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소외된 자들의 노래

by 청량음료

세상에 기댈 곳 없이 살아가는 죽은 창녀의 자식 모모가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도 되지 않을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생의 이야기. 유대인이며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은퇴한 창녀 로자 아줌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는 모모.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 없는 중에서도 서로를 돕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따뜻함(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다 사회적 약자네요. 창녀, 여장남자, 유태인, 아랍인 등..), 모든 삶의 배경과 토대를 다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이 애틋하고 가슴 저릿했으며 그 끝이 비극적이고 너무 빨리 찾아와 더 가슴 아팠던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촛불을 있는 대로 다 켰다. 나는 화장품을 들고 입술에 루주를 발라주고 볼터치를 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주었다.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내 주위의 촛불이 꺼졌다. 나는 다시 불을 붙였다. 촛불은 여러 차례 꺼졌고, 나는 다시 불을 붙이고, 또 붙였다. 네 살이나 더 먹었는데도, 푸른 옷의 광대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온몸이 아팠다. 노란 옷의 광대도 왔다. 나는 단번에 먹었던 네 살의 나이를 떨쳐내 버렸다. 모든 게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가끔씩 일어나서 로자 아줌마의 눈앞에 히틀러 사진을 가져다대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한두 번 뽀뽀도 해주었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다.’


이 책에서는 로자 아주머니의 죽음을 향한 여정과 그 고통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아주머니가 세상을 떠날까 그래도 버텨주셨으면 좋겠다, 모모를 위해서, 그렇게 바라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결국 아주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고.. 책의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아주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됩니다. 모모의 슬프고 절망적인 심정이 오롯이 느껴지지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 그 이상으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였던 세상에 남은 우리 두 사람, 그중 하나가 세상을 떠나고 나 혼자 세상에 던져졌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 모모의 어깨를 누르는 공기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습니다.


세파에 시달리고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이 힘들어 봤으므로 다른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거나, 내가 이런 상처를 받았으므로 나에게 선한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식으로 악에 받쳐 사는 사람이 되거나. 로자 아주머니는 전자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누구의 생이든 그 생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말입니다. 로자 아주머니가 돌보았던 어린이들은 모두 길거리 창녀들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원래 태어나면 안 되었을, 버려지고 숨겨져야만 하는 아이들이지요. 로자 아주머니는 때로 그 아이들을 거칠게 대하기도 했지만 그 존재마저 부정하거나 함부로 학대하지 않습니다. 비록 돈을 받고 그들을 돌보고 있지만 돈 그 이상의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가지고 그 아이들을 보살펴준다는 느낌이 듭니다.(세심하진 않지만요..^^).


로자 아주머니는 ‘잘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로자 아주머니가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것이 병원에서 겨우 숨만 붙어있게 하면서 억지로 살려놓는다는 사실이었는데, 죽어서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것보다 그런 꼴을 당할까 봐 더 무서워하지 않았나 합니다. 모모는 어렸지만 로자 아주머니의 그 마음을 잘 알았을 겁니다. 그 두려움을 알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로자 아주머니의 소원을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뭘까요? 로자 아주머니는 이제는 늙고 뚱뚱하며 때로는 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주 치매 증상을 보이며 추태를 부리기도 하지요. 모모 또한 그 외모로 봐서는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을, 10살이라 주장되어지지만(로자 아주머니에 의해) 실제로는 14살인 거칠고 조숙한 아랍계 소년입니다. 그런데 그 둘은 서로 사랑합니다. 친모와 친자는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요. 겉모습이 사랑받을 만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로자 아주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아이 모모, 아주머니가 죽기 전에 모모에게 그 사랑을 전하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모는 아주머니의 그 사랑을 기억함으로 좋은 어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모모를 얼마나 사랑하면 자신의 곁에서 빨리 떠나보내기 싫어서 나이를 줄이고, 친부에게 다른 아이를 네 자식이라며 거짓말을 했을까요. 그 행동이 모모와 함께 있고자 했던 아주머니의 절박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모모는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여전히 고단했으리라 짐작되는 그 이후의 모모의 생을 비추어주는 밝은 빛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로자 아주머니의 얼굴에 화장을 덧칠하고 향수를 부어가며 보내었던 모모의 3주가 마음에 참 아프게 남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생이 있는데 그 무게는 불공평할 정도로 다릅니다.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생을 짊어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돈을 벌고자 하고, 더 많이 배우고자 하고, 성공하고자 하겠지요.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모모의 앞에는 너무나 무거운 생이 놓여있었습니다. 그의 생의 무게를 덜어주려 함께 애써주는 누군가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아이였습니다.(하밀 할아버지가 인정했었나요?) 그리고 자신의 생을 진지한 태도로 살아가는 아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가진 특별함이 그가 견뎌야 했던 생의 무게와 만나 이 책에서 나오지 않는 어른이 된 모모의 생의 어느 지점에서 크게 빛을 발했을 겁니다. 아마 훌륭한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모모와 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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