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그 1년간 그분은 나름 총명하던 울 아들의 머릿속을 안개에 가득 차게 만들어 정상적인 생각 회로 작동에 에러를 일으키는 듯했다. 또 자신의 방안에 들어가 문을 꽁꽁 닫고는 밥 먹을 때 외에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분 덕에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학교 선생님의 호출을 당해보았고, 수시로 뜨는 학교 과제 및 시험 점수를 보며 기함해야 했다.
사춘기라는 그 녀석은, 귀여웠던 우리 아들의 좋은 점보다는, 이제껏 장점에 가려 얼굴을 보일락 말락 하는 정도였던 단점을 극대화하는 듯했다.
자연히 집안은 자주 전쟁터 같았고 나의 마음은 폭탄을 맞아 황폐화되어 갔다.
사춘기는 결국은 지나갈 것이었고, 자라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이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해하자 인내하자 하였으나, 결국 난 아량 넓고 우아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 나의 감정 또한 함께 널뛰기하는 바람에, 때로는 감정 널뛰기가 폭탄이 되어 아무 데고 떨어지는 바람에, 그 파편에 우리 집 남자 셋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작년 여름 방학은 가족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보냈다. 우리 아들은 결코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가장 골칫거리였던 스페인어를 보충해주려고 했는데, 사춘기라는 녀석은 우리 아들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와 의지를 많이 갉아먹었으므로 결국 온라인으로 수업하시는 스페인어 선생님을 구했다. 그 사이 또 우리들의 가슴에 여기저기 폭탄이 떨어지고 파편이 튀었다.
2학년에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1학년때처럼 하지는 않을까. 과연 성실하고 좋은 사회인으로 내 품을 떠나보낼 수는 있을까. 지금 흔들리며 자라고 있는 건이의 모습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걱정하고 고민했다. 너무 힘이 들 때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럴 깜냥이 안 되는 내가 너무나 용감하게도 감히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고 한 주만 남겨놓았을 때, 주일 예배 시간이 되었다. 건이는 그 마지막 주에 교회에서 단기선교로 알바니아를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선교팀을 축복하고 파송하는 순서가 있었다. 다른 팀원들과 앞에 나가서는 건이를 보며, 다른 아이들과 견주어 키가 작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자원하여 선교 여행을 가겠다며 나선 씩씩함에 기특하기도 한 마음이었다. 목사님의 기도와 팀원들의 선서가 있은 후 이들을 축복하며 축복송을 불러주는 시간이 되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던 이 찬양을 부르며 우리 건이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낳았음에도 나와 너무 다른 성격으로 인해 육아를 버거워만 하던 나를, 앞날에 확신을 가지기보단 의심하던 나를, 우리 아들이 과연 세상에서 구실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만 하던 나를 회개했다.
특히 2절의 가사를 보며 하나님이 건이의 정체성을 이미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으로.
내가 알았던, 몰랐던, 인정을 했던, 하지 않았든 간에 하나님은 이미 건이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놓으셨다는 사실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창피하게도 예배 도중 얼마나 울었던지, 나를 알던 여러 분들이 왜 그렇게 울었냐며 나중에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물어보시기도 했었다.
그날 이후로 난 큰 아들을 예전과는 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듯하다. (안타깝게도 알바니아 단기 선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였는지, 공항에서였는지 건이가 여권과 독일 거주증을 잃어버려 또 한바탕 폭탄과 파편이 온 집안을 날아다니긴 했지만.. ) 우리 아들을, 내가 만들어 온 정체성이 아니라, 이미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정체성을 지닌 귀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은 또 흘러 흘러 건이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마쳤고 이제 여름 방학을 맞았다. 건이의 머릿속 안개는 거의 걷혔다. 이제는 햇살 비치는 날이 훨씬 더 많아졌다. 시간이 보약이다. 때로 건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를 할라 치면(나의 마음 수양에 만큼은 시간이 보약은 아닌 것 같다), 건이는 이런 표정과 몸짓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얼굴에서 눈은 조금 더 위로 치켜떠서 눈 아래 흰자가 좀 더 보여야 하고, 입술을 벌려 치아가 드러나게 씩 웃어야 한다는 점은 좀 다르긴 하지만.
엄마의 과한 잔소리도 때로는 능글맞게 웃으며 넘길 줄 알게 되었고, 엄마의 훈계에 불만 섞인 표정부터 짓던 예전과는 달리, 쉽게 수긍하며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는 말도 곧잘 하는 아이, 아니 청소년이 되었다.
여전히 우리 큰 아들, 내 눈에는 좀 고쳤으면... 하는 모습이 많다. 특히 요즘은 머리를 통 안 자르려고 하는 바람에, 저런 머리로 온갖 데를 누빈다.
억지로 붙잡고 앉혀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지만, 또 강력하게 좀 더 있다 자르겠다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아들을 보며, 그래,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알아야지, 엄마마저 끝까지 고집으로 치부하여 의지를 꺾어버리면 안 되지, 잘못된 행동을 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도 아니고.. 싶어 그냥 인정해 주었다.
이제 우리 둘째 아들의 사춘기도 다가온다. 나는 과연 이번엔 좀 더 성숙한, 엄마다운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내 눈앞에서 이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우리 아이들의 정체성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