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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May 28. 2021

억지로 올라야만 하는 산

종착지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과정. 그것이 너무 힘들다면, 굳이 내가 힘들게 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을까- 늘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 힘든 과정이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식솔들조차 힘들게 한다면? 지금껏 미련 없이 그 과정을 내다 버렸다. 


내게는 나와 내 식구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중요하다. 

남들이 보기엔 숱한 기회라고 할 것들이 눈앞에 다가와도 난 언제나 별 고민 없이 그것들을 버렸다. 

이것은 큰 욕심이 없어서라기보다, 내가 안정을 추구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천성이 그런 것 같다. 피곤한 것이 질색인 것이다.


굳이 보다 세부적인 이유를 더 늘어놓자면 이렇다.

첫째는, 그 선택으로 인하여 분명히 떨어져 나갈 절반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지금까지 난 그 어떤 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이다. 셋째로, 억지로 저 산들을 올라가서 얻은 성취감이 과연 클지 의문이다. 나의 친구들과 누리고 있는 현재의 기쁨보다 클 것인지 전혀 확신이 없다. 


그런데 갈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어느 순간, '내가 나의 사람들에게 과연 굳센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온다. 지금 여기서 내 능력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어쩌면 좀 더 안전하게 내 식구들을 보살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4년 전, 그 때 그 제안을 덜컥 수락하였다면- 지금 나의 친구들은 조금 더 편했을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 하나로 인하여 주변 모두가 더 편해질 수 있다니. 참 이렇게 쉬운 길이 없는데.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나의 뜻에 따라준 식구들은 결코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둘러업고 저곳에 올려놓겠다고 이야기해주었을 때에도 나는 거절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나를 직접 만나러 왔을 때에도 나는 거부해왔다.


지금의 흔들리는 마음은 대체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일말의 책임감일까. 

이런 떠밀림에 이끌려 저 산으로 나는 결국 올라가아만 하는 것인지.

기껏 기분 좋게 하산했던 '과거에 지나친 산'에 온갖 미련과 집착을 억지로 부여하며 봉우리를 향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는데. 

꼭대기를 향하도록 등 떠미는 시간들이 자꾸 나를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이건 전진일까, 역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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