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숭고한 낙엽의 뜻
새벽 5시 출발,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중간지점쯤 도착했을 무렵 어둠이 걷혔다. 작년 가을과는 다른 출발이었다. 홀로, 늦은 오후, 초행길, 길가의 노란 은행나무들의 퍼레이드, 설 익은 사전 지식으로 내달렸던 작년의 나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무량수전, 부석, 석등, 불좌상 사이에서 내려다보는 뫼의 정원. 발 아래로 흐르는 태백산의 물결은 강물처럼 유유자적하고 그 정원은 가을빛을 받으며 알록달록하게 변모하고 있는 단풍들로 채워져 있다. 천하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게 한 부석사의 위치가 경이롭다. 내가 기대한 것은 무량수전의 훌륭한 건축예술이요, 절정에 치달아 눈부실 단풍이었지만 눈에 담아 온 것은 흐르는 산이었고, 설은 단풍이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은 것을 얻은 기쁨에 다시 또 찾아오기를 다짐하며 출발하기 전까지 담아둔 무거운 마음의 짐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곳에 터를 잡으신 의상대사께 겸허히 감사드린다>
오늘은 작년과 달리 언니네와 작정하고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초행의 어리숙함 대신 머리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들이 있었고, 앙상한 몸체를 드러낸 은행나무들도 작년과 달랐다. 그러나 단 한가지!! 내 가슴을 뛰게 한 것은 무량수전이 아닌 딴 것이라는 점은 작년과 같았다.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바로 경내에 나뒹굴던 내 얼굴보다 큰 낙엽이었다. 낙엽의 크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난 그저 신기해 그 낙엽을 주워들고는 내내 경내를 돌아다녔다. 안개가 많은 날이라 작년에 보았던 태백산 물결도 알록달록한 단풍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주워든 큰 낙엽이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부석사는 역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는 주옥같은 문장일 터인데, 나는 여전히 무량수전, 조사당, 안양문 등의 그리움에 지친 듯한 해쓱한 얼굴을 보지 못한다. 대가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내가 감히 그분과 같은 안목을 갖을 수 있으련만, 오늘 만난 큰 낙엽 한 장이 너무도 반가워 이 문장을 살짝 바꾸는 결례를 범했다.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숭고한 너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하노라”
내년에도 또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