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브런치 글에 적은 적이 있긴 하지만 다시금 잠시 언급하자면, 나의 글쓰기의 뿌리는 아버지이다. 아빠는 92년에 등단한 동화작가셨으나 한 번의 등단 이후 빛을 보지 못한 채 17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처럼 개인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채널이 없던 시절이라 아빠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꾸준히 쓰시다가 그 글만 산더미처럼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빠의 집착에 가까운 글사랑을 보면서 자랐지만 한 번도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대입을 위해 학교에서 논술을 쓸 때 글이 술술 써지는 날 보며 의아해한 적은 있었지만 딱히 내가 글솜씨가 좋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던 듯하다.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삼아 글을 끄적여 본 것은 2019년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제2의 인생을 위해 독서지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공부할 양이 많고 복잡하여 집 근처의 도서관 열람실을 찾아 공부를 하던 때였는데, 원래 공부하려 앉으면 갑자기 안 하던 책상정리를 하고 싶다던지, 손톱을 깎고 싶다던지 하여간 쓸데없는 일이 간절히 하고 싶어지는 국룰이 적용된 건지, 뜬금없이 생전 안 쓰던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 도서관 열람실에서 독서 지도사 시험공부를 하는 대신 처음으로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적어본 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제인 에어’에 대한 것이었고 그 글을 올린 채널은 이미 그 무렵 유행이 좀 지난 카카오스토리였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읽고 있는 책의 단상, 머릿속을 스치던 상념, 꼴통 짓을 하는 아들들 이야기 등 소재는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때로는 너무 아무 말 대잔치로 적어 놓은 것 같아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 글을 읽어주시는 나의 카스 친구들에게 미안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둘씩 은근슬쩍 모습을 드러내어 나의 글에 대해 응원해 주기도, 위로받은 당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기도 하는 소중한 벗님들 덕분에 처음 2년간은 그럭저럭 열심히, 지난 1년 간은 가뭄에 콩 나듯,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용두사미의 전형인 사람이다. 이것저것 벌이는 건 잘하지만 꾸준히 파고들어 끝까지 하는 걸 제일 못한다. 안 그래도 용두사미인데 지난 한 해 여러 가지 일로 고뇌를 심하게 하느라 글쓰기를 멈추다시피 했다. 어찌어찌 운 좋게 브런치 작가(황송하다)가 되었지만 글을 너무 안 올리다 보니 자주 이런 메시지를 받곤 했다.
작가님이 돌연 사라지셨어요 ㅠ
작가님의 글을 읽지 못한 지가 벌써 50일이 지났어요 ㅠ
작가님의 글을 읽지 못한 지가 벌써 60일이 지났어요 ㅠ
정확히 저 눈물표시와 함께 저런 메시지가 온다. 그리고 난 저 메시지를 참 많이 받았더랬다.
그러다 얼마 전 2주 동안의 한국 방문에서 몇 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그 만남을 통해 난 널브러져 있던 자아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독일로 다시 돌아와 조금 정신을 차린 나에게 제일 먼저 시킬 수 있는 일이 글쓰기였다. 숭례문학당은 지인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단체였는데 한 번도 프로그램에 도전해 본 적이 없다가, 이번 새해에 새 마음으로 공부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만난 것이 ‘매일 블로그 쓰기’이다. 숭례문학당 프로그램의 높은 수준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죽어가는 나의 브런치를 심폐소생시키는데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미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난 매블(매일 블로그 쓰기의 줄임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하루 늦게 시작한 탓에 난 같이 시작한 얼굴 모르는 동료분들의 프로필을 잘 모른다. 아마 내가 단톡방에 들어오기 전 이미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주고받았을 터였다. 그분들의 글을 통해 대강의 연배, 하시는 일, 관심사 등을 조금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글쓰기 동료로서 조금 더 친해지면 좋겠다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지난 한 주 매블 동료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이분들과 여유로운 어느 저녁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커피든 맥주든 한 잔씩 손에 들고 잡다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당신들의 글은 따뜻할 뿐 아니라 필력이 있어 브런치 작가에 꼭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늘 그러하듯, 나의 매블 동료들 또한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으실 것이다. 자신의 글이 별로 특별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누추하다는 생각이 드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나의 일상과 생각은 때로 타자에게 청량감 있는 통찰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저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으시면 된다.
오늘 어느 분이 올려주신 ‘기본’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의 울림으로 남았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버릇을 들이는 게 기본이 아닐까 싶다. 글쓰는 버릇도 없으면서 어떻게 좋은 글 쓰기를 바라겠는가. 하루 한 줄이든 한 페이지이든 매일 쓰는 버릇, 나에게 가장 취약한 꾸준함을 연마하는 시간이라 여기며 매일 글을 낳는 산통을 앞으로 삼 주간 더 견뎌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