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한 소년의 특별한 성장통 이야기

by 청량음료


얼마 전 2년 반 만에 이루어진 고국 방문을 마치고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거나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거나 하는 욕구도 별로 없던 2년 반 동안 가장 아쉬웠던 건 책이었다. 아이들 읽힐 책, 내가 읽을 책, 교과서, 자습서, 문제집들.. 회사의 배려로 200킬로가 넘는 짐을 가지고 올 수 있다기에 그럼 그 짐들을 책으로 가득 채워 와 보자 했다. 그 사이 우리 아들들은 많이 자랐고 그들이 읽어야만 하는 책들도 달라졌기에 한국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을 끝낸 뒤 바로 달려간 곳이 알라딘 중고서점이었다. 중학생이 된 큰 아들을 위해서 인터넷을 뒤져 청소년 필독서 목록을 훑어보며 그곳에 구비되어있던 결코 중고스럽지 않은 가격의 책들을 가득 바구니에 담았다.


그 책들 중 하나가 어제 읽기 시작해 오늘 읽기를 마친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이다. 청소년 소설이자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책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으므로 아직 정리가 덜 되어 늘어져있는 여러 책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아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리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나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그가 내면적으로 성장을 이루어가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실을. 왜냐하면 현실의 인간사에서도 한 미숙한 인간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역경을 겪고 이겨내어야 하는데 하물며 소설 속에서는 더욱 극적인 장치를 위해서라도 역경이 한 인간이 견디어 낼 수 있는 최고치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결국 가여운 주인공이 역경을 겪고 이겨내어 가는 과정이 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인간사에서보다 더 높은 빈도로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때로는 그 해피엔딩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을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가 염려되는 역경을 겪은 후여야만 얻어질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이므로 내가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소설의 장르가 바로 영어덜트 장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의 마음 아픔과 이 소설의 높은 수준은 전혀 별개이다. 나는 창의성이 없어 결코 이런 천재적인 발상에 기반한 소설이나 동화 따위를 창조하지 못할 것 같은 자괴감이 자주 든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와 같은 이야기 또한 나의 자괴감에 한몫 보태었다.


부부 사이의 다양한 문제 특별히 남편의 막돼먹은 행실 때문이라 짐작되는 극심한 우울증을(이 또한 짐작) 겪고 있는 친엄마에게서 전철역에 버려진 6살의 나, 이틀 동안 실종된 아들을 신고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 끝내 목을 맨 엄마, 앞으로 남아있는 긴 인생을 위해 적당히 구색을 갖추어 맞아들인 새엄마, 그녀의 어린 딸, 아버지의 철저한 무관심과 부재, 6년의 세월 동안 견뎌야만 했던 새엄마의 극심한 정서적 학대, 그로 인해 생겨난 심한 말 더듬 증상, 어느 날 새엄마 배 선생의 어린 딸이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범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대라는 엄마의 모진 닦달에 못 이긴 딸의 손가락이 ‘나’에게 향하는 순간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집이라고 믿고 싶었으나 한 번도 집이 아니었던 그곳에서. 빈 손으로 신발만 겨우 꿴 채 도망친 나의 발길이 향한 곳은 집에서 끼니를 이을 수 없었던 내가 매일 빵을 사곤 했던 동네의 베이커리였다. 그곳의 사장이 살짝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긴 하지만 턱까지 쫓아온 그들의 추격을 피하려면 그게 대수는 아니다. 살려달라는 나의 더듬거리는 애원을 외면하지 않은 베이커리 사장은 오븐을 열어주고 그곳에 숨은 나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오븐 속이 실은 넓은 침대까지 구비된 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베이커리의 사장은 진짜 마법사이며, 그간 친절히 맞아주었던 내 또래 점원 아이는 실은 파랑새였다는 것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서 머물기 너무나 불편했지만 나는 갈 곳이 없다. 이제껏 집이라 칭했던 그곳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 그곳에서 날 기다리는 건 최소 냉대, 아니 거의 죽을 만큼의 폭력일 것이므로.




자격 없는 사람들이 부모가 될까. 이 질문은 답이 없지만 늘 내 맘에 있다. 이제 부모가 된 나는 그럼 그 자격을 갖추었나. 이 질문 또한 늘 내 맘에 있다. 한 인간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장소인 집,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사람은 보통 부모. 우리의 첫 시작이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 뇌리에서 이제는 지워져 버린 오래된 기억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세포에 각인되어 우리의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무서운’ 장소,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집이며 부모가 아닐까 한다. 그런 무서운 장소, 무서운 사람들이 좋은 곳, 훌륭한 사람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세상에서 범람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아마 사라질 것인데.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 6.25를 거치면서 어떠한 독특한 특성을 지닌 세대가 구성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고달팠던 어린 시절을 거친 우리 조상들이 집단적으로 비슷한 성격장애 유형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어디선가 본 듯도 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부모님을 가진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결핍과, 6.25를 거치면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결핍과, 그러한 결핍을 가진 부모님 아래 자란 우리들과, 개인의 운에 따라 행복했거나 불행했던 우리들을 부모로 만난 우리 자녀들의 세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세대가 내려옴에 따라, 불행의 농도가 희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불행의 농도를 희석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이제는 넘쳐나는 부모 교육이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개인의 행복을 더욱 중요시하게 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또 가정 내의 아동학대 문제가 더 이상 음지에서 숨어있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 이웃들의 관심 덕분에도 우리들의 자녀들은, 그 아래 세대들은 최소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 어린이들에게 ‘무서운’ 장소, ‘무서운’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무서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어떤 노력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단골손님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본 한 특별하고 신비한 이웃의 애정으로 구원을 얻는다. 마지막 헤어짐의 순간에 베이커리 사장이 건넨,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타임 리와인더. 그 포춘쿠키를 먹음으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그것의 도움 없이 주어진 대로 인생을 살아갔는가 두 가지 버전의 마지막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포춘쿠키를 먹은 인생과 먹지 못한 인생, 두 인생 다 괜찮은 엔딩이었지 싶다.


배 선생 없이, 말더듬증상 없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상처 없이,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 사장과 파랑새 점원은 비록 잊어버렸으나 앞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인생 하나.


지난날의 상처는 여전하나 모든 사건이 지나가고 어느 정도 해결 된 지금, 말 더듬 증상도 점차 나아지고, 훌륭한 신체비율을 가진 덕분에 얻게 된 레스토랑에서의 일자리, 그럭저럭 살아가던 일상, 어느 날 다시 찾아온 나의 두 구원자. 그들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미래. 틀림없이 베이커리 사장과 파랑새 점원과 함께 하게 될 또 다른 인생 하나.


내가 알기로는 ‘위저드 베이커리’는 중학생 필독서이다. 하지만 난 중학생인 큰아들이 이 책을 지금 읽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읽기엔 이 소설은 좀 많이 매운맛이다. 마음 아픈 세상의 이야기는 최대한 늦게 알게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라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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