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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Aug 25. 2024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확히 6개월 전이었다. A는 베트남 여행을 가기 전에 큰 결심을 했다. 벼르고 벼르던 C사의 반지를 사겠다는 거였다. 면세점인데도 대기를 타다가 입성한 C사 매장은 A가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화려했으며 매장 직원들은 도도했다. 주눅이 드는 마음을 애써 접고 A는 어깨를 펴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A가 보고 싶어한 반지가 대령되었다. 그러나 그 반지보다 안내하는 직원의 손에서 반짝이는 다양한 사이즈의 반지에 눈이 갔다. ‘중지에 있는 게 제일 가는 거구나. 저 검지에 낀 게 중간 두께면 이건가?’ 속으로 가늠하며 눈앞에 있는 반지들을 껴보았다. 머릿속으로 가격을 매겨보며 다양한 두께의 반지를 껴보고 나서 A는 좀 더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매장을 나왔다.     


 왜 구매하지 않고 나왔느냐는 물음에 A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 가격에 반지를 사도되는 건지 모르겠더라. 근데 사고 싶어. 가운데 손가락에 반지 하나가 있었으면 했거든. 생각했던 것보다 예뻤어. 근데 너무 비싸. 그래도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A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상태로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30대 초반의 A과장을 결단력 부족의 무분별한 사춘기 소녀로 되돌린 것인가?     


 애초에 어떤 소비를 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무언가를 원해서 소비를 하고자 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욕구의 합당성’이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물품을 구매하는 일이 합당한가? 그렇다면 ‘합당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어떤 기준, 조건, 용도, 도리 따위에 꼭 알맞”는 것을 ‘합당하다’고 정의한다. 즉 소비의 기준, 조건, 소비하는 물품의 용도, 소비하는 행위에 대한 도리 따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A가 C사의 링을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A가 평소 따르는 소비의 기준, 조건, ‘반지’라는 물품의 용도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반지’라는 물품, 더 나아가 ‘C사의 반지’는 사치재이기에 ‘합당성’에 대한 고려가 불식된다. 사치재는 가격을 따져 사는 게 아니라 그 물품이 선사하는 ‘우월성과 개성 표현’이라는 차별화와 자신의 감각을 충족시켜준다는 측면의 ‘감성’을 중심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A가 첫 번째 구매 시도에 실패한 이유는 ‘가격’과 ‘합당성’이라는 이성적 고려가 배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 6개월 후, C사는 A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 거대한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A는 잊고 있던 욕구가 꿈틀대는 것을 다시 느꼈다. 바로 팝업스토어 예약을 했고, 몇 가지 종류를 다시 살펴본 후 A는 그 자리에서 C사의 링을 구매했다.     


 질문자 : 6개월 전에 구매하지 않기로 했던 반지를 이번에 다시 구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한참을 고개를 갸웃하다가) 글쎄요, 팝업스토어?

질문자 : (약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팝업스토어가 지난번 방문했던 면세 매장과 뭐가 다르죠?

A : 말 그대로 팝업스토어죠. 특별하게 마련된 매장이고, 판매를 위한 매장이라기보다는 쇼윙을 위한 매장이라 부담 없이 물건을 볼 수 있었고요. 그 분위기가 다르죠.

질문자 : 결과적으로 6개월 후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며 같은 물품을 구매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A : 그 때는 살 때가 아니었나 봐요. 마음이 그만큼 동하지 않았으니까요.

질문자 : 그 거금을 들여서 사는 물건인데 기분에 따라서 구매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A : 거금을 들여 사는 거지만, 원할 때 사야하는 물건이기도 하니까요.

질문자 : 그래서 반지를 구매하고 지금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요, 어떠세요? 구매한 것에 만족하십니까?

A : 사실, 문득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이 반지 하나를 그 많은 금액을 주고 구입한 게 정말 잘한 걸까? 그 값에 1/3가격만 줘도 기가 막힌 이미테이션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들 구매를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다가도, ‘이건 진짜잖아.’ 이 한 마디면 끝이에요. 저는 진품을 끼고 있어요. 예쁘고요. 그럼 된 거죠.     


 A는 과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 반지를 구매한 것일까? 명품 브랜드에 대한 니즈가 20대까지 확산된 지는 이미 오래다. 명품 브랜드를 일상적으로 향유 가능한 계층이 아님에도 이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일반화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자신의 차별화된 개성과 감각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내 자신이 아닌 소비하는 브랜드를 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명품 브랜드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여 발전한다. 브랜드 마케팅이 중요해진 이유도 바로 이런 지점이다. 공급과잉의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드러내고, 다르게 포지션해야 할 필요와 욕구를 갖게 되었다. 이는 비단 개인적 요구는 아닐 터다.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개인의 필요와 욕구가 형성되고 발전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원하는 바가 과연 주체인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혼동되는 지점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모습, 어떤 포지션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는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위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는 ‘사회’라는 울타리가 디폴트값으로 지정되어 있다. 내가 어울리고 싶은 사람 혹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같은 지향,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대개 함께 어울리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울타리 내에서 취향이나 기호는 소비 성향과 긴밀하게 맞물린다. 결국 ‘브랜드’다.


 다시 A에게 돌아가 보자. A는 C사의 반지가 다른 브랜드의 반지보다 더 예쁘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의 기반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C사가 가진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C사를 선호하는 집단, C사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계층 그들이 지닌 이미지 또한 C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속한다. 그리하여 A는 어째서 자신이 C사의 반지를 소유하고 싶었는지 그 심층의 욕구를 과연 파악하고 소비를 한 것일까? A는 자신이 ‘진품을 소유했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결국 A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A가 소유하게 된 것은 과연 무엇일가? 그리고 A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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