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물음표를 찍어보기로 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

by 이백칠호
임신 출산 육아는 여성의 인생을 물음표 천지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내 커리어에 물음표를 찍고 싶지 않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꽤나 고달픈 일이었다. 누가 누굴 돌보냔 말이다. 직업인 여성으로 10년 이상 가열차게 달려오며 그간 한 번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 지 6개월쯤 지나자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일 욕심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빠로도 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와 나의 유전자가 적절히 섞인 생명체를 가끔 떠올리면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아주 가끔 생각해본 게 다였다. 임신을 결심하게 된 결정타는 ‘어쩌면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진단이었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하다. 남편과 나는, 원하는 때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으며 마음에 파장이 일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이후, 2019년 우리의 신년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드는 것’이 되었다.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한 이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정확히는,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직장의 반응과 그 이후의 내 커리어, 혼자 감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육아다. 수많은 선례들을 봐왔다. 과탑이었던 여자 동기는 S사에 입사해 임원까지 될 기세로 맹렬히 일하더니 임신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다 허무했다. 절친 여고 동창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초임을 준다는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던 그녀는 임신을 하자마자 보직과 관련 없는 엉뚱한 업무를 떠안게 되었다. 매일 밤 전화통화에서 훌쩍거리던 그녀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2010년 즈음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이 된... 것처럼 보인다. 가시적인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우처 카드, 출산선물, 아이돌봄도우미, 시간 보육제, 어린이집 연장반(…) 같은 것들. 하지만 가임기 여성에게 닥친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출판/ 디자인 업계는 평사원까지는 여성 직원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임원이 줄어든다. (왜냐고 묻지 말자. 맘 아프니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또한 여성 직원들은 많지만 여성 임원은 전무하다. 심지어 아이가 있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내가 몸담은 업계의 현실이다. 이런 곳에서 내가 만약 임신이라도 한다면? 엄마라도 된다면? 차분하게 예상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1. 임신 상태로 출근하고 일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기업이나 관공서의 홍보 매체를 만드는 것이다. 홍보 매체를 만드는 것, 그 이면에는 글을 쓰고 편집하는 것 이상의 중노동을 포함하고 있다. 매체 제작에 참여하는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작가 등과 커뮤니케이션하며 매체의 주인인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부응해야 한다. 이런 매체 제작에 앞서 매체 수주 경쟁 입찰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즉,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마당쇠 노릇에 '클라이언트'라는 업보를 지고 '마감'이라는 사채업자에게 쫓김을 당하며 '입찰'이라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참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 써놓고 나니 오금이 저린다. 배가 부른 상태로 저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절레절레...) 일단 임신 사실을 팀원들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할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중노동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게다가 임신상태로 출퇴근 시간에 9호선을 탄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가빠온다.


2. 휴직 기간은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친정과 시댁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처지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니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최소 1년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1년보다 훨씬 오랫동안 아이를 돌보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소기업인 우리 회사의 선례는 6개월이었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아이와 함께 지내는 기간을 늘리고 싶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회사에 굳이 출근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는 방향도 생각해본다. 소속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아이와 가족이라는 더 강력한 유대감으로 회사의 소속감 따윈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남은 여성 직원들을 위해, 나를 위해 회사에 (최초로!) 1년 정도 육아휴직을 신청해볼 계획이다.


3. 복직을 한 이후에는?

우여곡절 끝에 1년 뒤 복직을 한다면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 등 남의 손에 맡겨진 상태일 것이다. 그런 상태로 이전처럼 야근을 하며 직장을 다니긴 어렵다. 아무리 어린이집 연장반이 생겼다고 해도 돌쟁이를 하루 10시간 이상 맡겨놓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어린이집이 아닌 베이티시터는? 내 월급이 시터의 월급으로 다 날아갈 판이다. 매달 빵꾸 난 가계부를 붙들고 남편에게 신세타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돌 전에 복직하며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면, 그건 베이비시터 월급을 감내할 만큼 내게 직장이 절실하다는 의미일 테니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하아... (생각만 했는데) 갈수록 산 넘어 산이다.




일하는 여자로서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가 여전히 어려운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1명을 키우는 비용이 1억이라던가. 종일 터지는 나쁜 뉴스들은 또 어떻고. 매일 범죄, 화재, 사고, 질병이 들끓는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무탈하게 키우기란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물음표를 찍어 보기로 했다.


아이를 갖기로 한 것이다. 아직 임신도 하기 전인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물음표가 생겼다.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해보며 깨달았다. 그 물음표에 답할 사람은 '나'라는 것을. 내게 주어질 물음에 차근차근 멋진 답을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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