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둘이면 재미없잖아
여행은 그 사람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오락이다. 동선을 계획하는 방식,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을 보면 나와의 케미가 나오기 마련인데.. 여행만큼 동반자와의 케미를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가 나에게는 전시회 관람이다. 전시회 관람을 동반자와 함께 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생기는 전시회 동반 관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시회는 속도다. 내 걸음은 슬로우, 슬로우, 퀵인데 상대방은 퀵, 퀵, 슬로우. 이렇게 되면 관람 시작부터 엇박자가 나고, 내 걸음 속도에만 집중하기에 함께 간 이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왠만하면 전시회는 혼자! 여행에서는 다시는 함께 오지 말아야 겠다고 느낀 이가 없었지만 전시회의 경우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이가 더러 있었다
얼마전 아끼는 동생과 송년 모임 약속을 잡다가 박수근 화가님의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요란한 일상을 덮어주는 포근한 이불 같은 전시회의 분위기가 좋을 뿐, 여전히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나에 비해 예술에 대해 심오한 철학이 있는 동생은 내 말에 이렇게 응대했다. “언니.. 난 전시회장에는 혼자 가. 그런데 언니랑은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아. “ 이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동생은 내가 여행을 가면 하루는 꼭 동반자와 분리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다. 하루 종일이 아니어도 반나절은 꼭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여행의 철칙이었다. 둘이 여행을 가서 둘의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도 하고, 그러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홀로 있었던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을 확인하는 여행법. 그 여행법이 좋다고 한다. 며칠 뒤 동생과 함께 하는 박수근 전시회도 덕수궁까지 함께 간 후 전시회장 입장과 동시에 헤어졌다가 먼저 나오는 이가 덕수궁을 돌아보며 더 관람하는 이를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겨울날의 덕수궁과 그토록 기다렸던 박수근 전시회 그리고 감상 후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그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