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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Oct 15. 2021

카피라이팅에서 시작된 통찰의 여정



  시작을 시작하게 한 질문


  2002년 3월 카피라이터가 되고부터 <카피라이팅> 강의를 겸하는 오늘까지 '광고란 무엇인가', '카피라이팅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카피라이터는 누구인가'에 대해 내 안에서 대답을 찾고자 애쓰지 않았다. 이 사실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글쓰기에 대하여>>(프시케의숲, 2021)의 마지막 장을 덮는 찰나에 마치 작은 새가 내 어깨를 탁 치고 지나가는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은 내게 깜짝 놀랍고도 재밌는 한편으로는 두근거리는 오랜만의 신선함이었다. 늦은 밤이었고 난 혼자 부엌에서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 오랜 공간이 마치 깊고 한적한 숲 속처럼 여겨졌다. 나와 나를 스치고 간 그 새만이 움직이는 그런 깊고 조용하고 시원한 숲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강의 중에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들, 가령 아이디어, 전략, 콘셉트, 심층과 표층, 자아개념과 관점, Context 경험으로서 책 읽기와 칼럼 읽기, 칼럼 쓰기, 관찰과 사진찍기, 그리고 그것들을 긴밀하게 꿰어주는 로지컬 씽킹까지 그 일련의 개념들의 의미와 가치를 내 안에서 꺼내지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그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짓고 설명하는지 수집하는데 급급했다.

  그 일련의 개념들을 골라 엮고 로지컬 씽킹이라는 틀로 엮어 프로세스화 하고 카피라이팅 프로세스와 열 맞춰 세운 것이 나인데 나는 어째서, 왜 나에게서 의미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질문이 시작됐다.



  극장의 우상


  철학자 베이컨은 학자들이 지닌 편견을 지적하며 그것을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네 가지 우상으로 표현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그리고 마지막이 '극장의 우상'이다. 앞의 세 우상으로 '인간 이성에 대한 논박'을 했고, 마지막 '극장의 우상'으로 학자들이 만든 기존의 학문 체제를 맹신할 때 발생하는 편견에 관련된 '여러 가지 논증에 대한 논박'과 '여러 가지 이론 혹은 널리 승인된 철학과 학설에 대한 논박'을 했다.

  왜 내 스스로 꿰어놓은 개념들을 내 안에서 찾아 의미 짓고, 가치를 부여해 펼쳐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나는 스스로 '극장의 우상'이라는 답을 떠올린다. 나보다 더 이름이 난 광고인, 히트작을 많이 만들어낸 메이저리그 카피라이터, 혹은 광고학계에서 '교수'라는 직함으로 책을 낸 사람들이 풀어낸 방식에 기대는 것이 학생들을 납득시키는데 효과적이며 나아가 신뢰의 지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그런데 내 어깨를 스치고 간 듯한 한 마리 새를 느낀 그 날 밤 부엌 테이블에 앉아 나는 그 새를 좇아 천천히 오로지 나와 새만이 움직이는 깊고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그 누구도 강의목차를 짠 나 이상으로 목차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꿰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feat. 마거릿 애트우드


  다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로 돌아가 보자. 그녀가 쓴 책, <<글쓰기에 대하여>>는 내가 카피라이터의 일에 관련된 책 한 권을 써야 겠다는 필요를 느끼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책이다. 그녀는 여섯 번에 걸친 대중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책을 완성했다. 제목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지만 글쓰기에 관한 기술적인 내용은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독자들이 예상 가능한 '글쓰기책'의 범위 밖에 위치한다. 저자는 고백한다.


  "내가 제안 받은 대략적인 주제는 '글쓰기', 또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글을 써왔으니 뭔가 할 말이 있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중략)…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거창하지만 흐리터분한 비전은 기세를 잃고 흩어지며 백지상태가 되었다. …(중략)…

  이 책은 한 40년 동안 글의 광산에서 노동해온 사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다음날 써볼까 생각해볼 법한 책이다.”


  천천히 이런 저자의 마음결을 헤아리며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어째서 이런 목차와 내용으로 '글쓰기'를 말하고자 했는지 납득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의문을 품고' 그 의문에서 시작된 질문의 답을 찾아나간다. 글을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안으로 파고들수록 그 곳은 모호하며 이중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험난한 길이다.


  저자는 '작가의 역할'을 '묏자리 파는 일꾼'에 비유하며 '글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누구나 묘지에 구덩이를 팔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모두가 묏자리 파는 일꾼이 되는 건 아닙니다. 후자는 훨씬 더 많은 체력과 끈기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일의 성격상, 심오한 상징성을 지니지요. 묏자리 파는 사람은 그냥 구멍을 파는 게 아니에요. 양 어깨 위에 다른 사람들의 심리적 투사, 두려움, 환상, 근심, 미신의 무게를 짊어집니다. 싫든 좋든 죽음을 상징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여느 공적 역할처럼 그 역할의 중요성, 즉 그 역할의 정서적, 상징적 내용의 중요성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대문자 W로 시작하는 작가Writer의 역할도 마찬가지지요.”



   카피라이터의 Writing


  카피라이터의 '라이팅'도 그렇다. '글쓰기'를 오래 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카피라이터가 되는 건 아니다. 훨씬 많은 체력과 끈기는 모두가 비슷할 터이다. 다만, 카피라이터는 말 그대로 일의 성격상 어느 글쓰기보다 집요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눈가리개'라고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환상', 누군가에게는 '지향', 누군가에게는 '꿈', 누군가에게는 '욕망'이다. 그러나 광고를 만드는 카피라이터에게 Writing는 '전략적 writing'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Creative로서 writing을 할 뿐이다. 이제부터 바로 그 '전략적 글쓰기로서의 카피라이팅'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른 어떤 글쓰기와도 다른, Logical Thinking에 기반한 글쓰기,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질문이 시작됐다. 그러니 답을 찾을 시간이다.


  카피라이팅? 아니, 컨셉라이팅!    


  내게 카피라이팅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스스로를 카피라이터가 아닌 컨셉츄얼리스트라고 칭하셨었다. 당시에는 선생님의 모든 게 멋있게 보였기에 선생님의 네이밍 의도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따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나마 그게 다행이었다. 카피라이터라는 정체성보다 컨셉츄얼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싶어 했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말하는 카피라이팅은 일반적인 광고문구 쓰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 ‘카피라이팅’이라고 칭하는 개념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내가 말하는 ‘카피라이팅’이라는 건 로지컬 씽킹에 기반한 글쓰기로 한 마디로 목적에 맞는 글쓰기를 뜻한다. 그리고 방법론적 차원에서 목적에 맞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통찰하는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내가 이 글에서 말하는 카피라이팅은 ‘통찰하는 글쓰기’와 같다. 그리고 동어반복처럼 ‘통찰’은 ‘로지컬 씽킹’으로 요약된다. 일관성 있는 사고체계, 그리하여 첫 걸음부터 마지막걸음까지 목적을 위한 시작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지어지는 글을 말한다.

  

 결국은 존재의 본질!


 이런 글쓰기 이야기를 시작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그런 글쓰기를 빙자한 존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될 것이다. 인간 존재만이 뾰족하고 섬세하게 지속적으로 다듬어갈 수 있는 무엇, 그런 고유의 영역을 찾아서 나아가는 게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매체가 아무리 발전해도 커뮤니케이션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열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마찬가지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카피라이터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 보면, 카피라이터의 일 그 근원에 깔려있는 오늘날 업의 본질로 파고들어가게 될 것이며, 업의 본질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사회가 지향하는 궁극의 방향을 짚어낼 수 있을 터이다.


 아름다운 꽃잎을 하나 하나 펼쳐 나가듯이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이제 나는 당신이 궁금해 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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