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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Jan 05. 2023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生의 찬미

러시아에 머물렀던 9년여 동안 많은 현지인들을 만났다. 여담이지만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해서 꼭 현지 외국인들(우리 입장에서)을 많이 만날수 있다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간 데다가 교회의 목사님을 도와 한글학교 교사로도 일을 했으므로 많은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을 어른들부터 어린이들까지 남녀노소 세대를 아울러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고려인 가정에서 하숙까지 했으니.. 그런데 남편은 힘들게 떠난 모스크바 연수에서 한국인 형들과 한 집에서 지낸 데다가 한 반의 동급생이 모두 중국인들이었다고 했다. 거기다 큰 한인교회에 출석을 한 까닭에 학교와 집과 교회 등 그의 동선에 있는 모든 지인들의 국적은 러시아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난 그를 종종 놀려댄다. 어떻게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인 친구를 하나도 못 만났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를 그 정도로 말하고 이해하고 일하는 데 있어 부족하지 않은 걸 보면 그가 언어적 감각이 있음에 감탄을 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암튼 난 운 좋게도 많은 러시아인들에 둘러싸여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로 인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은 과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한 고생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를 한 많은 민족이라 칭한다. 그런데 러시아인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물론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다. 극소수인 러시아 귀족들을 제외하면 러시아의 농민들과 농노 등 대다수의 일반 백성들의 삶은 궁핍하고 고달프기 짝이 없었던 데다가, 1900년 대에 들어와서 사회주의 혁명을 겪으면서 이념 문제로 동족끼리 서로를 죽고 죽이는 비극을 겪었고, 1940년 대에 들어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탈린이 등장하여 수많은 자국민들을 숙청했다. 그러한 역사의 쓰나미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운이 좋아 겨우 살아남았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가진 나의 러시아 지인들 또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러시아 땅의 주인인 러시아인이 그랬다면 그 땅의 이방인이었던 고려인들은 더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 이동 정책’에 의해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떠밀려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가축 실어 나르는 열차에 내팽개쳐지듯 맨몸으로 올라야 했던 우리의 조상들. 콩나물시루 같던 열차 안에서 죽어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랜덤으로 도착한 낯선 땅에서 그들은 맨주먹으로 일어서야 했다. 당연히 집이 없었으므로 그 추운 날 땅을 파서 잠을 잤으며 그들을 불쌍히 여긴 그곳 주민들이 밥을 가져다주기도 했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뻘되던 나의 지인들(러시아인, 고려인 모두)은 아주아주 많은 고생을 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남편들은 술을 먹느라 가장 노릇을 하지 않기 일쑤였고,  그러한 고난의 시절을 지나며 때로는 본인들이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술을 먹느라 자녀들을 방치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러시아 땅에서 삶을 살아낸 민초들은 고생을 아주아주 많이 했다. 하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던 그 시대는 누구에게나 가혹한 시기였을 것이다. 나라끼리 편갈라 죽고 죽이고, 한 나라 안에서도 민주주의 사회주의 갈라져서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죽고 죽이고, 나라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던 독재자들이 여럿 등장하여 자국민들 마저도 죽였던 시대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온갖 죄목을 씌워 국민들을 탄압하고 숙청했던 스탈린 시대, 국가의 명령을 따라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독일군 포로가 되었는데 그곳을 운 좋게 탈출했다는 죄목으로 시베리아 유형지에 끌려간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수용소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옥에서의 이야기가, 그 어떠한 감정묘사도 드러나있지 않은 그저 사실과 상황만 나열되어있는 극사실주의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재미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참혹해서 그렇게 표현하기가 죄스럽다. (러시아 문학은 정말 위대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헷갈리고 읽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러시아의 이름은 그 순서가 이름+부칭+성 이며, 그래서 정식 이름이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이 책에서는 ‘이반’은 주인공의 이름, ‘데니소비치’는 그의 부칭인데, 부칭은  아버지의 이름을 의미하며 이반의 아버지는 데니스임을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이름과 부칭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감옥 동료들 중에는 영하 40도에 가까운 날씨를 견뎌가며 중노동을 해야 마땅한 중죄를 지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내놓고 용감히 바다에서 적들과 전투를 벌이던 해군 중령이었고, 아버지가 부농이었다는 이유로 붉은 군대(붉은 군대는 사회주의 계열)에서 쫓겨난 전직 군인이었으며, 나라의 고급 관리였고, 촉망받던 영화감독이었고, 침례교도였고, 귀머거리였다. 그들은 그저 운이 없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고, 약삭빠르지 못해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이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모든 이들이 다 똑같아 보이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도 계급은 있었다. 약삭빠른 죄수들은 교도관들에게 잘 보여 편하게 지내고자 동료 죄수들을 밀고하고 더 악랄하게 괴롭히며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깥세상에서 돌봐주는 이가 있는 죄수들은 정기적으로 담배, 빵, 소시지, 차 등과 같은 소포를 받으며 윤택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은 얼어붙은 추위에 온기 하나 없이 일해야만 하는 중노동에서도 제외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이반 데니소비치는 약삭빠르지도, 뒷배가 있지도 않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멀건 죽을 얻기 위한 아귀다툼에 매 끼니 성실하게 참여한다. 윤택한 죄수들이 베푸는 한 모금의 담배를 얻어 피우거나 그들이 먹지 않는 하지만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한 조각의 빵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잔심부름을 한다, 뭔가를 바라고 있는 티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면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중노동을 잘 해내기 위해 맘에 드는 연장을 한 구석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써가며(들키면 독방행임에도 불구하고) 노동 종료 호각이 들릴 때까지 숨도 쉬지 않고 예쁘게 담을 쌓는다. 밑바닥까지 구차해져야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상황처럼 보이나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이반 데니소비치는 매일을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며 인간의 목숨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단 하루라도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살지 않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그들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사실 인생은 꼭 의미가 있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목숨이 이어져 나가기 때문에 산다, 수용소의 104반 죄수들처럼. 배가 고프므로 무엇이든 입에 넣고, 담배가 피우고 싶으므로 남들이 버린 더러운 꽁초를 주워 모으고, 어린 동생을 부랑자에게 버렸던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에 가슴이 찢어져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사실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누군가는 평생을 좋은 환경에서, 누군가는 이반 데니소비치와 같이 극악의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 소설에는 아주 잠시 등장하지만 아주 인상 깊은 한 등장인물이 있다.


‘그가 수용소와 감옥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이젠 햇수를 셀 수조차 없다. 게다가 그는 그동안에 단 한 번도 특사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10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어느새 새로운 형기가 추가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의 성)는 처음으로 그를 가깝게 마주 볼 기회를 가졌다. 수용소 내의 대부분의 죄수들이 고양이 등처럼 꾸부정하니 등을 구부리고 있는 데 반해서, 유독 이 노인만은 언제나 등을 쭉 펴고 있다..… 그는 끝이 닳아빠진 나무 수저로 건더기가 없는 국물을 단정히 떠서 마신다. 다른 죄수들처럼 얼굴을 국그릇에 처박으려 하지도 않고, 수저를 높이 쳐들이 입으로 날라간다. 이는 아래위 하나도 없다. 뼈처럼 굳어진 잇몸으로 그 굳은 빵을 씹고 있다. 그의 얼굴에서는 생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폐인처럼 연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뭇거뭇했다. 쩍쩍 금이 간 그의 크고 검은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 동안의 감옥살이를 통해 사무나 경노동 같은 일에는 거의 혜택을 받아보지도 못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굴할 줄을 모른다. 어떤 종류의 타협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400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그렇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물에 더럽혀진 식탁에 대뜸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깨끗이 세탁한 천조각을 깔고서 그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셀 수조차 없는 세월 동안 수용소에서의 중노동을 견뎌 온 ‘Ю(유) 81번 노인’을 통해 솔제니친이 보여주는 불굴의 인간상이다. 아마 그 노인이 결코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이 그런 인생도 오랫동안 견딜 수 있나 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 삶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고, 어떤 형태의 삶이 주어지든 겸허히 받아들이며, 비록 참혹한 삶이 주어졌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발끝만 바라보며 그렇게 견디어 갈 수 있다고 솔제니친은 말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또 한 사람 ‘추린’이라고 하는 인상 깊은 인물이 있다(사실 모든 등장인물이 인상적이다). 그는 부농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붉은 군대에서 쫓겨났다는 사람인데, 겨우 고향집에서 어린 막냇동생만 빼내어 도망을 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동생을 맡아달라며 부탁하고 헤어져서는 그 아이를 다시는 보지 못한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반 데니소비치가 속한 104반의 반장이다. 반장은 그곳에 속한 죄수들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너무 힘든 노동이 배당되지 않도록 간수들과 협상을 벌일 줄 알아야 하고, 다른 죄수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어주려 목숨 걸고 나서야 하기도 한다. 또 같은 반의 동료 죄수들이 제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할 때도 있다. 반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가혹한 환경의 수용소 죄수들은 더 쉽게 죽을 수 있으므로 반장의 역할이란 엄청나게 크고 또한 존경을 받는 위치라 할 수 있다. 어린 동생을 그 이후에 만나보지 못했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없어.. 그래도 괜찮아. 이곳에서 얼마든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

그를 보면 가혹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또 하나 있나 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했던 ‘삶의 의미’. 린의 삶의 의미는 104반 동료 죄수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었을 거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은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초라한 이반 데니소비치가 부유한 죄수 체자리의 목숨같이 소중한 음식 소포를 지켜주고, 체자리는 또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소포에 들어있던 소중한 음식을 이반 데니소비치에게 나누어주고, 이반 데니소비치는 아무런 대가 없이 침례교도 알료샤에게 비스킷을 나누어준다. 나의 초라한 온기가 다른 이들이 살아갈 또 다른 하루를 버틸 힘을 주는 것이다.




화상을 입어 아름다웠던 겉모습은 잃어버렸으나 더욱 아름다운 내면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이지선 한동대 교수 영상을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어떤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러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아주 쉽게 제가 속단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이 과정을 지나면서 살아남은 모든 존재가, 하루를 넘긴 모든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누군가는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응?”하면서 의문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무수히 어두운 밤을 많이 보내봤기 때문에 지금 이 삶이 너무너무 더 소중해지는 거예요.”

그녀의 이 말은 왜 살아가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대답이 될 터이다. 나에게도.


비교적 평온한 시대에 태어나 평온한 장소에서만 살아온 나는 틀림없이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지난 세월 인간이 견디기 힘든 모든 역경을 이겨낸 그들이 감사하다. 중앙아시아에서 맨 손으로 땅을 파서 잠을 자고 집을 짓고 척박한 땅을 일구고 자녀들을 길러내어 결국은 인정을 받았던 수많은 고려인들에게 감사하고,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무뚝뚝한 따뜻함을 잃지 않은 러시아인들에게도 감사하고, 만 10년 3653일을 형무소에서 하루같이 살아내었던 많은 이반 데니소비치들과 더 오랜 세월 버텨온 Ю81 노인들과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많은 추린들에게도 감사하고, 내가 평온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희생하여 준 수많은 대한민국 나의 앞선 세대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들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타협도 하지 않고 삶을 이어준 덕분에 더 나은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이다.


살아있는 행위 자체가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자.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굴하지 말자.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자. 그렇게 하루하루 발끝을 보고 살아가자. 이렇게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내 인생 꽤 괜찮았구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건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다.


아름다운 그녀 이지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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