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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Oct 29. 2022

왠지 불안해질 때쯤 참고 가면 만나는 곳

-영화 <안경>(2007) 촬영지 가고시마 요론(Yoron)을 갔다 

힐링이라는 말조차 새삼스러운 일본의 몰디브
만돌린 연주, 직접 끓인 팥에 얼음, 시럽만 끼얹은 팥빙수, 비취색 바다. 마음을 열고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담백하게 들려주는 영화 <안경>은 <카모메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2007년 요론섬 이곳저곳에서 찍은 영화로 카모메식당 주연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정말 매력적인 배우다)가 그대로 등장한다. 처음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는 슴슴한, 그러나 계속 입맛이 당기는 마력의 영화는 섬과 닮아 있다. 

타에코가 자전거에 실려가던 사탕수수 밭에서의 트레킹, 그녀가 뜨개질하던 테라사키 해변, 마치 거짓말 같았던 거대힌 무지개와 풀등. 발을 딛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지게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여행지도 있고, 요론섬이 있는 가고시마 아마미 제도처럼 거닐며 오래 들여다 보아야 이야기가 보이는 여행지가 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가면 거기서 오른쪽입니다."

이게 요론섬 민박집을 설명하는 영화 '안경' 속 지도 설명법이다. 너무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는 식품 사장님 같은 마음이 드는 '사색의 섬' 요론섬.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올 까봐 손바닥만한 간판을 내건 민박집 사장은 주인공 타에코에게 말한다. 


“이곳은 찾아오기가 힘들어 2시간은 헤매는데 당신은 여기 있을 재능이 있군요.“

그 곳에 있을 수 있는 재능. 뭔가 늘 열심히 히느라 힐링마저 치밀하고 전투적으로 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잘 없는 재능. 


'힐링시네마', "슬로우 라이프 무비' 전문 감독이라고 불리는 오기가미 나오코가 헐겁고 느슨한 '힐링'의 틀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순간은 서정적인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이런 비전형적 인물들과 병맛 대사들이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민박집을 찾던 타에코는 아침마다 하루의 액운을 쫓아주는 매실장아찌를 먹고, 해변에서 우스꽝스러운 단체 체조를 하며, 아침인사를 하기 위해 자고 있는 손님 마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는 민박집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은 관광을 해보려는데 어디 좋은 곳 있나요?" 

"여긴 관광할 만한 곳은 없는데요..." 

"도대체 뭘하나요?" 

"음.. 사색?" 

무려 '사색의 섬', 요론은 한달에 5일 열리는 풀등과 알을 낳으러 오는 바다거북, 비취색 바다와 현무암 화석 같은 대단한 풍광을 아무렇지 않게 진열해 놓고선 '힐링, 뭐 그런걸 말로 다 설명해?' 하는 듯 극단의 텍스트 미니멀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민박집으로 도망가는 타에코처럼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들다가 관객들을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흘깃 웃으며 말한다. "걍 팥빙수나 먹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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