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름방학

2.아빠 절친의 큰형님

by 힐링작업소

아빠의 절친의 큰형님


초딩5학년 시절, 극성스레 높은 축대에서 까불다가 추락, 일주일간 의식이 없다 깨어난 아이. 성적 떨어져 혼이 나도 또박또박 말대꾸해서 엄마의 염장에 불을 지르던 아이. 그래도 마음은 착해서 콩나물 두부 심부름을 마다 않고 언덕밑 수퍼와 언덕 꼭대기 집을 오르락내리락 거렸던 아이. 그게 나다. 부모곁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나는 아빠의 제안에 손을 번쩍 들고는 결국 여름방학을 온양에 위치한 아빠의 절친의 큰형님댁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 집은 작은 약방을 운영하며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고, 심지어 친구의 딸까지 받아주었다. 집에는 금지옥엽 키운 무남독녀 외동딸 언니가 있는데 서울에 직장을 잡아 아빠의 절친 (언니에게는 막내삼촌)의 집에서 머무르다 그집의 과외선생과 사랑을 하게 되었단다. 그 즈음 행정고시에 합격한 과외선생은 언니에게 구애를 했으나 고시패스생 집안답게 일단 이 결혼 반댈세!! 가 되었다고 했다. 집안의 반대가 심해 날마다 눈물바람이라 아주머니 얼굴에도 수심이 그득했다. 아빠의 절친의 큰형님은 키180이 넘는 장신에 조각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아주 잘생긴 후천적 맹인이셨다. 그 좋은 분이 왜 맹인이 되셨는지 사연이 있었겠으나 사연을 물을 만큼 눈치가 없지도 않았고, 한가하지도 않았다. 우선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아주머니 옆에서 우물물에 대한 참견을 해야했고, 부엌 뒤칸의 자두나무에서 주먹만한 자두도 따먹어야 했으며 아빠의 절친의 큰형님 옆에서 조잘거리며 말상대를 해줘야 했다. 딸이 없는 적적한 집안에서 아이의 소리가 나자 적잖이 좋아하시던 아빠의 절친의 큰형님 부부. 게다가 큰형님의 약방을 찾아오시는 동네사람들은 서울아이를 신기해하며 과일이며 반찬을 챙겨오기도 했다. 낯선 동네에서 극빈대우를 받게 된 나, 서울아이는 극성스러운 본능이 점점 살아남을 느꼈다. 내일부터는 나가서 놀자!! 여름방학 숙제 첫날 밤이 되고 일기를 쓰고 나니 그제서야 앞머리 파마를 한 곱상하고 하얀 얼굴의 소년, 아빠의 절친의 막내아들이 시컴둥이가 되어 들어왔다. 여지껏 뭐하느라 늦게 들어왔냐는 아주머니의 꾸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밥을 청하는 소년의 발가락에 흙때가 보인다. 비위가 무척 상했지만 8시가 넘어 먹는 시골 밥은 정말 맛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그해 여름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