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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Jun 21. 2021

'죄업'의 분배

방관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어렸을 땐 '마음먹으면 결단코 죄를 짓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라 객기를 부렸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모든 인간이 결코, 크고 작은 죄업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인간 사회가 규정한 범죄를 짓는 것이든, 도덕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이든 말이다.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혹은 본의 아니게 참 많은 죄업을 쌓고 산다.  




그런데, '타인의 죄업까지 떠안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이를테면 '방관죄' 말이다. 


형법 등 법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방관죄'에 당연히 처벌 규정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 다만 사회적 책임이라든지, 질타 등이 무겁게 부여될 뿐이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혹 그곳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적용되려나? 불현듯 궁금해질 때가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발생하는 문제들을 얼른 해결하기보다 지나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충분히 고발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사소하거나 큰 문제들을 되도록 덮고 넘어가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사실 거의 대다수가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서로가 서로의 먼지를 주변에 털어대며, 우리는 다 같이 더러워지는 것 같다. 


몇 가지 예로 들만한 사례도 허다하다. 직장 상사의 크고 작은 비리를 알게 되어도 쉽게 고발할 수 없는 현실. 그것을 덮고 넘어가는 아랫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방관죄'가 생겨버린다. 회사에서의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은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서, 회사에서 눈에 띄는 행동이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드는지 알기에, 그 밖에 여러 이유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입을 닫는다. 특히 책임질 식구들이 늘어난 사람일수록 더욱 함구하는 모습을 봐왔다. 혹여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그 여파가 전해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사소한 것들도 많다. 학창 시절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을 선생님들에게 고발하는 학우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내 학창 시절 경험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회적(교내) 규정보다 친구들과의 관계 등이 더 중요했던 것이겠지. 이런 일들은 그때의 또래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가장 큰 지름길이 된다. 어쩌면 다른 이유도 있었을 수 있다.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 선생님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부딪히는 '그들(담배를 피우는)'에게 더 큰 권력적 공포 따위를 느꼈다던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로부터의 이런 낙인, 혹은 그 패권이 두려워 많은 학생들은 입을 닫는다.


그런가 하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도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면 숱한 불륜들을 만나게 된다. 어렸을 때엔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나이 먹을수록 이것은 내 주변에 아주 빈번하게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만다. 회사 같은 조직뿐만 아니라, 동창 그룹 혹은 친한 모임 내에서 필연적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아도, 발견하게 되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 사실을 터놓는 사람들도 있고. 


이 '불륜'은 당사자의 가족들에게 특히 처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은 섣불리 그것을 피해자(그들의 가족)들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고발로 인하여 가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모종의 불안감도 있을 것이고, 뭐 이유야 많겠지. 간혹 어떤 이들의 경우 불륜을 저지른 자들을 긴 시간 설득하기도 한다.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피해자(가족)들에게 해당 사실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경우란, 결단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이 모든 사람들은 '방관죄'를 저지르게 되는 걸까? 모두 어떠한 죄목을 분명 목격했음에도, 그저 묵과하고 넘어간다면 이 모든 사람들은 죄업에 시달리게 되는 걸까? 죄업을 만들어낸 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걷게끔 길잡이가 되어주었음에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똑같은 '방관자'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실제로 회사에서는 비리를 저지른 임원을 발각한 뒤 그 행위를 묵과한 것으로 간주한 모든 이들에게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같이 근무하던 팀원들의 과거 노고를 참작하기 보다는, 당장의 사건 처리에 급급해 해당 팀을 아예 해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봤다. 하다 하다 정부기관도 여러 사건사고 때마다 해체되는데, 일반 기업들에서는 오죽 이런 일이 많겠나. 


선생님들은 흡연 등의 비행을 저지른 학생들의 친한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낙인을 찍는다. 그들 모두를 싸잡아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추후 더 각별히 지켜본다. 어쩌면 이런 행위들이, 같은 교복을 입었음에도 교내에서 무리를 나누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진 않았을까?


불륜을 저지른 와이프를 찾아 회사로 찾아온 남편은, 회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냐'고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그중엔 아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 역시 비일비재했다. 불과 며칠 전 발령받은 초짜 신입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테지만, 피해자의 원망은 그런 걸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에 나오는 다양한 '죄업'의 사람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방관죄'를 적용시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토를 마주할 수 있다. 댓글창에 이런 말들은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었다. 


- 회사 사람들 단체로 다 쓰레기네, 바로 옆에서 투기하는 걸 왜 몰랐겠어? 다 똑같은 OO들이지.

- 저 공기총 들고 간 남자, 불륜녀 조직원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 이나야? 남편만 OO 됐네.

- 어휴 저것들 학교수준도 알만하네, 다 끼리끼리 비슷하게 노는거야.




나는 저 죄업을 저지른 이들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저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저들의 '죄업을 분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난다. 어째서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항상 주변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최악의 피해들을 던져주고 가는 걸까? 


얼마 전에는 공기업에 근무 중인 동창 녀석이 불러서 술 한잔을 했다. 모 공기업의 임직원들이 땅 투기를 했다는 뉴스로 모든 미디어가 도배되어, 전 국민이 공분하고 있을 무렵이다. 녀석은 그곳의 직원이었다. 학자금 대출도 아직 미처 못 갚은 데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그 친구는 어디 가서 본인의 소속을 밝히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자신은 이제 막 자부심을 갖고 시작한 회사생활이 두렁으로 빠져 자괴감이 드는 수준이라고. 


그 친구가 정말 회사생활에서 온전히 순수하고 결함 없었을지는, 사실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수백수천,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조직으로 한 데 묶여 욕을 먹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중에는 분명 소수일지라도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역시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저 죄업을 쌓는 사람들은 더욱 나쁘다.

그 죄업을 주변 모든 이들에게 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 사후세계에는 '방관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죄'가 있지 않고서야 '방관죄'도 존재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죄업'을 쌓은 자들은 '방관죄'까지 낳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죄업'을 쌓은 자들의 가중처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약한 이들이 더는 '방관죄'라는 명목으로 '죄업'을 나눠받는 일이 없었으면... 그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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