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Jan 20. 2021

'라이벌'이 힘들면 나도 힘들다.

※ 라이벌 :

1) 막상막하의 위치에 놓인 경쟁상대

2)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목적을 두고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는 맞수




사전적 의미로서의 '라이벌'이 이러하다면, 분명 그 녀석과 나는 라이벌이 맞는 것 같다.


내게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한 동네에 살던 친구 놈이 하나 있다. 우리는 무려 중·고등학교까지 계속 같은 학교를 다녔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서로의 아버지들도 같은 회사를 다니셨다. 나이 터울이 비슷한 동생도 한 명씩 있었으니, 분명 그놈과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녀석과 나는 늘 비교대상이 됐다.

동네에서는 우리 둘의 매 학년 성적은 물론 대학시절의 활동까지 때때로 가십거리 삼았다. 우연히 만난 옆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처음엔 내 근황을 묻는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녀석의 안부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기 일쑤였다.


사실 어렸을 때의 우리는 그닥 큰 경쟁심 없이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분명 그 사이에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운동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성적에 대한 견제는 물론, 고등학교 때는 관심도 없던 반장 선거도 동시 출마했다. 각 반에서 당선된 우리는 그 미묘한 기류를 내내 품은 채 성인이 되어서도 '긴장감 있는 우정'을 이어갔다.


대학은 다행스럽게(?) 서로 다른 곳으로 진학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라이벌의 역사'는 결코 쉬이 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 대학시절 시작했던 모기업의 인턴 시절, 녀석과 다시 만났다. 심지어는 어이없게도 녀석과 같은 지사에서 근무하게 됐다. 아무리 같은 동네였다 하더라도 근무지까지 같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 우리가 회사에서 돋보이기 위해 자처했던 일들을 떠벌리자면, 아마 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녀석과의 이런 경쟁구도가 사실 나는 재밌었던 것 같다. 뭐랄까. 꽤 짜릿한 자극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태해질 수 있던 시기에 녀석이 어떤 촉매제 역할을 분명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말의 질투심 역시 존재치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녀석이 부러웠던 적은 분명 존재했다. 인정한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으니.


그런 그가 힘에 겨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그 맘 때인 것 같다. 출장을 앞두고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녀석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비행기 출발은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 소중한 시간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 어... 머뭇거리며 할 말을 잃은 나보다, 오히려 그 녀석이 더 많은 말을 했다. 14시간의 비행시간을 뜬 눈으로 보냈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챙겨둔 몇 권의 책과 노트북은 무용지물이었다. 기내식은커녕 물 한잔 마시기도 버거웠다. 입국심사를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게 숙소에 도착한 뒤 쓰러지듯 소파로 몸을 떨구었다.


출장은 망했다.

시간이 참 기구하다.

그 시점에 나는 왜 해외에 있게 되었을까.

그것이 혹시 우리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게 되어버린 이유인가.


옛날부터 녀석과 나에게는 큰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서로 가족들과 매우 각별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집안끼리 교류도 잦았다. 녀석이 이야기하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어머니에 대한 사랑, 동생에 대한 각별함은 나와 많이 닮았노라 생각했다. 특히 그놈은 늘 아버지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봐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사라졌다는 걸 나는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교류를 하지 않게 됐다. 간간히 동창들에게 소식을 들을 때에도 우린 서로 선뜻 먼저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의 접근이 그에게 상처가 될까 봐 겁이 난다. 매번 전해 듣는 소식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이벌.


사전적 의미에서와 같이 우리는 늘 '같은 상황' 속에 있었다. 같은 학교, 같은 나이, 같은 회사 등 모든 것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출장 이후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지만, 녀석은 여태 그러지 못했다. 거기에 나서지도 못하겠는 내 스스로의 모습에 쓰린 기분이 줄곧 남는다.


이놈이 어린 시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 시절 긴장감 속에 자리한 묘한 우정은 유독 남달랐다. 그건 마냥 편하기만 한 불알친구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는 관계였다.


우리가 다시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 여러분! 절망하지 맙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