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서) 휴게소에 입사 하자마자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급격하게 번졌다. 그로 인해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일한 나에게 회사는 한 달짜리 유급 휴직을 제안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유급 휴직을 받지 않고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변명을 해보자면 그 때의 나는 한 달도 되지 않은 내가 유급 휴직을 받는 게 이상하다 판단했고 이미 마음이 많이 위태로웠으며 개인적인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캐리어와 이불까지 싸들고 나온 집을 한 달 반만에 다시 돌아갔다.
그 후 나는 누나가 하던 프리랜서 디자인 일을 이어받아 했다. 임신중이던 누나는 일을 쉬는 중이었고 미술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던 나는 누나 일을 내가 해보겠다며 작업 노하우와 포트폴리오가 있는 블로그를 이어받아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그 5년 동안 디자인만 한 건 아니었다. 비전공자라는 타이틀이 늘 마음에 걸렸기에 다른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리며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러다 지역에 있는 상점과 연계해서 종이로 된 굿즈 상품도 만들었고 그것을 계기로 인맥도 조금씩 늘려갔다.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영화 모임, 글쓰기 모임 등도 나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또 그러면서 독립출판과 북페어라는 걸 알게 됐고 재작년과 작년에는 직접 Zine이라는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판매도 했다.
그런데 작년 말쯤부터 AI가 흥행하기 시작했고 세상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건 '나는 어떤 분야에도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디자인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다. 전공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지식과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아무리 잘 해보려해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다는 느낌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공들여 만들어진 예술을 시기질투하는 나를 발견하고 더욱 비참했다. 서툴어도 괜찮다고. 잘 못 만들어도 괜찮다고 그럴싸한 말들로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 완벽한 그들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구나. 시간을 되돌려 디자인을 전공하든, 예술을 전공하든 뭐든 그래야만 저들이 가지는 시각을 나도 가질 수 있구나. 그게 서글펐다. 내가 그 동안 만들어낸 그 모든 것들이 다 얄팍하고 짜쳐 보였다. 그래도 몇 년 간 애썼는데 나는 안되는구나. 그렇게 서서히 대학 전공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사고가 머리에 스며들었다. 4년 동안 그저 단순히 전공 지식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맥을 쌓고 흐름을 배우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는 거구나. 뒤늦게 어찌저찌 따라해볼 순 있겠지만 왠만한 노력으로는 쉽지 않은거구나.
그러자 모든 창작이 싫어졌다. 즐거웠던 마음이 모두 사그라 들었다. 꽤 오래 했는데도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면 이제는 납득해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나는 이렇게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게 외로워 나는 작년 말 부산에서 하는 마우스 북페어에 참가한 것을 끝으로 창작을 그만두었다. '전공'이라는 두 글자만 머리에 새긴 채.
나도 전공이 있다. 특수 교육. 별의별 뻘짓을 했지만 그래도 나 역시 4년동안 장애에 대해, 교육에 대해 배웠다. 자격증도 있다. 물론 같이 공부하고 졸업한 동기와 후배들은 이미 교육 전문가가 되어있지만 나도 아직 늦은 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기간제를 지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면접 당시 10년동안 뭘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해보았고 이제와 전공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돌아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 후 나는 전공과 관련된 질문, 교육과정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 했고 당연하게 기간제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다. 10년동안 다른 일을 해서 전공지식이 흐려진 사람을 어떤 학교가 덜컥 담임으로 뽑고 싶을까.
아무튼 그 후 기간제는 못했지만 시간 강사는 할 수 있었다. 10년 전 교생 실습을 했던 학교로 돌아가 오랜만에 학생들 앞에 서서 수업을 했다. 잘 하지는 못했다. 너무 서툴렀고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좋았다.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퇴근하고 푹 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프리랜서일 때는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항상 불안했는데 그런게 없었다. 그래. 대학 전공을 이어나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일주일 강사일이지만 안정감을 느끼며 조금 더 안정적인 교사생활을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삶은 결코 내가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교사가 되려면 임용 고시를 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