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주로 슬픔을 띤다. 마지막이 예상가능한 범위 내에 예정된 것이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별의 의식을 치름으로 슬픔이 그나마 희석이 될 수가 있겠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마지막을 맞닥뜨릴 때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마지막은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고 그와의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병환으로 고생 중이긴 하셨으나 그래도 우리에겐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느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원하였던 병동이 그의 생전 마지막 머물렀던 장소가 될 줄 몰랐다.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예감과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는 아닐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 사이에서 난 손과 발과 입술이 저렸다.
인생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마지막을 한번 겪고 나니 상대적으로 다른 마지막은 쉬운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독일에서의 4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이곳에서 사는 동안 여러 번 상상해 보았지만 예상이 잘 되지 않았다. 독일에서의 일상이 좋고 평안할 때도 있었지만, 마음이 요동치고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조금은 예상하기를 독일을 떠나는 것은 아무런 미련도 슬픔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또 하나의 마지막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과 정들었던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둘째 아들이 말했다.
“엄마 좀 그만 우시고요.”
독일은 자신만의 삶의 바운더리가 확고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그들과 교제를 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렇게 마음 아파할 이유도, 아쉬워할 이유도 없이 홀가분하게 훨훨 또 다른 목적지로 날아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마지막 시간들을 거치며 나는 내가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보살핌을 받고 있었고,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지막이 잘 마무리되도록 온 힘으로 도와주시는 분들 덕에 독일에서의 마지막은 아름답고도 슬펐다.
결국 마지막은, 아무리 그전에 여러 마지막을 겪었어도 여전히 힘든 것이었다. 한 장소에 머무는 동안 마음을 다하고 진심으로 다른 이들을 대했다면, 마지막이라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그렇게 나는 공항에서까지, 아니 독일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펑펑 울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왔다. 남편의 직장발령으로, 결혼 이후 우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서울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아왔고 앞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이며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는다. 우리가 머물렀던 모든 곳에서 그랬듯 이곳에서 또한 내가 배워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 성숙해져야 할 부분, 해야만 하는 일이 있겠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더 좋은 사람이, 더 좋은 어른이 되어가길 기대하며 힘써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