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험 머리가 없는 사람이에요.(상)

by 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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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험용 머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노력만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그럼에도 시험을 잘 치는, 공부를 잘하는 머리는 따로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좀처럼 시험과 맞지 않는다. 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해야 하는 시험. 예를 들어 임용 고시 같은 것 말이다.


2026년을 시작하며 내가 세운 계획은 기간제를 지원하며 겸사겸사 임용 고시도 준비하는 것이었다. 꼭 올해 합격해야지 하는 마음은 아니었고 일단 다시 교사를 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시험을 조금씩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가장 먼저 온라인 강의를 알아봤다. 아무리 4년 동안 배웠다고 한들 10년이 흘렀고 그 사이 전공서적도 다 버렸기 때문에 독학은 절대 불가능이었다. 유명한 강사들이며 사이트를 검색했는데 10년 전 졸업할 때 있었던 강사들이 여전히 인기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대단한 커리어. 강사 선택지가 매우 다양한데 반해 나는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유명한 다음 카페에 들어가 어떤 강사가 더 잘 가르치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물론 카페 회원들은 특별히 어느 누구를 추천해주지 않는다. 그냥 자기 스타일에 맞는 사람을 고르라는 모범답안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 조언에 따라 나는 맛보기 강의를 들어보고 강사를 선택했다. 사실 그 강의만으로 강사와 나의 스타일이 맞는지는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선택한 강사가 삼색 볼펜과 형광펜을 수시로 바꿔 쓰는 스타일인지 전혀 몰랐으니까. 아무튼 일단 선택했으니 따라가야 한다. 환불이고 뭐고 귀찮다. 누구를 고르던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어떤 강사든 전년도 합격자 후기 영상은 다 올리니까. 그렇다는 건 결국 임용고시 합격은 강사 스타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하는 수험생의 문제인 것이겠지.


대략 오십만 원이 넘는 강의를 두 개 고르고 몇 만 원씩 하는 자체 제작 교재를 몇 권 배송받은 후 나는 집 앞 스터디 카페로 갔다. 걸어서 5분 거리. 가까워서 좋았다. 운동화 대신 크록스를 신고가도 그리 발이 시리지 않은 거리였다. 발 냄새가 잘 나는 편이라 운동화를 신고 하루 종일 스터디카페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4주권을 끊었다. 이벤트 할인가로 9만원. 그럼에도 결코 싸지 않은 가격. 5년 전, 공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 정도 가격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얼마가 됐건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는 꽤 부담스러운 지출이다.


하지만 돈이 아깝다고 집에서 공부하는 건 무리다. 방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거기에 더불어 보는 눈도 없다면 백 프로 딴짓을 하게 된다. 의지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수험생이 아니었기에 이미 도파민의 노예가 된 것을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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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1월 중순부터 4주 동안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저녁에 3시간 총 9시간을 공부했다. 당연하게도 그 9시간을 미친 듯이 집중해서 공부한 건 아니고 대략 그 정도의 스케줄이었다는 얘기를 꼭 덧붙이고 싶다. 아무튼 공부를 하는 도중에 가끔 디자인 작업 문의가 종종 들어왔지만 의뢰는 받지 않았다. (지금은 후회 중이다. 할 수 있을 때 할걸. 꽤 일을 꾸준히 맡기던 분들도 다 떠나갔다. 슬프다.) 4주 동안 오후에 빠진다거나 저녁에 빠진 적은 있지만 하루를 통째로 빠진 적은 없었다. 4주 기간권은 알차게 쓴 셈이다.


처음엔 의욕이 좋았다. 1월이기도 하고, 새로 내 진로를 찾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열정은 일주일이 딱 지나자마자 서서히 증발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쳤다. 예전에 시험을 준비하던 때와는 다르게 현재의 나는 공부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메타 인지를 가지게 됐지만 동시에 오래된 좌식 생활로 인한 거북목과 어깨결림을 가진 30대 중반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카카오톡에 보이는 동기들이나 후배들의 모습은 너무 여유로웠으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고 또 방학을 맞이하여 여행도 가고. 그걸 문뜩 보게 되면 나는 지금 또 스터디카페에서 무엇을 하나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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