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다시 전공으로 돌아가는 연어(상)

by 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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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기간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면접관이 한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건 '졸업 후 10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듣고 새삼스레 깨달았다. 벌써 10년이 흘렀구나. 사는 동안은 길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은 10년.


면접 당시에는 미처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그 10년을 풀어보자면, 대학 졸업 후 나는 내가 무척이나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4학년 졸업반 때 남들 전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데 나 혼자 웹툰 작가가 되어볼 작정으로 방구석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땐 아이패드도 없었던 터라 스케치북에 만화를 그리고 그것을 스캔했다. 가족들 몰래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거실에 있던 복합기로 한 장 한 장 스캔을 한 다음, 내 방으로 돌아와 스캔받은 파일을 다시 포토샵으로 편집했다. 큰 꿈을 안고 누구나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네이버 도전웹툰에 만화를 등록했다. 당연히 봐주는 사람은 한 줌이었고 나는 얼마 가지 못해 포기했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초수 임용은 과락을 맞으며 이도저도 아닌 결말을 맞이했다.


여기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꿨다. 부모님은 4년제 대학 등록금을 내준 값을 하길 바라셨지만 나는 그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뜬금없이 제과제빵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학원을 다니겠다고. 그래서 빵집에서 일하겠다고.


여기서 미리 일러두는데 나는 이런 사람이다. 허무맹랑한 것을 너무 굳게 믿고 실천해 버리는 이상주의자. 철딱서니 없는 막내아들. 그게 나다.


어찌어찌 학원을 다녔고 자격증도 땄다. 그 후 부산에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빵기사에 지원해 교육생으로 수업을 들었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실습생 자격으로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빵집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기억나는 건 그때가 마침 12월이라 가장 힘들다는 크리스마스에 15시간 정도를 앉지도 못한 채 케이크를 아이싱하며 보낸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달 정도 다녔나. 그 후 나는 일이 너무 나와 맞지 않아 돌연 그만두었다. 일 년을 투자해 일을 배워 놓고 단 두 달 만에 그만둔 것이다.





그 후 나는 나의 ‘끈기 없음’을 자책하며 이런저런 단기 알바를 했고 그러던 중 구직 사이트에서 새로 오픈하는 키즈카페의 정직원 자리에 지원했다. 조리 관련 자격증이 있는 걸 마음에 들어 해 나는 입사할 수 있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1년 동안 그곳에 다녔다. 1년 후 퇴사한 이유는 그곳에서 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워서였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사람이 없는 한가한 평일에는 본사 사장이 CCTV로 직원들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아이들도 없는 놀이 공간 사이를 멍하니 서있어야 했다.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퇴사했다.


5월에 퇴사 후 나는 아는 후배에게 도움을 받아 내 전공과 관련된 공기업 장애인 고용 공단에 취업하려고 했다. 고용 공단이니 장애인 직업 훈련과 관련이 깊은 내 자격증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을 하며 공기업 입사를 위한 시험을 준비했다. 혹시나 싶어 토익 점수도 만들고 업무에 필요한 워드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나는 인턴 면접에서 수치스러울 정도로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당하며 떨어졌다. 자기 사업을 운영해 본 대학생부터 갖가지 인턴 생활과 경력으로 다져진 지원자들 사이에서 키즈카페 정직원 경력이 전부인 나는 관심도 받지 못하고 씁쓸하게 집에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포기 않고 서울까지 가서 입사 시험을 치기도 했는데 될 턱이 없었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해가 넘어갔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지원하려던 분야와는 다르게 별 수 없이 ‘직업 상담사’를 준비했는데 시험 응시 기간을 놓쳐버렸고 그것 때문에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린 나는 결국 또 미친 선택을 했다.


이대로 시험 준비를 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다는 말을 편지에 써서 가족들에게 남기고 저 멀리, 직통 버스도 없어서 서울로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내가 살던 곳에서 편도로 7시간이 걸리는 어느 지방 휴게소의 커피점 직원으로 일하러 떠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오로지 집을 떠나고 싶었고 기숙사가 있는 일을 무작정 찾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가 막힌 나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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