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천국, 천주교 손골성지

[나 홀로 떠나는 한국의 성지순례 ②] 경기 용인_손골 성지

by 대왕고래

※ 손골 성지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 437번 길 67

- 연락처 : 031-263-1242

- 주차 가능(주차 편리한 편, 다만 성당 미사 시간을 전후해서는 매우 혼잡하다.)

* 미사 시간 : 주일(오후 2시) / 화-토(오전 11시)

- 대중교통 불가

★ 방문을 위한 간단 정보

- 고양이들의 천국 같다. 입구부터 성지 곳곳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위치는 수원시 동북쪽과 용인시의 서쪽에 걸쳐있는 '광교산' 내에 위치해있다. 대중교통으로는 매우 가기 어려운 산 중턱에 위치해있어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인근에 외곽에서 유명한 카페들이 즐비해있어, 방문 전/후로 들르면 좋다.


KakaoTalk_20201009_040849059_07.jpg 입구부터 수많은 고양이들이 반겨주는 이곳은 천주교 손골 성지.


손골 성지는 유난히 고양이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아마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함박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수많은 종류의 고양이들이 먼저 다가와 그르렁 거리며 다리에 비비적대기 시작했던 것. 이윽고 성지 곳곳에 고양이들을 위한 간이집들과 음식이 가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고양이들을 챙기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도착하자마자 고양이들과 긴 시간을 보냈다. 수십 분을 소요하고 나서야, 다시 재정비를 하고 다시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오는 것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성지가 산 깊숙이 위치해 있는 데다, 길목도 구불구불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손골 성지는 박해 시대 때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기해박해(1839)' 전후로 서울 가까이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루던 곳이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오가기 편하고 눈에 띄는 곳은 당연히 피했을 게다.


KakaoTalk_20201009_040849059_14.jpg 동산 같은 느낌이 들던 손골 성지


다른 성지들도 그러하듯 손골 성지 역시 천천히 걸어보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다른 곳들과의 차이라면 조금 더 동산 같은 느낌이었다는 점. 산 중턱의 위치에서 성당과 기념관 같은 건물들 주변으로 산책로가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고, 표지판과 같은 안내 역시 상세하고 보기 편하게 자리해있었다.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따라오는 고양이들과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손골 교우촌은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기록이 명확하진 않다. 다만, 한 편지 덕분에 유추해볼 수 있게 되었는데, 문헌 상 처음으로 언급되었던 때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M.A.N. Davely, 1818-1866) 신부님이 부모님께 보낸 서한이었다. 1853년 9월 18일, 그가 보낸 편지의 발신지가 바로 이 손골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입국한 선교사들은 손골에서 신자들과 함께 숨어 살며, 언어와 풍습을 익히고 선교활동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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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성지 내 손골기념관 앞쪽 수도에 고양이가 앉아있다. (중) 무명 순교자의 묘 (우) 성 오 베드로 신부 상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손골에 머물던 도리(H.P. Dorie, 1836-1866) 신부와 경기남부지역의 선교 책임자였던 오메트르(P. Aumaltre, 1837-1866) 신부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순교하게 된다. 이때 신부들은 물론 수많은 신자들도 함께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중 손골에 머물던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삼대(三代)의 순교자들이었다. 이 손골에 살다가 1871년 5월 서울 좌포청에서 이 요한, 아들 이 베드로, 손자 이 프란치스코가 함께 체포되어 포졸들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이때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묘를 손골로 옮겨 모신 것이 위 가운데 사진의 무명 순교자 묘이다.



KakaoTalk_20201009_040849059_03.jpg 손골 성지 입구에 위치한 성당의 모습



손골 성지를 둘러보다 보니 '교우촌' 역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장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박해로 인해 당시의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나머지 고향과 살던 곳을 뒤로하고 이런 교우촌을 형성해 촌락을 이루며 살아왔다. 그 시대에 고향과 본인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적 드문 곳에서만 형성된 교우촌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오갔다. 당시의 핍박 속에서, 그들을 이토록 갈망하게 한 요인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평소 갈원 하던 것들에는 이토록 가혹한 박해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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