 결국 목표로 가는 발걸음은 느려져만 갔다. 그러다 어느새 그 목표도 잊어버리고, 본인이 가졌던 신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념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다른 길로 빠져서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은 사람, 혹은 잘 풀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고개를 돌릴 때, 혹은 지도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자신에게 생길 후회를 늘리는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가보지 않으면 결국 후회만 남을 그 지도의 장소들. 그 지도는 SNS, 숏폼, 커뮤니티, 심지어 하면 좋다는 독서가 될 수도 있다. 읽고 배우고 경험하다 보면 생기는 취향들, 먹어야 하고, 가야 하고, 해야 한다는 것들, 심지어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것들마저도 과연 알아가는 게 좋은 것이긴 할까?


어릴 때는 뭔가 배우려고, 뭐라도 하나라도 더 경험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했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과연 정답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나만 진득이 판 사람은 다른 경험을 많이 못해봐서 아쉽다고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하나만 진득이 팔 걸, 하고 후회하는 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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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곳을 '가고 싶은 곳', '즐겨찾기'에 저장해 버린 바람에, 버킷리스트에 써둔 바람에, 아니면 유행한다는 소위 '갓생'을 살기 위해 해야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지도를 너무 들여다보다가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좋은 것을 알아버리면 문득 겁부터 나기 시작한다. 좋은 것을 알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무지가 때로는 약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가보지 못한 곳들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들을 고개를 쭉 빼민채 두리번거리며 선택지를 쌓고 또 쌓고 쌓아가다 보니 결국 그 길을 가보지 못했다는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만 가득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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