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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Oct 11. 2023

카피라이터, 무엇하는 사람인가

  내가 카피라이터가 된 것은 2002년 3월이다. 그땐 ‘카피라이터’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 이름이 폼 나게 느껴져서 좋았다. 카피라이터에 대해 배우고 들은 건 고작 3개월 ‘카피라이터 실무 강좌’가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카피라이터가 될 기회가 주어졌던 고마운 시절이었다.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석사학위 논문을 다 쓴 후, 박사 과정 진학을 잠시 고민했다.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배울수록 창작에 자신이 없어졌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는 소설을 창작할 수는 없어도 소설을 읽고 무언가 논의하는 것은 가능하겠다 싶어 ‘문학평론가’를 꿈꿨던 거였다. 허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음을 논문을 쓰면서 깨달았다. ‘박사’까지 한다 해도 명확한 미래, 밥벌이의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학업은 그 즈음에서 끝내고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이 현명했던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아무튼, 이런 속내로 나는 논문 동기들과 한겨레 교육에서 진행하는 ‘카피라이터 실무 강좌’에 등록했다. ‘어차피 ‘라이팅’아닌가. 내가 이제껏 해온 일이 읽고 쓰는 것이었는데 뭐 중간이라도 가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무지한 자의 한없이 엉뚱 발랄한 마음이었다. 세상 일이 어디 수월하게 돌아가는 게 있던가!     

  이게 웬 일인가! ‘카피라이터 실무 강좌’ 첫 시간부터 까만 뿔테 안경을 낀 선생님은 ‘카피’는 절대로 글발로 쓰는 것이 아니란다.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그러니까 ‘글쓰기’라고 생각하여 등록한 사람들은 어서 취소를 하란다. ‘카피라이팅’은 글쓰기가 아니라 광고 문구를 만드는 거란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엄연히 Copy-Writing인데 글쓰기라 불리니 글쓰기라 생각한 것인데 글쓰기가 아니라 하시면 저는 어찌 하오리까!     

  그런데 그 날부터 시작된 ‘카피라이터 실무 강좌’의 3개월은 그야말로 혼돈의 나날이었다. 글쓰기라 이름 붙은 것이라면 뭐든 비벼볼 수 있다고 자부했건만 ‘카피라이터 실무 강좌’를 듣는 내내 나는 도대체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 듣지를 못했다.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서는 실력이 자자한 선생님은 첫 시간부터 힘주어 말씀하셨다. “카피라이팅은 문장력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것은 글이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문구입니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시작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과 ‘하나의 문구’를 작성하는 일은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광고 문구도 분명 문장 쓰기와 다름없는데 왜 글쓰기와 다르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수업을 듣는 내내 그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미묘한 아주 미묘하고도 섬세한 차이를 느낄 수는 있었다. ‘카피라이팅’은 분명, 내가 아는 글쓰기와는 확연히 다른 무엇을 내포하고 있었고, 나는 미지의 세계에 앞뒤 모르고 달려든 내 판단을 탓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들어 갔다.     

  첫 시간 선생님은 ‘나에 대한 카피를 써보라’라는 과제를 주셨다. 중요한 건 내가 잘 하는 걸 나열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나를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문제는 그 자체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그대로 나열하라고 해도 힘든 판국에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예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를 어떤 식으로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그러니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이어서 선생님은 카피는 아이디어라고 강조하시며 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설명을 하셨다.

  당시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디어라는 단어와 카피라이팅, 즉, 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킨다는 사실이 ‘과연 연관성이 있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번도 ‘글쓰기’ 아니, 어떤 문장을 구성할 때 ‘아이디어’적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카피는 아이디어. 이게 첫 번째 수업의 핵심이었다. 이 말만 생각하면 카피라는 건 뭔가 기발하고, 톡톡 튀어야 하고, 번뜩여야 하고, 이전에 없던 거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또한 ‘아이디어’에 대한 나의 잘못된 선입견에서 온 발상들이었다. 카피라이터를 폼 나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이유 역시 이런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임을 카피라이터가 된 후 곧 알게 되었다.


  카피라는 건 명확히 광고 문구다. 우리가 광고라고 생각하는 가장 기본의 TV광고를 떠올려 보자. 그 TV광고에서 내레이션이든, 화면에 나오는 자막이든, 아무튼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것은 카피라이터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먼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짚어내야 하는 상당히 논리적인 작업이다. 이 ‘논리성’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가 잡혀있지 않으면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이 ‘논리성’을 기본으로 하는 발상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광고가 넘쳐난다. 한 마디로 이제는 매체를 넘어서서 광고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예전보다 훨씬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가 복잡해졌다. 복잡한 가운데 논리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기본을 알면 넘어설 방법이 있다.     

  카피는 ‘아이디어’로 쓰는 문구이고, 그러므로 카피라이터는 ‘아이디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일차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더 깊숙이 개념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카피가 뭔지 모른 채 카피라이터가 된 ‘카피 잘알못’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든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다음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그래도 20년 이 일을 지속하며 실무자들까지 가르치는 데는 뭐든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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