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박완서 중단편선

by 청량음료

하계동에서 만난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인 이준맘이 이별의 선물로 나에게 건넨 책은 박완서의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그녀는 2011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녀의 1970년대 작품에서부터 사망 전 해에 쓴 작품까지 엮은 중단편 소설집이 올해(2021년) 새로 나온 것 같았다. 독일 생활이 심심할 무렵 읽으려고 컨테이너에 실지 않고 캐리어로 가지고 왔는데, 생각보다 독일 생활이 버라이어티 하여 읽을 짬을 내지 못하다가, 얼마 전 아이들의 학교 방학과 나의 어학당 방학을 맞이하여 시간이 많아지자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그녀의 전작들에서 엿볼 수 있었던, 가슴 아픈 시대 상황과 맞물린 개인의 비극적 경험들이 다시금 이 책의 각각의 소설들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데다가 하나하나의 소설 모두 읽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음은 물론 반전의 묘미와 생생한 감정의 묘사로 인해 읽는 기쁨이 매우 컸다.


6.25 전쟁으로 오빠와 숙부를 비명에 잃은 경험과 더불어 살아남은 자로서 짐승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그녀. 남편과 아들을 한해에 떠나보낸 가슴 아픈 경험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작품에는 반드시 죽음에 있다. 휴전 이후 이데올로기로 인한 혼란의 시기에 그 거센 물살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한 오빠와 숙부와 스승의 참혹한 죽음이 있고, 암을 못 이긴 남편의 때 이른 죽음이 있으며,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하던 때 지켜내지 못했던 복중의 딸의 죽음이 있고, 갑자기 닥친 가난에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딸만 하나 남겨놓고 동반 자살해버린 철없는 부모의 죽음이 있다. 평범하게 늙어서 육체가 노쇠해 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가지지 못했던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억울함이 크겠으나, 사랑하는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죽음을 옆에서 겪어내고 그 이후에는 남겨진 자로서 잊히지 않는 기억을 다스려가며 살아내어야 하는 사람들 또한 그 수고로움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시대가 그러하여 한번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질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여러 번 겪어야만 했던 그녀의 신산한 삶이 이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그 울림이 더 크다.


아무래도 소설가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기왕이면 비극적인) 경험을 해야 그 글도 특별해지는 것인가. 비극적 인생을 산 모든 이들이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 다행히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그녀가 자신의 평범치 않은 인생을 문학으로 승화하여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것에 감사하고 싶다. 그녀의 불행을 보며 난 저 정도는 아냐 위안 삼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불행을 훌륭히 딛고 일어서는 한 인간의 위엄이 눈부시다. 그녀의 위엄은 너무나 보배로워 그런 위엄을 지닐 수 있었음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울러 부디 나의 주어진 삶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위엄을 잃지 않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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