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May 24. 2021

사수의 죽음



그의 실종사건을 접한 것은 월요일.

단순 결근과는 무언가 달랐다고 다.

바로 책상 위에 지갑, 휴대폰, 통장들, 그리고 몇 개의 소지품과 '메모'가 있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구토를 하고 있었다.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서다. 마셨던 물과 숙취해소 드링크 따위가 다시 목을 타고 흘러나올 때- 형에게 전화가 왔다.


"너 내가 원래 회사 일 잘 전달 안 하는 거 알지."


형이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내가 오래전 퇴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년 전에.

아무튼 통화 내용은 '그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라진 그분은 내가 그만둔 직장에서의 '사수'중 한 명이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나와 형은 그를 '형님'이라 불렀고, 그 역시 우리에게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형제처럼 지냈다. 아니-, 건방지게도 나는 그를 '친구'처럼 여겼다. 


당시 그의 별명은 '살인마'였다. 꽤 큰 덩치에 우악스러운 성격, 매서운 눈매, 부산 출신 특유의 말투,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던 모습 등을 보고 누군가 붙여주었다. 큰 장비들을 들고 시종일관 뛰어다니는 그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섬세했고 우리에게 유난히 각별하게 대했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우리에게 주의를 준 적도 있다. 그러나 되려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한국 곳곳은 물론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며, 아무튼 꽤 우정을 쌓았다.  


그런 그의 실종 소식은 '황당함' 말고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형과 나는 그의 죽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최근에도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만, 책상 위 남겼다는 메모와 소지품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수도권을 벗어나 있던 나는, 타지에서 모종의 불안감을 느끼며 몇 년 만에 과거 직장의 사람들과 연락을 계속했다.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1.


나의 추적이 채 며칠이 가기도 전, 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량 이동 동선 파악을 요청했고, 기다렸지만, 결국 그의 사망 소식 이후에나 그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상반신 어디에선가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는... 처음 느끼는 뻐근함과 불편한 감각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예상이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곧 처참한 꼴이 될 지경이구나.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온통 나를 사로 잡기 시작한다. 장례식장으로 출발하며 나는 다짐했다.


"결코 지지 않겠다."

내 감정에도, 이 상황에도.


곧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혼잣말과 헛웃음을 반복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벽면 복도 모니터에 그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허파에 통증을 느끼며 주차장으로 도망쳤다. 그것은 우리 셋이 같은 과에 발령 나기 전 찍어둔 회사에서의 사진이었다. '타인의 재킷을 빌려 입어 핏이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그 사진. 숨이 턱 막혔던 것은 결코 마스크 때문이 아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틀대다 벽 쪽으로 몸이 꺼졌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6년 전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초장부터 1패를 하고 말았다. 괜찮냐고 묻는 그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시작부터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


온몸에 힘을 주며 다시 장례식장 입구로 향했다. 내가 너무 대책 없이 들어갔다. 급했던 것이다. 심호흡 정도는 하고 갔어야 했는데. 후-. 후-.


다시 첫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은 내가 가까워지자 눈가를 찌푸리며 '떠나버린 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처 인사를 드리기도 전, 그들의 오열 소리가 귀 1cm 가까이 다가왔다. 나를 껴안고 길 한복판에서 모두가 대성통곡을 했다. '왔구나', '잘 왔다' 등의 말들이 귀에 꽂혀왔다. 나는 그들에게 안겨 멀대처럼 서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정장엔 이미 내 것이 아닌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준 덕분에 입술과 혀를 꽉 깨물며 눈을 한껏 부라렸다.



2.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7년 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의 팀장님, 그때의 과장님, 그때의 동료직원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잠깐 그들과의 인사를 뒤로하고 마침내 사수의 앞까지 다다랐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바닥으로 향한 시선을 고정한 채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속으로 온갖 욕을 다해주었다. 그것은 정말 심한 욕들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유가족 역시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의 딸은 나를 삼촌처럼 따랐고, 우리의 교류는 꾸준했다. 녀석과 내가 둘이 밥을 먹고 디저트를 베어 무는 동안, 사수 내외는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난 녀석에게 오래전부터 종종 많은 것을 가르쳐왔고, 중학교 졸업 때에는 선물도 사수와 같이 골라 건넸다. 이 아이는 사수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자 삶의 큰 이유였다. 그의 사무실 책상 곳곳에, 그의 지갑에, 그의 신분증과 출입증 뒷면에, 참 많은 사진이 있었다. 녀석의 아기 때, 초등학교 시절, 중학생의 모습, 입시를 앞둔 현재 수험생의 얼굴까지.


얼마 뒤 녀석이 어머니를 부축하며 내 앞을 지나가려 했다. 그러더니 이쪽에 다다랐을 무렵 나를 힐끔 바라봤다. 이윽고 잠시 멈춘 채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정말 큰 위기였으나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버틸만하다.

나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3.


식장으로 들어온 뒤부터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퇴사한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 내게 인사를 하러 왔다. 사수가 지겹도록 내 얘기를 해댔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미련하게도 내 자리를 수년 째 공석으로 유지한 채 업무를 지속하고 있었다. 인사 담당자가 제의해 새로운 인력들을 배치했는데도, 그 자리만큼은 비워두었다고 한다.


"이분이 그분이구나, 한번 뵙고 싶었어요." 따위의 말들을 들으며 처음 보는 전 직장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이건 분명 약간은 겁을 먹게 되는 경험이었다.

 

이따금 그리웠던 이곳에,

언젠가 한 번쯤 돌아가고 싶다 생각했던 이곳에,

여전히 나는 있었구나. 줄곧.



4.


몇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각자 약간의 안부를 물은 뒤 술잔을 들이켰다. 그중 우리와 썩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직원들 역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떤 자는 내게 원망 섞인 듯 위장한 공격을 쏟아냈다.


"난 너 책임도 있다고 봐."


이렇게 시작된 그의 말…. 나는 준비태세에 돌입했다. 다음의 멘트가 쏟아져 나오기 직전, 또다시 되뇌었다. 저 입 밖에서 무엇이 나오든 나는 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몇 사람들의 원망은 곧바로 내게 날카롭게 날아왔다.


"네가 퇴사만 안 했어도 저분이 저런 선택은 안 했을 수도 있어. 안 그래?"


나는 짧게 "그렇죠."하고 대답했다. 이런 때에는 길게 생각하면 안 된다. 빠르게 듣고, 빠르게 답해야 한다. 눈에 바짝 힘을 주며 얘기한 탓이었을까. 아마 그들은 내가 노려봤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내 고개를 휙 돌리더니 "저분이 얼마나 너를 좋아하고 의지했냐, 네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야."라는 말 따위를 추가했다. 나를 어떻게든 무너뜨리고자 했던 지난날 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 공격의 의도는 모를 일이지만.



5.


장지를 끝으로 모든 장례절차가 끝이 났다. 유가족이 떠나는 걸 지켜본 뒤 형과 나는 정처 없이 그 주변을 빙빙 돌았다. '어디로 갈까?' 서로 물었지만, 누구도 목적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로.


나 스스로도 내가 온전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형의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더 긴 세월을 그와 공유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나보다는 나이 차이가 더 가까웠던 탓에 분명 상처가 훨씬 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우리 형은 사수와 어떤 면에서 볼 때 분명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걸 알고 있는 나는 불안했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도가 튼 형에게서 이상함이 느껴졌다는 것은, 나조차도 자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모종의 슬픔만이 아니라, 더 깊숙이 무언가가 보였다.


그런데 어쩌면 이양반 역시 날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장례식이 끝이 나고, 형과 단둘이 있는 동안- 잠깐 나태해질 뻔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셋이 다니던 국밥집과 카페 같은 장소들을 둘이서 쭉 돌아보았다. 시답잖은 농담, 숨겨진 감정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흐른다. 오전 반차였던 형을 사무실에 내려드리고, 들어가기 전 포옹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으로 들어와서야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지 않았다. 이건 감격의 눈물이다.

집에 와서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정장을 아무렇게나 던져 벗어두고, 강아지 밥을 주며, 털썩 주저앉아 그와 함께한 순간들을 틀었다. 그와 함께했던 국내외의 모든 사진과 영상들이 끝도 없이 스크린에서 쏟아진다.


잠을 못 자 약간의 현기증이 나는 듯했다. 잠시 침대에 누웠다.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그와 나누었던 대화의 기록을 찾았다. 나이가 50이 넘은 이 징그러운 아저씨는 참 지독하게도 표현을 많이, 그것도 아주 잘~ 했다. 그는 나에게 늘 '보고 싶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동생 뭐하냐'고 궁금해해 주었다. 새해 인사도, 생일 축하도, 시간이 된다면 밥을 먹으러 오라고, 모든 것이 그가 먼저였다.


싸맨 감정들이 몰아치는 순간, 나는 완패했다. 지독하게 강렬한 패배감을 느끼면서 나는 오열했다.

이불을 갈아치울 만큼 지저분하고 무분별한 소리, 온갖 분비물이 뒤엉켜 나를 잠식한다.


그렇지만 이다음엔 다를 것이다. 이번의 대패를 타산지석 삼겠다.

나는 이제부터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


부디 잘 갔으면.

나의 사수, 나의 친구, 나의 동료.

끝까지 정말 손 많이 가게 하는 형님.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벌'이 힘들면 나도 힘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