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항상 엄마가 틀어놓으셨던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 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소 선물을 잘하지 않으시는 아빠가 특별한 어느 날 엄마에게 선물하셨던 cd였던가 보았다. 모든 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정도로 오랜 세월 집안 전체를 왕왕 울렸던 헨델의 메시아 덕분인지 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 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틀어주신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의 선율을 들으면서 너무 아름다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그때이다. 얼마전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너무나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럴 만도 하지..
어렸을 적 딸을 향한 엄마의 아낌없는 투자 덕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는데, 바이올린은 재미가 없었지만 피아노는 그럭저럭 내 맘에 들었는지 6학년에 체르니 50번을 치다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후에도 꾸준히 혼자 피아노 연주를 즐기곤 했다. 매일 1시간씩 연습을 했다는 건 아니고 잊힐 만하면 다시 피아노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 내 시간이 많아지자 피아노를 좀 배우고 싶어졌다. 치고 싶은 곡을 혼자 치다 보면 아무리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 보아도 어떻게 쳐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부분이 반드시 있었고, 답답한 마음에 잘 못 치겠는 그 부분을 아무리 열심히 유튜브로 들어 보아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있었으면 했으나 우리 집 한정된 가계를 나의 피아노 교습 따위로 축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독일로 왔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 또한 어렸을 때 피아노 개인 교습을 시작했다가 여러 이유로(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계) 그만둔 상태였으므로 독일에 오자마자 아이들의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보았다. 꼭 전공을 하지 않아도 인생에 클래식 음악이 스며 있다면 밋밋한 일상이 조금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아들들도 그렇게 클래식이 있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러다가 내 귀에 들려온 희소식이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바로 맞은편에 독일 헤센주에서 운영하는 음악학교가 있는데 그곳에 한국인 피아노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발달한 독일로 유학 온 박사과정의 젊은 남자 선생님과 스케줄 조율을 위한 카톡을 주고받다가 문득 내가 배워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해외 주재원으로서 현지에서의 삶은 한국에서보다는 넉넉한 편이기도 하고, 그새 좀 자랐다고 피아노를 다시 배울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아들들을 기다리느니 늘 간절히 피아노 선생님을 바랐던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나 자신에게 이득일 것 같았다. 엄마인 내가 먼저 배우겠다고 나서니 선생님이 좀 놀라시긴 했지만 그래도 그다음 주 수요일에 바로 나의 피아노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 수업은 2년 반이 지난 지금껏 꾸준히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지고 있다.
그간 우리 선생님과 함께 쳐내었던 피아노곡은 15여 곡이 넘는 것 같다. 베토벤, 드뷔시, 브람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하이든, 슈베르트, 쇼팽, 바흐 등 이름도 아름다운 작곡가들의 작품 세계를 여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 45분 피아노 수업을 받는 그 시간은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었다. 밥을 하고 아들들 공부를 시키며 지지고 볶았던 일상의 시간들은 피아노 수업이 진행되는 작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암전이 되듯 멀리 사라지고, 내 앞에는 온전히 음악으로만 충만된 시공간이 놓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곡의 이 마디에서 그냥 ‘시’ 음이 아니라 플랫 ‘시’ 음으로 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며 심지어 ‘햇살’과 같이 표현해보라는 선생님의 설명이 처음에는 참 어색하다 못해 황당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냥 시로 칠 수도 있는 거지 플랫 시가 너무나 중요할 건 또 뭐람.. 피아노 음 하나에 밥이 나와 돈이 나와.. 이런 불경한 생각을 초반엔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피아노 박사 앞에서 건방지게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이 음을 강하게 칠지 부드럽게 칠지 논하는 나의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
피아노를 꽤 배웠다고 자부하는 누구이든 치고 싶어 하는 모두의 버킷리스트와 같은 곡은 아마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선지 빼곡한 음들은 나의 기를 처음부터 죽였지만 그 음을 그대로 피아노로 옮긴 음악은 숨 막힐 듯 아름답고 내 손도 저 피아니스트와 같이 피아노 건반을 날아다닐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언감생심, 그림의 떡, 도저히 나의 실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꿈결 같은 곡이었다. 아마 언젠가 지나가듯 소심하게 나의 간절한 바람을 피아노 선생님에게 말을 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다음 곡은 쇼팽의 즉흥 환상곡에 한번 도전해 보시죠! , 눼에?? 제가 감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아, 우리 멋진 선생님 덕분에 나는 그 곡을 마스터했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 내 귀에는 폭죽 소리와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피아노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임했던 나의 자세와(역시 사람은 배우고 싶을때 배워야 돈이 아깝지 않다는 진리를 날보며 깨닫는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과 실력 좋으신 우리 선생님의 가르침이 어우러져 생각보다는 조금 쉽게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나의 짧은 손가락은 마땅히 짚어야 할 음 대신 다른 곳을 헛짚기 일쑤이고, 폭풍같이 몰아쳐야 하는 부분에서는 힘이 부족하여 바람 빠진 소리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즉흥 환상곡은 즉흥 환상곡이다.
2년 반의 피아노 수업 덕에 나는 평생 어떤 분야든 선생님 내지는 사부님을 모시기를 꺼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혼자 갈 수 있는 거리가 50이라면 선생님은 나를 100 이상까지 갈 수 있도록 끌어주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제든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재력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피아노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피아노가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