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한창 독일어 B1 시험을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공부는 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고자 열심히 보았던 이탈리아 드라마가 있었다. ‘나의 눈부신 친구’.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생소한 그 드라마를 한동안 열심히 보았다. 우리나라만큼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이탈리아. 나폴리 가난한 동네의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그 드라마는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길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그 자녀가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주인공 레누와 릴라. 두 소녀 모두 총명한 모범생이었지만 그 결은 완전히 다르다. 누가 봐도 그저 단정한 모범생인 레누에 비해 천재적인 똑똑함과 동물적인 본능에 가까운 예술성을 함께 갖춘 릴라. 여성은 집 안에서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고 젊은 여성은 아버지나 오빠와 동행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어딘가 가기도 힘들었으며 자신의 결혼 결정권마저 가지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똑똑한 두 소녀의 삶은 자연히 전투적일 수밖에 없었다. 초등 졸업 후 레누는 그나마 딸을 지지해주는 아버지의 빈약한 도움으로 중학교에 겨우겨우, 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이겨내고 진학할 수 있었으나, 릴라는 그녀의 천재성을 알아본 오빠의 기특하지만 어설펐던 도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창문 밖으로 내던져져 팔이 부러지는 폭력을 당한 후에 공부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꺾는다. 그때부터 그녀들의 삶의 행보는 완전히 달라진다. 레누는 유달스레 큰 딸만 구박하는 어머니와 전투를 벌여가며 힘들게 힘들게나마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지만, 릴라는 구둣방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 비좁은 가게에 들어앉아 빛나는 청춘과 지성을 낭비해가다 어린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녀들은 마구마구 흔들리며 피어가는 꽃이다. 시대에, 가족이라는 굴레에 의해. 또한 서로에 대한 강한 애정 못지않게 서로에 대한 강한 질투심으로 괴롭다. 레누는 릴라의 못되어 보이기까지 한 강인하고 확고한 행동력, 어린 시절 자신 만의 그림책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글솜씨와 예술적 감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할 정도의 총명함을 선망하고 질투한다. 릴라는 이제 자신이 닿지 못할 지성을 갖추어가는 레누를 질투한다. 레누가 만나는 수준 높아 보이는 사람들, 그들이 나누는 수준 높은 대화들, 그 속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레누를 바라보며 유치하게 친구를 조롱하듯 놀림으로 자신의 질투와 아픈 마음을 숨기듯 드러낸다.
둘의 삶의 행보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극명히 갈라진 건, 결국 교육 때문이다. 레누는 이상한 남자와 사귀고, 아무리 공부해도 이해가 안 되는 라틴어를 릴라에게 배워 자괴감을 느끼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의 순결을 버리고, 자신에게 관심 없는 별로인 남자를 짝사랑하여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끈질기게 진학을 해나갔기에(아버지가, 결국은 어머니도 억지로나마 허락을 해주었기에) 더 나아갈 기회를 얻고 다듬어져 갔다. 반면 릴라는, 한 천재를 이끌어줄 단 한 사람의 어른도 없었기에 지옥 같은 현실을 탈피하고자 구둣방에서나마 발버둥을 쳤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혼을 하고, 불륜으로 아이를 낳고, 타고난 총명함은 있으나 좋은 어른들에게 지혜는 배우지 못한 까닭으로 독불장군처럼 모두와 싸우고, 동물처럼 덤비고,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을 히스테릭하게만 표출하면서 아까운 그녀의 재능 또한 사장되어만 간다. 나였다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 친구를, 나보다 뛰어난 그 친구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림으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레누와 릴라는 수많은 일을 겪어도 여전히 서로를 아낀다. 레누는 릴라를 보며 어려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혼자 힘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릴라는 레누에게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한다. 죽어도 결코 공부를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자신이 등록금을 대어줄 테니 계속 공부하라며. (그녀는 부자 남자와 결혼해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다) 드라마를 보며 참 안타까웠던 것은 릴라가 부자 남편의 재산을 이용하여 학업을 이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결혼 한 여자에게 전혀 학업의 길이 열리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귀띔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 그런 생각조차 못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즌 4까지 예정되어 있다는 이 드라마는 이제 시즌 2가 끝났다. 릴라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와 함께 남편을 떠나 지독히 궁핍한 삶을 살게 되고 그런 그녀를 찾아 나선 레누가 결국 사랑하는 친구의 가슴 아픈 몰골을 보게 되는데서 드라마가 끝나는 바람에 그녀들의 앞으로 인생 여정이 궁금하던 차였다. (처음 본 이탈리아 드라마가 너무나 인상 깊어 지난여름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기까지 했었다. 깊이 후회했지만.. ㅋ) 얼마 전 이 드라마가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꿀 정보, 서울시 도서관에서 전자책 대여를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그 책이 있다!! 환호성을 지르며 당장 대출을 했다. 이제 시즌 3과 4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예순 넘어까지 이어지는 그녀들의 인생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의 원작인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몰입하여 완독 했다. 서울시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핸드폰 화면으로 읽을 수 있어서 들고 다니기가 편했기에, 남편과 밥을 먹을 때도, 양치질을 하면서도, 싱크대를 정리하면서도, 아이들의 하교 시간을 기다리는 차 안에서도, 수시로 나의 마음은 이탈리아 나폴리를 헤매었다. 현재 ‘나의 눈부신 친구’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고 있는 이탈리아 시즌제 드라마는 이 나폴리 4부작을 영상화한 것이다. 총 4권의 책으로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드라마가 1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만 보여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네 권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였고 각 권이 한 시즌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인생이 또 있을까. 레누와 릴라의 6세에서 66세에 이르는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어내는 온갖 불행의 결정체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느낀 그녀들의 가장 큰 불행은 두 여성 모두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인 듯하다. 온갖 역경을 이겨낸 레누는 어린 시절 릴라와 함께 꿈꾸었던 작가가 된다. 글을 써서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돈도 벌고 세 딸도 얻었다. 하지만 끝까지 릴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릴라가 너무 천재적이고, 모든 남자들이 반할 만큼 아름답고 매력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재능은 모두 릴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릴라 없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인생 후반에 이르기까지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릴라는 어린 시절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평생 사로잡혀있다. 레누는 중학교에 갔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아픔이 너무 커서 무엇을 하든 끝까지 그 일을 붙잡고 성공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뛰어난 예술 감각으로 구두 디자이너가 되었어도 성공했을 테고, 그 시대 막 태동하던 컴퓨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으니 더 노력하여 더 큰 기업으로 일구어 낼 수도 있었을 테다. 하다못해 남편의 돈으로 조금 더 학업을 이어가서 교육자가 되어 낙후되고 수준 낮은 나폴리의 교육환경을 바꾸는데 일조를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릴라는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남편의 속물스러움을 탓하고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탓하느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는 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만한 겸손함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 말고도 너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한 다른 길이 꽤 많이 있다고 누군가 말해준들 릴라가 그 충고를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다.
레누는 평생 릴라의 못돼먹은 구석에 당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애써 도망치듯 떠나버렸던 나폴리로 아니 릴라 곁으로 다시 돌아가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내며 아이들을 키운다. 레누에게 몇몇 사람이 그랬다. 레누 네가 훨씬 나아. 네가 더 아름답고 성격도 좋고 똑똑해. 릴라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너를 미워해. 하지만 레누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에요. 릴라는 나를 좋아해요. 그저 지금 마음이 힘들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게 해서 나에게 못되게 하는 것뿐이에요.
그녀들의 이야기가 끝난 지금 나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레누는 릴라를 사랑했다. 그녀의 독설이 아프고 대놓고 하는 질투에 가슴이 미어져도 그녀를 자신의 근원처럼 여기며 평생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런데 릴라는 레누를 사랑했을까? 레누를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이 릴라에게 없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가장 밑바탕에는 나는 너보다 나아, 내가 더 뛰어나, 그런데 나는 중학교에 못 갔다는 이유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 뿐이야, 원래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거야, 내가 공부만 했었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텐데, 큰돈도 벌었을 텐데, 멋지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질투심이 암세포처럼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레누에게는 릴라와의 인연이 득이 되었을까 독이 되었을까. 등 뒤를 찔러오는 릴라의 가시로 인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부, 명예, 명성을 얻었지만, 끊임없이 릴라를 의식하고 질투하고 상처받으며 살아왔던 그녀의 삶은 과연 괜찮은 것이었을까. 레누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정 릴라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사람이었을까. 릴라에게 영감을 받지 못했다면 그녀가 이룬 모든 것은 없었을까.
릴라의 삶에서 레누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찢어지게 가난하고 남루한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학까지 나와서 성공한 여성이 된 레누가 없었다면 비교하게 되고 빛나 보이는 대상이 없으므로 조금은 편했을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미 가진 자신의 장점을 살려 그녀 만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었을까.
두 여자의 비극은 릴라의 딸 티나의 실종으로 극대화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인 그녀들의 6세 시절, 함께 처음으로 인형을 가지고 논 날, 릴라는 레누가 사랑하는 인형 티나를 어두운 지하실로 통하는 환풍기 속으로 던져 넣는다. 약이 오른 레누도 릴라의 인형 누를 그곳으로 던져버린다. 둘은 인형을 찾으러 무서운 지하실로 내려가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레누는 티나를 잊지 못해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세월이 지나 릴라가 여자 아이를 낳고 이름을 티나로 짓고 그 아이가 6세가 되었을 때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진다. 어린아이 일 뿐이었던 릴라의 심술궂은 행동에 대한 업보로 인해 그녀의 딸 티나도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했을까. 두 티나의 운명이 소름 끼치게 닮아있어 딸을 잃은 후 살아 있으나 살아있지 못하게 되어버린 릴라가 더욱 가여웠다. 소설의 처음과 끝은 66세가 된 릴라의 실종을 알린다. 친구의 인형 티나와 자신의 딸 티나처럼 이 세상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릴라.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레누의 집에 소포가 와 있다. 60여 년 전 어두운 지하 창고 구석에 던져져 실종되었던 인형 티나와 누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즐겨 불렀던 ‘산타루치아’라는 이탈리아 가곡 2절에 그 지명이 등장하여 막연히 아련한 먼 이국의 아름다움을 선망하게 했던 그곳 나폴리가 실은 마피아가 득세하였던 곳이었으며, 가정에서든 길거리에서든 폭력이 난무하던 곳이었으며, 누군가가 실종되거나 살인을 당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던 곳이었고, 남루하고 상처로 얼룩진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던 이탈리아 민중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한국학교 국어 수업을 준비하다가 기형도 시인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하나 찾았다. 그리고 레누와 릴라에게 꼭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문구가 바로 그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 시와 릴라의 삶이 시간과 공간, 픽션과 논픽션을 뛰어넘어 하나로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