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여성, 500파운드

by 청량음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탓에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 우리 동네 여성들의 우아하고 지적인 모임이 계속 불발되었다. 이번 달의 선정 도서는 무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첫 장을 펼치자마자 함께 펼쳐진 난해하고도 길고 긴 문장들로 구성된 글로 인해 한국말로 읽으면서도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보다 못한 모임의 리더 언니가 나섰다. 어차피 만나지 못할 것 같으니 매일 분량을 정해놓고 각자 읽어 본 후 인상 깊은 구절들을 발췌하여 자신만의 단상과 함께 카톡에 올리자고.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마침내 읽어 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사실 그녀의 작품들은 난해하여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작가이다. 그래서 항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아직 나의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도서관에서도 종종 그녀의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쉽게 내려놓고는 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완독을 하게 되니 그 기쁨이 참 컸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자 대학의 여학생들 앞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이틀 동안 진행한 강연 내용을 발전시켜 집필한 책이다. 그때는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것이 50년도 채 되지 않았었고(영국, 1880년),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 겨우 9년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1919년).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의견이라 했지만 그 시대에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견해였다. 어느 날 버지니아 울프는 갑자기 돌아가신 숙모님에게서 매년 500파운드가 지급되도록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딴 것보다 도대체 500파운드가 얼마 정도 되는 돈이었을까 매우 궁금해하더니 50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자 혼자 쓰기에 한 달에 400만 원이 좀 넘는 돈이면 꽤 괜찮다!) 그전까지는 신문에 결혼기사나 원숭이 쇼에 대한 기사를 쓰거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갔던 버지니아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녀는 단언한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더 먼 과거에는 더더욱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이나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소설가들은 공동의 거실에서 식구들이나 손님들의 눈을 피해 가며, 단 30분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글을 써야 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피를 토하듯 말하는 자신만의 방과 500파운드는 여성들이 어떠한 물리적, 물질적, 공간적인 제약 없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소설을, 시를, 픽션을 쓰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하는 필요조건을 의미했다.
“연 500파운드의 돈이면 한 사람을 햇볕 속에서 살아 있도록 유지시켜 준다.”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분명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통 속에 살다 갔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딸이라서 학교 공부라고는 받아보지 못했고, 의붓 오빠들에게 오랫동안 성폭행에 시달렸으며(그 충격으로 안 그래도 예민했던 성격에 정신질환이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마지막 자살시도가 성공하여 생을 마감했으며, 사회 전체에 여전히 만연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과 평생토록 정면으로 싸워야만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힘든 사업이다. 코뿔소 가죽 같은 피부가 필요한데, 아직 못 얻었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전투를 벌이라고 하지 않는다. 먼 옛날, 재능 있는 여인들은 그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회의 이상한 시선 속에서 외로이 때로는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으며 죽어갔고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는 지성적인 선대 여성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점이 있으므로 그를 바탕으로 지적인 전쟁에서 남성에게 승리하자 하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을 의식하도록 만든 모든 사람들이 비판받아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고,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면 안 된다고,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게 될 여성은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있어야 하며 더불어 자유와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 마지막 페이지들 때문에 나는 그녀의 난해한 글 앞에서 머리를 싸매 쥐었던 지난 고난의 시간들을 그만 잊어버렸다. <자기만의 방>은 나에게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버지니아 울프가 내 앞에 서서 나에게 도전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행과 모험에 관한 책, 연구서와 학술서, 역사와 전기, 비평과 철학, 과학에 대한 책들을 쓸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더 많은 책을 쓰라고 권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그리고 세계 전반에 도움이 될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리얼리티’란 무엇을 의미할까요?(이 리얼리티란 단어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며칠간 고민만 하다가 결국 인터넷 검색으로 어느 평론가의 글에서 답을 찾았다. 리얼리티란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계 없는 생각.) 때로 먼지투성이의 길에서, 때로는 거리에 떨어진 신문 조각에서, 때로 햇빛을 받고 있는 수선화에서 리얼리티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또한 방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비춰 주고, 어떤 우연한 말 한마디에도 강한 인상을 받도록 합니다.... 그것은 별빛 아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누군가를 압도하여 그 고요한 세계를 대화의 세계보다 더 리얼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리얼리티가 손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정되고 영원해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이제, 작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풍부하게 이러한 리얼리티 속에서 생활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리얼리티를 찾아내어 수집하고 그것을 여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지요. ‘리어왕’, ‘엠마’ 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나는 최소한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감각 기관이 신기한 개안 수술을 받은 듯 그 이후로는 사물이 더욱 강렬하게 보이지요. 세상은 그 덮개를 벗고 더욱 강렬한 삶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든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 사물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시야,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에서든 리얼리티를 발견할 줄 아는 안목’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끝내 무명인으로 내 삶을 마치게 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생각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열망하게 되는 <자기만의 방>이었다.

“내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과의 투쟁으로 뭔가를 쟁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반대 성(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여성이 아닌, 여성 그 자체로서, 여성인 존재로서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받아들여지고자 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그녀의 바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그 소박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전 생애를 통해 투쟁을 벌여야 했던 그녀의 스산한 인생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그렇다.

<자기만의 방>은 165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야기할 주제들이 참 많다. 단기간에 그 주제들을 다 공부해볼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알아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몰랐던 한 세상이 그 덮개를 벗고 더욱 강렬한 삶을 나에게 드러내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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