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리뷰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군부 세력과 공화주의 정부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공화주의 정부를 지원하기 아나키스트 의용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합니다. 멋진 전투와 뜨거운 승리로 파시스트들의 기를 눌러버리겠다는 결심은 최전선에 배치되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총과 총알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추위와 더위에 고생하는 열악한 상황, 교착된 전선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대치는 후방에 알려진 전쟁의 낭만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틈틈이 벌어지는 전투에서 의미 없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대치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나’는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쉬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공화주의 정부와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아 무력시위가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파시스트 군부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더 정확히는 아나키스트들을 믿지 못해 무장해제시키려는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질린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아나키스트 의용군 소속이었던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입니다. ‘나’는 그 뒤에 어떻게 될까요?
실제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 정부 진영에 자원입대해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기보단 보고서에 가까운 작품, 르포르타주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쟁을 가리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일으킨 군사반란에서 시작돼, 공화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토지와 소유 재분배 등 진보적인 개혁을 실시하던 당시 스페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린 사건이죠.
프랑코의 반란군은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아 개혁에 대한 찬반으로 혼란에 빠진 스페인 전역을 단숨에 점령해나갑니다. 반면 공화주의 정부는 스페인에서 자생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소비에트 연방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공산당, 그리고 국제적 연대를 맺고 있는 아나키스트 의용군들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자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웰이 묘사한 바르셀로나 시가전도 그 자멸의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이고요.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최전선에 파견된 ‘내’가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이곳에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습니다. 물자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명령체계도 엉망이며, 병사들은 줄을 맞춰서 걷는 정도만 훈련받은 뒤에 바로 전투에 투입될 정도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전투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영국에서 태어나 제식훈련을 강하게 받은 영국인으로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그가 바라보는 단 하나의 희망이자 동력은 ‘평등’입니다. 그런 지리멸렬함을 모두 덮고도 남을 에너지가 바로 평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나’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고 나눠 차별하려 드는 파시스트 세력을 향해 대항한다는 그 명분 하나만큼은 사람들이 부여잡고 있기에,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그나마 버티면서 심지어 소소하나마 전투에서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는 것이죠.
뒷부분은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오면서 그 희망이 산산이 깨지는 부분입니다. 전선에는 물자가 부족해 총마저 돌려쓰는 처지이지만 무정부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정부 측 치안대는 한 명이 소총과 권총을 모두 사용하는 행태, 코민테른 더 정확히는 스탈린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분명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세력을 ‘혁명의 적’이라며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라고 매도하고 내부투쟁에 골몰하는 꼬락서니, 이런 이들을 믿지 못해 최전선이 아닌 곳에서조차 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하는 아나키스트들까지.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이 뒷부분을 관통하는 감정은 ‘환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를 파시스트로부터 구하겠다,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아무리 공상 같고 낭만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의 변화를 이끄는 희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모습, 공화주의 정부 내부의 분열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누가 다수 세력이 돼서 정권을 잡고 누구를 내쫓느냐만 결정하는 무의미한 다툼일 뿐이죠.
이런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의 대립이라는 점과 각 진영 안에서 세부 세력들 사이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대와 대립과 반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듯한 생생함을 이 소설에서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이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는 정말 많습니다. 다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중에 청취자 여러분 모두에게 교양이 될 만한 작품만 콕 집어 선정해도 4개 정도가 떠오르네요.
분야별로 꼽아보자면, 그림으로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스페인 내전 당사자 중 한 명인 피카소가 그린 그림 ‘게르니카’가 있네요.
문학작품으로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있습니다. 같은 배경을 다룬 두 소설가의 작품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활동도 매우 가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영화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좌파 영화감독인 켄 로치의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과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가 있겠습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내전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데 충실한 다큐멘터리같은 작품이라면, <판의 미로>는 주인공 소녀의 꿈같은 동화세계가 현실의 참극과 만나 벌어지는 기괴한 모습을 묘사한 판타지 작품이죠.
예술작품 외에,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단행본 중에 가장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도서입니다.
이 모든 작품이, 스페인 내전과 관련해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한번은 꼭 눈여겨봐둘 만한 작품의 목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보시면서,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에 대한 여러 관점의 풍부한 정보를 얻어가신다면, 매우 좋은 독서 활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