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며칠전부터 찌릿했던 등은 통증을 동반한 채 부풀어올랐다. 꽤 크게 분 풍선처럼 등 한가운데 붙어 도드라졌다.
연이어 딸을 낳은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한 본인에 대한 자괴감과 대가족을 살펴야 하는 시집살이와 육아에 지쳐 고만고만한 딸 중에 하나를 큰고모에게 맡기기로 한다. 엄마보다 열세살 많은 큰고모는 엄마의 유일한 아군이었고 모든 시집살이를 막아주는 방패였으니 엄마의 고충을 헤아려 먼저 제의한 양육이었다. 여기서 고작 네 살의 나는 큰 고모를 택한다. “온양에 갈 사람 손들어!”에 일말의 고민없이 손을 번쩍 든 것은 이미 이때부터 정해진 기질적 운명이었다. 지금도 엄마는 큰고모를 따라 나서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는 어렸던 나를 서운해한다. 큰고모와 2년을 살던 시간동안 내 기억으로 엄마아빠를 무척 보고 싶어하거나 찾은 적이 없었다. 온양에서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 맛있는 반찬이나 간식을 나눠먹야 하는 치열한 경쟁도 없어졌고 복작거리는 대식구의 1인에서 벗어나 꿈에 그리던 외동딸 대접을 충분히 받고 있는데.. 엄마가 그리울리는 없었다. 그러나 찌릿하고 욱신거리던 등이 풍선만큼 부풀어오르자 덜컥 무서워지며 엄마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서 등의 통증이 온 몸으로 번져나가고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구토까지 했다. 아주머니가 서둘러 약을 먹이고 등에 이명래 고약을 붙여주고 있는데 불쑥 소년이 말한다. “얘 곱추 되는거지?”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안 그래도 마루의 거울앞을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이리보고 저리봐도 마치 곱사등이 같아 얼마나 불안해 했던가. 소년이 아주머니와 일남언니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등짝을 맞아도 좀처럼 불안이 가시지는 않았다. 울다 지쳐 잠든 다음 날. 큰형님 부부와 일남언니와 소년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윗옷을 다 벗은채 엎드려 종기 제거술을 받아야 했다. 그동안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은 죄값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