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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pr 10. 2021

각본 실습, 내 인생의 첫작품 쓰기

7. 주인공(등장인물) 캐릭터 구축 작업

챕터 6. 주인공(등장인물) 캐릭터 구축 작업


대본의 주제와 방향을 대표해주는 정확한 키워드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후킹적’ 로그라인그리고 플롯이 선명하게 보이는 명쾌한 액션 아이디어를 뽑는데 성공했다면 이번에는 극대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주인공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을 해야할 차례입니다. 이 책에서는 극대본 작업의 순서대로 챕터를 구성했기 때문에 6장에 와서야 주인공 캐릭터 구축 작업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 작업은 키워드 작업을 할 때부터 동시에 시작해서 대본을 집필하면서도 끊임없이 계속 이어가야하는 작업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을 구축한다는 공학적 단어를 쓴 이유는 이 작업이 벽돌을 쌓아 벽면 하나를 쌓아올리는 조적 작업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벽돌을 쌓아 벽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평과 수직을 맞추어서 벽돌 하나하나, 한 줄 한 줄을 차례로 쌓아 올려야합니다. 만약 벽돌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비뚤게 쌓아 올린다면 그 위로 벽돌을 더 이상 쌓아 올릴 수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극을 이끌고 가는 주인공(등장인물)의 캐릭터 전체(벽면)를 만드는 작업은 벽돌을 쌓아 벽면을 ‘구축’하는 조적 작업처럼 섬세함과 치밀함이 필요한 일입니다.     


작가들은 대개 자전적인 작품을 자신의 첫 작품으로 쓰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주인공의 모델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구축’하는 작업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 자신이 작품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의 개인사, 성격, 성품, 관계, 심리, 습관, 특정 상황에서의 반응 등등 모든 디테일이 작가 자신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그냥 내 속에서 꺼내 쓰면 됩니다. 캐릭터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작품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서투른 극작가들은 급한 마음에 극의 내용에 따라 주인공의 연령과 직업을 머리 속에 대충 설정해놓고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인공이 해야하는 구체적인 행동과 말을 쓰려고 하면 그제서야 머리 속이 텅텅 빈 상태라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의 내부에 그(주인공)가 없기 때문에 극의 실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음이 급한 작가들은 주인공의 개인사와 성격과 성품과 인간관계와 심리와 습관과 반응을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의 정보들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는 ‘상상’과 ‘추측’으로 주인공의 행동을 쓰려고 노력해봅니다. 어찌어찌 쓰긴 했는데 글매가 뭉툭하니 디테일이 없습니다. 그 주인공은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던 이미 출연했던 인물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작가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작가들은 대부분 장렬하게 전사하여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극대본)는 주인공의 인생 중 특정한 시간과 공간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극중 주인공은 그 시기와 그 공간에 등장하기 전까지 실제로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작가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은 모두 극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가 살아왔던 삶의 배경과 경험과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극중 주인공의 행동을 쓰기 위해서 그가 극에 등장하기 전까지 그가 살았던 인생 전체를 먼저 구축해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하라도 너무 절망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작가에게는 이런 처절한 실패와 전사의 경험이 완전히 헛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실패와 전사의 경험들을 통해 캐릭터 구축 작업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작품의 주인공이었을 때처럼 작가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그의 인생을 한번 살아보면 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세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는 주인공의 개인사를 촘촘히 만드는 작업을 해보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인공의 현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취재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직업과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거나 유튜브와 웹 검색으로 정보를 축적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직업을 가진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세번째는 주인공의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설정해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롤모델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주인공 캐릭터라도 좋고 작가가 인터뷰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롤모델링 작업이 기존의 극 캐릭터와 실제 인물들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일정비율로 결합하는 작업까지 나아간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캐릭터 구축 작업의 구체적인 세 가지 방법은 각각 따로 분리될 수 없는 작업입니다. 개인사 구축, 직업 취재, 롤모델링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구축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위의 세가지 방법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주인공(등장인물) 개인사를 구축하는 작업의 디테일을 생각해봅니다. 한 사람의 개인사란 출생일, 출생지, 가족관계,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성장단계의 이력과 학력, 학창시절의 특별한 사건과 경험, 대학을 나왔다면 출신 대학과 전공, 현재 직업과 직책, 직업과 직책에서 행하는 행동의 디테일, 직장 동료와의 관계,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여부, 배우자와의 관계 등등 주인공 인생의 총체적인 정보를 말합니다. 이 모든 디테일들은 추후 극중 주요 시간(과거/현재)과 공간(직장/가정/동네)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반응의 개연성(Probability : 그럴만한 이유)과 필연성(Necessarity :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의 근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 중 하나도 사소하거나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예비극작가들이 작품을 쓰기 전에 위에 기술한 주인공의 개인사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빈칸 없이 메워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부터 <착한 악마>의 주인공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이 작업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제가 정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40대 응급의학과 의사이며 출산 때 와이프를 잃고 일곱 살 아들 하나를 혼자 기르고 있는 남성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를 살아있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주인공을 규정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해당하는 특정 디테일을 모두 찾아서 빈칸을 꽉꽉 채워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의 디테일이 충실하고 깊이가 깊을수록, 제가 그를 많이 알면 알수록 생생하고 날카로운 대본을 쓸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 40대 남성 : 극중의 시공간에 살아가는 40대 남성의 사회적, 개인적, 심리적인 디테일을 극의 필요에 따라 조사합니다. 그 세대 남성의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통계청이나 삼성경제연구원,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등이 최근 발간하는 연간 백서를 뒤져서 동시대 40대 남자들의 키워드들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극중의 시간이 현재라면 우리 시대 40대에 가장 핫한 SNS #해쉬태그 키워드를 꼼꼼히 훑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극중의 시간이 과거라면 해당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글들과 관련 서적을 찾아서 읽고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해당 과거의 시간과 동시대를 다룬 작품을 찾아보며 주요한 디테일들을 기록하고 이해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2) 응급의학과 의사 : 주인공이 응급의학과 의사인 ‘척’하지 않고 정말 의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응급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 별로 꿰고 있어야합니다. 응급실에서 그가 일할 때 어떤 위치에 있는지(돕는지 혹은 지시하는지), 응급실 안팎의 주변 인물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병원과 응급실에서 그의 평판은 어떤지, 그 평판에 대해 주인공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도 아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드라마의 디테일이 주로 주변인들과의 사건이나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일을 할 때 주로 하는 의료 행위들은 어떤 것들인지 캐이스case별로 리스트를 만들고 그때 주인공은 어떤 말을 하는지도 세세하게 기록해 놓습니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하게 될 행동과 대사는 실제 인물들과의 인터뷰 혹은 현장 참여를 통해 면밀하게 취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전문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과 말은 상상으로는 그려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디테일들은 극대본을 쓰기에 ‘필요한 만큼’ 취재하는 것보다는 훨씬 풍성하게 취재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취재해 놓은 디테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중에 작가가 사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3) 출산 때 와이프를 잃고 : 이 설정은 주인공이 홀로 아들을 기르게 하기 위해 제가 작가적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을 더욱 깊은 위기에 빠뜨리기 위해서 아이의 엄마가 없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극중 인물의 상황 설정에 대해서는 추후에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주인공의 아내가 왜 죽었는지(의료진의 실수인지 임신 중독증인지 원인 미상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그 원인을 알아야합니다. 상황별로 어떤 실례가 있는지 취재를 해보면 현재 설정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출산할 당시 주인공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헤어지고 싶었는지 같은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내와의 결혼이 연애였는지 중매였는지, 조건을 초월한 사랑이었는지, 조건 때문에 억지로 한 결혼이었는지도 작가가 결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출산은 결혼 후 몇 년 만에 이루어진 것인지, 쉽게 가진 아기였는지, 어렵사리 가진 아기였는지 선택지를 여럿 가지고 있는 것도 좋습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극중 인물의 죽음은 극이 전개되는 내내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작가는 극중 인물이 죽는 순간에 주인공이 처했던 상황과 심리를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4) 아들 하나를 혼자 기르고 있는 : 주인공이 재혼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이유도 필요합니다. 그가 상처喪妻의 후유증으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못한 것인지, 의사 생활이 바빠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었는지도 선택지로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하여 동성애를 숨기고 결혼을 했는데 아이만 낳은 거였다거나 이후 어떤 계기로 여성 혐오자가 되어버렸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상상해보는 것 역시 작가가 사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늘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주인공과 아이와의 관계는 어떤지, 그가 아이의 양육에 성실한지 불성실한지, 아기를 돌보는 아줌마가 있는지, 장모나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는지, 고집스럽게 혼자서 아이를 기르고 있는지도 미리 생각해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인공의 개인사 구축 작업을 할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기계적이고 전형적인 설정을 피하고 내 주인공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설정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미 효력을 상실한 뻔한 설정(클리쉐)은 극의 흥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또, 현실감 없이 지나치게 과하거나 억지스러운 설정은 보는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주인공 캐릭터 구축 작업은 그 깊이가 깊을수록 작가의 어설픈 추측이 무너지고 주인공이 실제 살아있는 인물로 바뀌어 가는 작업입니다. 여러분이 등장인물에게 이런저런 일을 의도적으로 시키고 싶을 때 ‘아니야,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의 주인공 캐릭터 구축 작업은 완성 단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개인사 구축 작업에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쏟은 결과 주인공의 외적 상황을 제1안과 대안들로 채워놓는데 성공했다면(처음부터 완벽하고 유일한 설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글을 쓰는 도중에 선택지가 자꾸 바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두세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유연하게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시기를 권합니다) 거기에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한 과정이 주인공의 외적 상황의 구축작업이라면 이제 내적 심리(혹은 감정) 구축작업을 해야 할 차례인 것입니다. 이 작업은 주인공이 극이 시작된 시점에 어떤 심리나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정해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내적 심리 구축 작업의 방법 중 제가 강추하는 방법은 작가가 주인공의 일기를 직접 써보는 것입니다. 일기는 1인칭 시점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작가가 극의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너무 많은 일기를 써볼 필요는 없습니다. 주인공의 인생과 극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시점의 일기를 우선적으로 써보기로 합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어린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 아내에게 처음 고백했던 날, 그의 아이가 태어났던 날, 아내가 죽었던 날(<착한 악마>의 경우) 같이 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중요한 날들을 골라 일기를 써보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이 그런 사건을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느꼈는지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작업을 충실하게 끝내고 나면 이 세상에 나보다 주인공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작업은 일종의 빙의憑依 작업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작가란 언제든 등장인물에 빙의해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니까요. 과감하게 그의 머리와 심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극이 시작된 후의 일기는 쓰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일기의 모든 내용은 주인공의 행동과 대사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등장인물) 개인사를 구축하는 두번째 방법은 주인공(등장인물)의 직업을 취재하는 것입니다. 극작가는 대본의 모든 상황을 지문과 대사로만 표현해야 하는데 지문으로는 상황 사실(Fact)과 인물의 행동(action)을 전달해야 하고 대사로는 상황의 정보(Information)와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극작가는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해서 주인공이 극중에서 하는 직업적 행동에 대한 이유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정도 파악해야합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 특정한 직업의 사람에게는 매우 민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가가 작품 속에 드러날 객관적 사실(Text)과 그 사실 이면에 숨겨진 맥락(Context)을 모두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사실 취재와 감정 취재가 모두 이뤄져야합니다.     


사실 취재의 방법으로는 작가가 혼자 할 수 있는 자료 수집과 관련 인사를 인터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취재는 대본에 쓸만한 케이스(case)를 수집하고 정보를 모으는 일이라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구글링을 하거나 전화 인터뷰를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감정 취재의 경우는 취재 대상을 직접 대면해서 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취재 대상이 일하는 공간에서 일정 기간 함께 생활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은 노희경 작가가 드라마 <라이브>를 집필할 때 경찰 지구대에 한 달 넘게 출근했다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 작가가 취재 대상의 직업 공간에 녹아들어갈 만큼 오래 머무는 것은 직업인의 감정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 시간 이상 그들만의 특별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해보아야 그들이 느끼는 감정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등장인물) 개인사를 구축하는 세번째 방법은 롤모델링 작업입니다. 예비극작가의 경우 첫번째 개인사 구축 과정과 두번째 디테일 취재 과정을 충실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필의 노하우Know-how가 부족해서 주인공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바로 이때 매우 유용한 방법이 롤모델을 정하는 것입니다. 직업 디테일을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대면하다 보면 언제나 드라마틱한 삶을 산 실제 인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을 주인공의 롤모델로 삼은 후 극본을 쓸 때 그의 행동과 말의 디테일을 떠올려 모사하는 것입니다. 롤모델링의 두번째 방법은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법인데요, 작품 구상 과정에서 보았던 레퍼런스 영화나 드라마의 등장인물/배우를 롤모델로 삼는 것입니다. ‘어느 작품의 누구처럼’ 하고 주인공을 설정하고 참고하는 것입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이병헌이든 <피고인>의 지성이든 <도깨비>의 공유든 상관없습니다. 롤모델로 삼은 배우가 자신이 쓴 대사와 지문을 연기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구축해줄지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롤모델 작업은 실제 인물과 레퍼런스의 캐릭터두 롤모델을 일정 비율로 섞어도 좋습니다. 그들의 손짓, 몸짓, 습관, 말투 등을 떠올리면서 대본을 쓴다면 각본 작업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디테일을 심도 있게 취재하고 설계해야 하는 대상은 주인공 뿐만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상대배역들, 즉 극의 주요한 등장인물들 또한 이 작업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작가가 위의 세 가지 캐릭터 구축 작업을 충실하고 빈틈없이 마무리한다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로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가 필요에 따라 등장인물에게 행동과 대사를 지정하거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난 등장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작가의 귀로 ‘듣고 받아 적을’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으스스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많은 선배 작가들은 유사한 증언을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작가가 쓰는 극대본은 평면적이거나 기능적이지 않고 입체적이고 함축적이며 나아가 중의적이고 예술적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주인공 캐릭터 구축 작업을 하면서 항상 경계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등장인물의 조물주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사실Fact을 외면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을 조작하는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의 본질은 작가가 극대본을 집필하는 동안 줄곧 받게 되는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유혹’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작가는 이 유혹을 냉정하게 뿌리쳐야합니다. 이 유혹은 작가가 등장인물을 자신의 마리오네트로 만들고 싶은 유혹입니다. 만약 작가가 이 유혹에 넘어가면 등장인물에게 자꾸만 내 의도를 심고 싶어지고 내 마음대로 그들을 조종하고 싶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작가가 이런 유혹에 한 번 두 번 넘어가다보면 귀찮고 힘든 취재와 세밀한 인물 구축 작업을 하기보다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설정과 대사들을 사용하여 잔꾀를 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런 잔꾀가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될 경우 그 습관을 고치기가 매우 힘들고 어느 순간 자신의 글쓰기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의도나 도덕관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극대본을 썼던 계몽주의적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작가가 극적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충실하게 사람들에게 중계하는 전달자가 되는 편이 우리 시대의 작품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는 작품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작가 본인이 아니라 관객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중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작하거나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마음이 작품 밖으로 빠져나와 버립니다. 사실 극중의 등장인물이 살아나서 작가에게 말하기 시작할 만큼 캐릭터 구축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작가가 조물주가 될 틈이 없습니다. 이때 작가는 등장인물의 말을 듣고 받아쓰는 충실한 ‘전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캐릭터 구축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각본 작업이 예상했던 것보다 복잡하고 고되고 지루한 일이라고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버텨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챕터의 시놉시스 작업부터는 각본 작업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각본 실습6) 다음 문항을 읽고 실습하십시오.     


1. 내 작품의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캐릭터 구축 작업 리스트를 만들어 보십시오. 엑셀 파일에 디테일을 하나하나 기록하되 그 캐릭터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없을 때까지 성실하게 빈칸을 메우십시오.     

2. 내 작품 주인공의 일기를 써보십시오. <착한 악마>로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난 날(아내가 죽은 날) 주인공 응급의사의 일기를 써보는 것입니다.     

3. 내 작품의 롤모델은 누구입니까? <착한 악마>의 경우에는 영화 <테이큰>에서 배우 리엄 니슨이 맡았던 아버지 역할입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로 말하자면 <추적자>에 출연한 손현주 배우의 조금 젊은 버전입니다.     

4. 작가가 등장인물을 자신의 마리오네트로 만들어서 망친 드라마나 영화가 기억난다면 기록해보십시오. 어떤 장면에서 어떤 대사나 행동으로 극을 망쳤는지 되도록 상세하게 기록해보십시오. 만약 ‘나 같으면 여기서 이렇게 썼을 거야’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그 내용을 기록해보고, 가능하다면 그 씬을 대체할 수 있는 씬을 직접 써보십시오.     

5. 등장인물 캐릭터 구축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등장인물 소개 글을 써봅니다. 주인공들은 20줄 내외로 작성하고 그 외 주요인물들은 중요도에 따라 10줄에서 5줄 정도로 소개 글을 씁니다. 나이와 성별, 직업과 인간 관계, 성격과 사고 방식, 극대본이 시작될 때의 상황 정도를 쓰면 됩니다. 등장인물 소개 글은 추후에 작품 기획서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하므로 정성을 들여 작업하십시오. 이 작업은 집필 작업을 수행하면서 계속 수정하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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