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씨

- 성에 갇힌 여자들

by 조안

무심(無心)씨


1. 성에 갇힌 여자들


“엄마? 아기는 꼭 여자만 낳을 수 있는 거예요?”

“아니, 언젠가는 남자도 낳을 수 있을 거야”

“아닌데, 여자만 낳는다고 했는데…”


무심씨 또한 묻고 싶다. 왜 여자만 아이를 낳는지.

질문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무심하게 볼 수 없었다. 여자로 엄마로 살아내기는 결코 무심하지 않으니까.


무심씨는 유치원 학부모 성교육에 참석했었다. 5세에 무슨 성교육인가 싶었는데 정말로 무심씨의 무식한 생각이었다. 시대에 걸맞은 성교육이란 무엇일까? 성에 대해 인식하고 살아본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무심 씨는.


“아기는 어떻게 생겨나요?”

“남자랑 여자랑 사랑을 하면 아기가 생겨”

“나는 OO이 사랑하는데 그럼 아기 생긴 거야?”

아주 무식한 답변이란다. 어떤 방식인지 How to 가 빠져있다고.


“남자의 정자랑 여자의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여자의 자궁에 뿌리를 내려 아이가 되는 거란다” 무심씨는 배운 대로 답변을 했다.

“그럼 정자랑 난자는 어떻게 만나요? “

그러게 어떻게 만난다고 하지..

약속하고 만난다고 할 수도 없고, 리얼하게 만남의 과정을 설명할 수도 없고

무심씨는 무심한 듯 무식하게 tv를 켜고 이이들의 관심을 돌렸다.


그날 밤

“여보, 당신 딸이 sex의 과정, 그러니까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나냐고 물어보는데 답변을 잘 못했어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러게, 책 찾아봐”

“알았어”


참크래커 보다 더 담백한 대화였다. 무심씨와 남편 사이에 性은 이미 흔적조차 없다.


여자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는 대가로 임신과 출산, 육아,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반찬 도우미, 방과 후 선생님, 거기에 보건? 선생님까지 해야 하는 건가?

남자는 아빠라는 이름을 얻는 대가로 가장의 무게? 더 많은 경제활동? 약간의 육아 도우미? 주말 대리운전, 재활용 쓰레기 처리?

따지고 보니 남자도 여자도 본연의 성을 잃고 엄마랑 아빠라는 제3의 성으로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무심씨는 그래도 조금은 더 손해 보는 게 여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페미니스트라고 치부될지도 모르지만


무심씨는 직업도, 직장도, 경제활동도 다 잃었다. 24시간 대기조처럼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서 아등바등거린다. “애 키우는 엄마가 다 그렇지, 애들 좀 더 크면 다시 시작해봐”

무심씨는 생각한다. 애 좀 크면 뭘 할 수 있을지, 애 크는 동안 엄마 늙는 건 생각 안 하는지? 손이 근질거린다. 저 조동아리를 한대 치고 싶어서...


특히나 한국에선 엄마라는 이름의 성에 갇혀 사는 경단녀들이 많다. 가끔 카페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을 이른 오전에 거닐다 보면 경단리길 같다.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보낸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조용히 들어보면 대부분 아이들 이야기 아니면 남편, 시댁 욕으로 웃음꽃을 피운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팔자 좋다고 이야기한다. 한가로이 앉아서 차마 시며 수다나 떨고 한다고. 무심씨 남편은 다시 태어나면 아줌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할 정도다.

돈 벌 걱정 없고 차 마시고 쇼핑하고 팔자 좋게 살고 싶다고. 그런데 그들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성에 갇혀 있는데..


담장 넘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질 않아 공감하기 쉽지 않고,

돈을 벌 사정이 안되니 있는 돈에서 어떻게 쪼개고 살아야 하는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고 있는데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무엇이며, 생산적인 활동이 무엇인가?


무심씨는 오늘도 아이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커피 한잔 들고 집에 들어오다 거울을 보니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똑같은 아침의 헝클어진 모습에 현기증을 느낀다.


성에 갇혀 사는 무심씨에게 라푼젤의 긴 머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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