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을 위한 간단 정보 : 전국 유일의 달빛 순례가 진행되는 곳. 매월 첫 금요일 밤이면, 신부님과 함께 총 19군데에 이르는 '달빛 순례'에 참여할 수 있다. 수원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해있어 교통편이 매우 용이하다. 또한 도심에 위치해있다 보니, 주변 관광지 및 맛집과 같은 곳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 둘러보려면 하루는 부족할 정도...
수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성.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천주교 성지이다.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야밤에 진행되는 '달빛 순례'가 인기다.
수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화성이다.
수원 시내 어디를 돌아다녀도 화성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넓은 반경으로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유산.
그런데 이곳에서 매월 첫 금요일 밤마다 '달빛 순례'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화성 전역, 즉 토포청, 이아, 화성 행궁, 간이옥, 종로 사거리, 형옥, 동남각루, 팔달문 밖 장터, 장안문 밖 장터, 동북포루, 동암문, 남암문, 북암문, 사형 터, 화서문, 매향다리 서남쪽, 동북포루, 동장대, 용주사 포교당 자리 등 총 19군데가 가톨릭 순교지라는 점 역시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수원 성지는 정조의 정치 무대로서 '다산 정약용(사도 요한)'이 설계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에서만 박해 시기에 2천 여 명 이상이 순교했다.
수원성지 북수동성당의 모습. 사무실에서 안내 책자를 받을 수 있다. 왼쪽에 뽈리 화랑(구 소화 국민학교)이 보인다.
규모면에서 여타 성지들과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던 수원성지. 그래서인지 '도보순례의 길' 역시 총 3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었다. 처음 들르게 되는 북수동 성당에서도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사무실을 들러 방명록을 작성하면 무료 안내 책자(가이드)도 받을 수 있으니 꼭 들러보면 좋다.
필자에게는 북수동 성당 옆쪽으로 자리한 '뽈리 화랑'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수원 최초의 사립 국민학교였는데, 그 첫 역사는 1934년 소화 강습회에서 시작한다. 이후 소화 국민학교로 개교했다가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고, 미군과 천주교 신자들이 재건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후 2002년까지 본 시설이 유지되다가 소화초등학교가 이전하게 되었고, 초대 설립자인 뽈리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은 2007년부터 '뽈리 화랑'의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개방되었다.
뽈리 화랑에 들어서며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는 국민학교 세대.
'뽈리 화랑'은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있고 현재 안쪽으로는 누구나 편하게 방문/관람할 수 있다(물론 무료다). 안 쪽으로는 수많은 전시를 마주할 수 있는데, 주로 천주교 박해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 당시 한강 이남을 비롯하여 경기/충청권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은 이곳 수원화성으로 끌려와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 당시의 흔적들이 그림과 고문 도구 등 다양한 흔적으로 이곳에 남아있다. 한 편으로는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마룻바닥을 밟으며 감상에 젖다가도, 또 한 편으로는 역사 속 박해의 흔적들에 퍽 가슴이 쓰리기도 한 복합적인 경험이었다.
뽈리 화랑 내외에 전시되어 있는 역사의 기록들.
특히 너무나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처형 도구들과 고문의 흔적들은 물론, 벽화로 남아있는 순교자 가족들의 눈물까지 고스란히 다가와 퍽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무거운 분위기가 환기되었던 것은, 아마도 '뽈리 화랑'의 주인인 '뽈리 신부님' 덕분이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뽈리 신부의 사진에서는 그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부복뿐만 아니라 한복과 갓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매우 친근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심 뽈리 신부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신문화개혁운동에도 힘썼다. 한국전쟁 시절에는 피난을 가지 못한 교우들과 함께 매일 미사를 봉헌했는데, 이때 인민군에게 피랍되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화랑 곳곳에는 그가 사용하던 여러 성물 역시 남아있었는데, 손때가 가득한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순교자들 사이에서는 달빛 순례로 유명한 수원 성지.
사실 수원 성지는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달빛 순례'로 매우 인기라고 한다. 보통 순례라고 하면 이른 아침 혹은 주간과 같이 해가 떠 있을 때 진행될 듯싶은데,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야간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원성지(www.suwons.net) 홈페이지나 전화 문의를 통해 총 세 가지 코스로 나눠져 있는 순례의 길을 신청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안내가 신부님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더욱 인기가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안내를 통하면,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야간에도 빛을 비추는 예쁜 산책로 정도로만 여겼던 화성 곳곳에 천주교의 상징들이 녹아있던 것이다. 방화수류정 벽은 십자가로 만들어져 있고, 화홍문의 수문은 7개로 되어있는데 이는 성령칠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다산 정약용이 곳곳에 심어 놓은 신앙심의 흔적들이 참 놀라웠다. 나는 사실 그가 천주교 신자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달빛 순례를 하게되며 만나는 곳곳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필자가 빠져버린 24시간 국밥집, 유치회관도 최고였다).
수원성지는 그동안 다녀봤던 성지들에 비해 매우 넓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눈으로 담고 머리에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다. 특히 늘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만 다니던 순례길이 달빛 하나로 이색적이게 변모한-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 허기를 달래고자 들어간 인근의 24시간 국밥집도 일품이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여정이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스럽게도 서울/경기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고 교통편 역시 매우 잘 되어있어 아무래도 조만간 몇 번 더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뽈리 화랑' 역시 한 번의 방문으로는 아쉬움이 남을 만큼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달빛 아래에서 빛나던 화성 벽면과 지붕의 십자가들, 그리고 차분하게 펼쳐진 드넓은 행궁에서의 걸음걸음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긴 시간 한 보 한 보 옮기며 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