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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Jun 06. 2021

지금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

20대 시절에 나는 '감사 일기' 같은 것을 적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신나고 행복하기만 했던 그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의 원천이 무엇일까 자주 찾아보려 노력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일기장에 적던 '오늘 느낀 행복'들이었다. 왜,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행복한 일은 사실 매일 있다."라고도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을 매일 찾아봤던 것 같다.


지금의 행복에 무뎌지고 있다 생각이 들 때. 이따금 찾아보던 그 일기장은 내게 매일의 기쁨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바쁜 일상이 거듭되다 보니, 작성은 커녕 해당 일기장의 존재도 종종 잊어버리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근래 느꼈던 모든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것들을 한 번 적어보기로 했다. 


불현듯 소중하다고 생각한 모든 존재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문득 떠오른 것들이라 분명히 놓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짧게나마 돌이켜보니 분명 지금의 나를 이룬 근간과도 같은 그 모든 것들.




1. 가족들과 집에서 갖는 저녁식사

2. 부모님, 동생과 형, 신부님, 죽마고우, 고교 동창, 대학 동기, 선후배들, 나의 이 모든 친구들과의 시간들

3.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진 아직은 제법 넉넉한 시간

4.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

5. 술 뺏어간다는 우스운 핑계를 대가며 굳이 쉬는 날 내 옆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동생

6. 부모님과의 나들이, 대화

7. 형과 공유하는 시간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감정들을 배우는 순간의 겹

8. 기꺼이 멘토가 되어주는 신부님의 가르침들

9. 때때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불알친구들 몇 명의 시답잖은 농담

10.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업실, 그리고 차 안

11. 숱한 여행에서의 기록들, 그 안에 담긴 나의 소중한 모든 사람들

12. 대검찰청의 모든 인연들 

13. 쳐져있는 내 멱살을 잡고 캠핑장으로 끌고 가 고기를 굽고 물컵에 술을 부어주는 동네 친구

14.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 회사

15. 새롭게 들어오는 제안들

16. 다행히 매년 잘 나오고 있는 나와 식구들, 친구들의 건강검진 결과

17. 드러머, 댄서, 기타리스트, 나와 취미를 함께 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 그들의 에너지

18. 자주 가는 동네의 온갖 맛집들, 카페

19. 뮤지컬, 오페라, 연극, 여러 감명을 선사하는 공연들

20. 존경하던 직장 선배들의 안부 연락

21. 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나를 챙겨주시는 부대장님, 과장님들

22. 출장지에서 업무를 마치고 만나는 지인들,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사는 오랜 과거의 인연들

23. 만점에 가깝게 나타난 회복 탄력성 지수

24. 책 선물, 그리고 책 선물해주는 모든 사람들

25. 아무리 생각해도 외식보다 맛있는 집밥

26. 우리 집 강아지들

27. 우연히 꺼내본 생활기록부, 그곳에 기록된 '과거의 나'들

28. 할 것 투성이인 미래

29. 또 그중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나의 현재

30. 난 데 없이 보내온 후배들의 편지

31. 좋아하는 가수들의 새 노래

32. 이어폰, 헤드셋, 블루투스 스피커

33. 유튜브 서비스

...


이밖에 내 우둔한 머리로 떠올리지 못한 모든 것들까지 전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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