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오기 직전까지 일했던 네 군데의 지역아동센터 중에서 유독 힘든 곳이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동센터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아, 장애우들 등 가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던 데다가 여자아이들에 비해서 남자아이들의 비율이 거의 80프로에 달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남자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덩치가 나보다 크고, 욕을 달고 살고, 사랑과 관심을 구한다는 것이 외적으로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한마디로 대하기가 난이도 최상급인 그런 어린이들이 많이 모여있었던 곳이었다. 초반에는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일주일에 한 번 그곳에 가기 전날부터 아~ 내일 일하기 싫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에다가 그곳에서 상주하시며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그 아이들에게 적응하고 이겨내기를 기다리시는 분들이라 더욱 멘붕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아들 둘을 키우는 씩씩한 엄마 아닌가.. ㅋ 남자아이들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대하되 선을 넘는다 싶으면 강한 레이저를 동반한 눈빛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샤우팅도 불사하며 나의 나됨을 그 어린이들에게 어필하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그 어린이들을 대할수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으나 사연이 없는 아이들이 없고, 마음이 아파서 더욱 거칠게 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으로는 욕을 하고 있으나 내면은 여리디 여린 어린아이들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들이 더 좋아졌다. 거칠게 굴어도 미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어린이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들이 잘못했을 뿐. 그중에서도 더욱 마음이 가는 어린이가 있었다. (철수라 하자) 철수는 귀여운 외모에, 수업 시간에 대답하는 것을 보면 머리도 좋은 것 같았는데, 누구보다도 거칠었다. 화가 나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수업을 같이 듣던 형을 발로 차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혼이 나는 중에도 센척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모든 어린이들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칭찬에 가장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철수에게도 너는 똑똑하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한번 철수가 그랬다. 선생님은 저의 진짜 모습을 모르시잖아요. 제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나는 너의 진짜 모습을 모르지.. 일주일에 한 번, 50분 수업을 하면서 그 모습을 볼뿐이지.. 하지만 그 50분 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있지..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되었을 때 갑자기 나는 독일로 가게 되었고 그 어린이들과도 이별을 해야 했다. 마지막 수업 전 주에 말했다. 선생님이 아주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어. 그래서 다음 주가 마지막이란다. 내 기억엔 나와의 이별을 대놓고 기뻐했던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 주가 되었을 때 센터에 조금 늦게 도착한 철수가 오자마자 크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독서 선생님 안 오셨어요? 나도 크게 대답했다. 철수야, 내가 왜 안 왔겠니 여기 있거든! 철수가 속한 나이대의 학생들은 더 이상 어리지도 그렇다고 철이 들 나이도 아닌, 가장 다루기 어려운 100% 남자아이들로만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마지막 수업 중 그 어린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준비된 멘트는 아니었고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어린이들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어린이들은 항상 행복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기쁘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때로는 너무 힘들고 때로는 죽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선생님이 살아보니 이 시간은 지나가더라. 선생님도 많이 힘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어. 선생님 얼굴 봐봐. 예쁠 뿐 아니라 행복해 보이지 않니? ^ㅇ^ 힘든 시간만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너희가 속한 곳보다 훨씬 넓고 멋진 세상이 있거든. 대신 제발 몸에 안 좋은 건 하지 말자. 술 담배 하는 사람 있음 이실직고해! 그리고 제발 나이에 안 맞는 야동 같은 거 좀 보지 말고! 나이에 안 맞는 것 하면 정말 나중에 후회한다고. 그리고 위험하니까 오토바이도 제발 타지마! 선생님이랑 약속해!
다들 킥킥대며 웃는다. 초등학생인데 술 담배를 경험한 아이들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서로 얘가 했다며 일러바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이도 죽고 싶을 만큼 불행할 수도 있다는 나의 말에 반짝 눈물을 내비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수업이 끝나고 철수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그 틈을 타 난 철수에게 말했다. 철수야, 너 똑똑해. 선생님은 그거 알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알았지? 철수는 또 그런다. 선생님은 저의 진짜 모습을 모르시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철수의 가정환경 이야기로 이어졌다. 본인은 입양아라는 것. 양어머니는 좋은 분이시지만 입양된 가정도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 이미 성인이 된 형과 누나가 있는데 누나는 자기가 버릇없게 굴어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자기를 예뻐해 주던 형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는 것. 형은 가족들이 감옥에 있는 자신을 잘 돌보아 주지 않아서 인연을 끊겠다며 분노하고 있고, 어머니는 너무나 슬퍼하시지만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시는 바람에 면회 갈 시간조차 없다는 것,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수는 그 현실에 마음이 많이 많이 아팠다. 많이 아팠는데 자신은 어리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욱 슬펐다.
철수와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민수(가명, 민수는 덩치가 진짜 큰데 소심하기 그지없어서 다루기 진짜 힘든 친구였다)가 문을 빼꼼히 연다. 어린이들도 불행하고 죽고 싶을 수 있다는 말에 아주 살짝 눈에 물기가 돌던 그 친구이다. 무슨 이야기해요? 너도 들어오고 싶어? 네!
아… 정말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시간에야 이 어린이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민수가 들어오고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직 남아있는 수업이 있었기에. 수업을 마치고 센터를 나오는데 마침 철수와 민수가 대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오락을 하고 있다. 잘 지내라는 인사를 밝게 하고서는 그 어린이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그 가벼웠던 마지막 인사가 아직까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 어린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맞추고서 이야기해 주었어야 했다. 너희들은 충분히 괜찮은 아이들이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잘 자라주어야 한다고. 선생님이 어떻게든 지켜보겠다고.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일본식 세로줄로 된 책이 많았다. 글자가 깨알같이 작고 종이는 누렇고 그림 하나 없었던 그 책들을 내가 읽어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당시에 우리 부모님 취향으로 갖춰져 있었던 그 책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어른이 된 후로도 어느샌가 책장에서 사라져 간 그 책들이 향수처럼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책들을 가끔 사 모을 때가 있는데, 그 덕분에 우리 집 책장에 A.J. 크로닌의 작품이 꽤 모였다. 내가 어렸을 무렵 크로닌의 작품이 한국에서 유행이었다고 하는데, 엄마도 그 유행을 따라 사두셨던 듯하다. 며칠 전 갑자기 그곳 센터 어린이들과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나 나의 마음이 아릿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크로닌의 책이 있었다. ‘고독과 순결의 노래’. (영어로 된 원 제목은 The Green Years. 원제에 비해 제목 번역을 간질간질하게 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크로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8살에 양친을 모두 잃고 외가에서 성장하게 된 로버트. 그의 부모님의 결혼은 서로를 적대시하던 종교의 결합이었으므로 그들 생전에는 친지들과의 왕래는 거의 끊기다시피 하였고, 부모님의 죽음 이후 오게 된 외가가 있는 동네에서 로버트는 악마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의 취급을 받으며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마음 둘 곳 없이 자라는 로버트의 외로움과 그의 명석함을 알아봐 준 유일한 사람은 외증조할아버지였는데, 외증조할아버지는 가족 내에서 짐처럼 여겨지며 능력도 돈도 없고 허풍만 심한 사람이었으나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로버트를 그 나름의 방법과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뒷바라지해 준다. 그리고 결국 외증조할아버지가 가족들 몰래 사망 보험금을 로버트 앞으로 남김으로 그 덕분에 공장 일꾼으로 일하던 로버트가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날, 그 7월 20일에 덕디 거어(덕디는 멋쟁이라는 뜻)가 내 사무소에 들르셨습니다. 나는 노인을 ‘덕디’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토록 실패를 거듭하고, 그토록 불행을 겪으면서도 나는 그가 내 친구였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때 보험증서를 다시 쓸 수 없느냐고 나한테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오후 길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보험금은 1 페니라도, 아니 1 페니의 우수리까지도 전부 여기에 있는 로버트 샤넌에게 유증 하신다는 것을, 그것도 내가 후견으로 윈톤 대학 의과 과정을 끝내도록 위탁하신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그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아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구나. 힘들고 슬플 때 달려갈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가진 이는 행운아구나. 센터 아이들이 내 마음을 맴돌고 있는 요즘, 그 어린이들이 거어 할아버지와 같은 후원자를 가진 행운아들이 되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거어 할아버지는 많이 허술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가족들의 멸시마저 받는 힘없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혼자 던져진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올바른 어른이었다. 우리 어린이들이 살면서 좋은 어른을 단 한 명 만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불행한 그 때라도 그 어른에게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철수와 민수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결국에는 덕디 거어와 같은 어른들로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