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중일기
몇 번의 연애 실패 후 여생을 일과 여행에 푹 빠져 보내기로 결심했었다. 친구들과 땅콩집을 짓고 그 안에서 낄낄대다가 골골 저물 줄 알았다. 그렇게 살다가 비현실적으로 좋은 남자를 만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의지하고 싶은 이성'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남자와 손을 잡고 예식장을 나서고 있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좋은 엄마까지는 될 자신이 없어서 자식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엔 배가 불러 있었다. 소중한 생명체를 품게 된 것이다. 살림도 몰라 육아는 더 몰라 일만 할 줄 아는 나는 이 모든 게 여전히 너무 어색하다. 나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에 겁도 옴팡지게 많은 내가 어쩌다가 임신까지 했는지 5개월 차인 지금도 볼을 꼬집어보곤 한다.
서툴러서, 황당해서, 서운해서 약간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내게 요즘 필요한 것이 무언지 생각해봤다. 철학자의 잠언집도 아니고 주변인들의 극단적인 오지랖 또는 무관심은 더더욱 아니다. 남의 도움을 받기도, 도움을 청하기도 무진장 싫어하는 내게 필요한 것은…
나도 그랬어. 나쁘지 않아.
그냥 본래 너답게 하루하루 잘 보내면 돼.
같은 공감과 진심이 담긴 사소한 말이다. 사실 일하는 엄마가 저런 말을 자주 듣기란 어렵다. 말 한마디면 되는데. 어쨌든 서운한 마음은 접어두고 내 일상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임산부로서, 하지만 나의 이름을 잃지 않고 온전히 보내는 하루와 그 안에서 발견한 가치를 되도록 솔직하게 기록해보기로. 반짝이는 날도, 빛바랜 날도 있을 것이다. 정신이 온전한 날도, 정신이 나간 날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먼저 지나온 날들이 다른 누군가의 불안한 일상을 잔잔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게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