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양손잡이다. 본래 왼손을 더 편하게 썼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이걸로 퍽 많은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는 학교 선생님도 '오른손으로 글을 쓰라'며 손을 고쳐 잡아주시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른다. 다만, 나는 이런 이류로 어쩔 수 없이 오른손을 많이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은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편하다. 하물며, 우리나라에는 유명 가수 이적 씨의 '왼손잡이' 노래도 있지 않았던가?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나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나는 왼손잡이야!"
살펴보면 가사도 참 재미지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졌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sinister'란 영단어가 있다. '사악한' & '해로운' & '불길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왼손잡이의 라틴어 'sinister'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사실만 봐도 느껴지는 것들은 참 무수하다.
뭐, 어쨌거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주변에 물어보면 '왼손잡이'를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불과 내가 살아온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주 많이.
"우리는 왜 현재의 기준이 옳다고 확신할까?"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책 하나가 최근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단하고 혼란했던 지난 4월.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게 도움이 되어준 책이다. 제목은「무엇이 옳은가(후안 엔리케스)」. 이 책은 지독하게 많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존경하는 故 이어령 교수님의 추천사가 떡하니 박혀 있어 눈길을 끈 표지. 단번에 읽어 내려간 모든 질문지는 나를 아직까지 괴롭히고 있다.
내가 믿어온, 내가 현재까지 믿고 있는 모든 '윤리적 기준'이 뒤흔들린다.
1769년 캘리포니아 찰스턴에서 찍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노예 판매' 전단이 붙어있다. '94명의 건강한 검둥이'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다. '소년 15명', '소녀 16명', '이제 막 도착했음' 등의 문구가 여전히 오랜 기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노예제도'가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저 기록처럼 강남 사거리 한복판에 저런 전단이 붙어있다면 어떨까?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에서 이런 광고가 흘러나온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가 하면 여성들의 인권은 어떠했나? '피임'이 보편화되며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났다는 통계는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1962년, 37%에서 2000년도에 61%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과거의 선조들은 다른 기준을 갖다 댔다. '피임'을 비도덕적 행위로 여기거나, 종교단체에서는 아예 회칙으로서 피임을 금지행위로 규정했다. 그 당시엔 저런 의견에 꽤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가 지금 기준으로 삼고 있는 모든 기준들. 그것들을 과연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술이 모든 윤리의 기준을 바꾸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너무나도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삐삐'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또렷하다. 그런데 지금은 더 얇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조그만 두뇌 하나가 손에 추가로 들려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웬만한 업무를 전부 처리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치열하게 논의한다.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편협해진다. 서로의 선의를 강조하며 자신만이 '선'인양 그룹 밖의 타인들을 '악'으로 규정짓는다. 비슷한 사고의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고 있다.
이런 현세대의 우리는 후세대의 비난을 피할 길 있을까.
어쩌면, 이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에는,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런 혼란 속에 우리는 계속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현재의 '우리가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은 틀렸다'라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 길고 긴 표류에서 조금은 잔잔한 파도에 몸을 뉘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옳을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어느 시점을 통틀어 오랜 시간, 모든 순간 옳을 수는 없다. 그 사실만 인지하고 있더라도 어쩌면 후세대에게 덜 욕먹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스스로의 시선을 강하게 옳다고 주장하는 이 피곤한 시대. 각 곳에서 입막음당하다 지친 내게 선물과도 같은 책이 찾아왔다. 그저 조금의 질문만 담은 글인데도 지나치게 길어지니, 다시 몰아치는 물음표 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것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