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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Mar 01. 2022

취향의 발견

0. 나도 취향이 있거든요?

때는 2019년 연말, 나는 투잡, 쓰리잡의 시대에 발맞춰 유튜브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주 콘텐츠는 취미활동, 거기에 살짝 브이로그도 겸한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그곳에 내가 가진 감성과 일상을 모두 담으려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긍정 회로가 열심히 돌아갔다. 내가 하려는 것이 주류는 아닐지라도 분명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게 의외로 많은 인기를 끌 수도 있다는 설레발이 나를 감쌌다.


나는 이 기대를 먼저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집에서 와식생활을 주로 하는 친구와 나는 평소에도 유튜브에 대해 자주 얘기하는 편이다. 요즘 보는 채널이 있는지, 어떤 채널이 인기인지. 방구석 평론가라도 된 것처럼 분석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 떠들어대는 게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새해 첫 도전과 그 사업(?) 아이템을 제일 큰 시청자가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 상세히 털어놓았다. 취미에 관련된 영상을 만들 거라는 얘기, 하지만 한 영상당 제작기간이 좀 걸리니까 그 사이사이 브이로그를 만들 거라는 얘기, 마지막으로 100문 100답 형식으로 나의 모든 취향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 거라는 얘기까지 들뜬 마음으로 모두 꺼내놓았다.


미리 말하자면 나의 기대는 상당했다. 나는 늘 일을 시작하기 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인기를 얻고 돈방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꽤나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일일이 그걸 다 묘사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라 차마 적진 못하지만 모든 일에서 늘 그런 식으로 '선 상상 후 시작'이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드오션이니 뭐니 해도 나는 다르리라,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슈퍼 루키가 되리라. 그러니 나의 아이디어는 하나하나 다 특별하고 소중했다. 취미 영상이긴 하지만 그림 애니메이션도 섞을 생각이었고 브이로그지만 남들과 다른 신선한 편집을 할 생각이었다. 더불어 100문 100답의 형식도 얼마든지 나의 입담(?)으로 잘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허나 분석하기 좋아하는 친구의 시선은 냉철하고 매서웠다.


"누가 구독자도 없는 유튜버의 취향을 궁금해할까?"


친구의 이 말 한마디가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저 말만 두고 보면 친구가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 옆에서 응원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조언을 구한 건 나였고 예리한 친구의 촌철살인은 비록 나의 달콤한 망상을 깨부수었지만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말이었다.


유튜브를 한다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건 아니었다. 내가 이것저것 자잘하게 시도해보는 걸 좋아하는 걸 알기에 '다양한 취미'라는 소재는 긍정적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알기에 애니메이션을 곁들인다는 아이디어도 좋게 봐줬다.


허나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나의 취향이라는 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보여준 100문 100답 목록을 보며 친구가 내게 던진 일련의 질문들은 나를 당혹게 했다.


"너는 별로 바깥 활동을 많이 하지 않잖아. 물건을 많이 사지도 않고.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야? 자주 쓰는 향수 브랜드가 있어?"


분명 혼자 그 목록을 볼 땐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았는데 정작 친구가 물어보니 멋들어진 대답이 나오기엔 빈약하고 부실한 말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친구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는 모험가 타입이 아니다. 새로 나온 라면을 궁금해 사 먹어보긴 하지만 나만의 향수를 찾아 헤매거나 특별히 즐겨 사 입는 의류 브랜드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을 별로 다닌 적이 없어서 선호하는 여행지를 말하기도 어렵고 몸을 사리므로 좋아하는 레저 스포츠도 딱히 없다.


넓은 아량으로 내 머릿속에 있던 작은 이야기들을 꺼낸다 쳐도 그래서 그걸 대체 누가 본다는 걸까? 100문 100답으로 자신의 취향을 풀어내는 건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 말했다. 인지도를 얻고 팬층을 쌓아야만 사람들이 그들의 취향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생각인데도 나의 행복 회로가 그 깨달음을 방해했다.


그 시간부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취향을 소개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내가 뭐라고. 나는 그저 레드오션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한낱 유튜버 지망생일 뿐인데.


근데 왜 마음 한 구석이 울컥하는 걸까? 취향 그게 뭔데 날 울려? 취향이 별건가? 꼭 딥티크 오뜨 뚜왈렛이 있어야 좋아하는 향수를 말하고 스톤 아일랜드 옷이 몇 벌 있어야 옷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있어 보이는'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야만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걸까.


프리랜서 작가들의 에세이집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특별히 즐기는 와인의 풍미와 일부러 찾는 프랑스 요리 음식점만이 취향인가. 많은 경험을 해서 좀 더 고품질의, 좀 더 풍부한 취향을 가진 걸 시기 질투하려는 건 아니지만 왜 그냥 일상의 취향에 대해 말하면 안 되는 걸까. 너도 나도 다 가지고 있는 취향은 취향이 아닌가.


그래서 적어보려 한다. 유명하지 않은 가난한 프리랜서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피드 속 잘 갖춰진 사진 같은 멋들어진 취향은 없지만 나도 꽤 세심한 나만의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가자!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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