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임신 확인하던 날의 기억

feat. 난임병원과 몸 만들기

by 이백칠호
임신이 쉽지 않겠어요. 난소 기능 저하라.


그즈음, 결혼한 지 1년을 향해가고 있었다. 딱히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소식이 없어 찾아간 난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이다.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뚱이뿐인 줄 알았는데, 그 몸마저도 나를 배신했다. 난소 기능 저하(이하 난저)라니. 한 해 두 해 갈수록 점점 아기를 갖기 어려운 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두 달 자연임신 시도를 해보고 안 되면 바로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자는 말을 들은 이후론 신기하게도 어린아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걷다 아이만 봐도 ‘저 아기 너무 귀엽다!’, ‘이 아기는 몇 개월일까?’라고 남편에게 속닥거리곤 했다. 그건 분명 부러움이었다. 어쩌면 나는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우리 아이.


우리 부부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는 심정으로 몸 만들기에 매진했다.


1. 술, 담배를 멀리했다. (일단 유해 물질부터 차단하자)

2. 필라테스를 주 3회로 늘렸다. (체력을 길러야 별도 딴다)

3. 남편에게 집안일을 더 많이 분배한다. (내 몸이 편해야 별을 딸 마음이 생긴다)

4. 인스턴트를 자제하고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 위주로 먹었다. (인스턴트 즐기다 임신이 되어도 걱정이다)

5. 엽산과 아연 등 임신 준비에 좋다는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건강한 아이를 위하여)

6. 쑥즙, 포도즙, 장어, 추어탕... 을 먹었다. (임신에 좋다는 음식들이다)

7. 틈나는 대로 산을 탔다. (튼튼한 난자와 정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위의 리스트를 죽어라 죽어라 실천하던 어느 날,

“여보… 나 임신일 수도 있겠어!”

나는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남편 앞에 테스터를 내밀었다. 테스터 한 번, 나 한 번, 토끼 눈을 뜨고 멀뚱멀뚱 날 쳐다보는 남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선 남편이 아내를 번쩍 안고 들어 올려서 몇 바퀴 돌며 환호를 지르던데. 나 역시 기분이 째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두 줄을 보는 순간,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앞섰다. 맘 한구석엔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맘카페에서 검색해 보니) 병원에 가기도 좀 애매한 시기였다. 테스터 두 줄이 희미하게 뜬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야 겨우 아기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 오다니. 출산 전문 산부인과는 난임병원 특유의 차분함과는 다른, 시끌벅쩍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세트처럼 나란히 앉아있는 임산부들과 그의 남편들, 그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실금실금 새어나왔다. '나도 남편도 남들 눈엔 저렇게 보이려나?' '몇 달 뒤면 저렇게 배가 나올까?' '살이 더 찌면 입을 옷이 없는데' '근데 나 진짜 임신 맞겠지?'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이렇게 설레고 긴장된 적이 있었던가. 테스터, 두 줄, 마지막 생리일.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담당의는 바로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몇 번 움직이자마자, 하얀 점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선생님 저거 담석 아니고 물혹 아니고 진짜 아기집 맞나요?
여기 둥그런 게 아기집이에요.
엄마, 축하드려요! 5주 차네요.
엄마...? 내가 엄마라고? 오올...

아직 0.5mm 크기의 아주 작은 아기집. 하얗게 반짝거리는 아기집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지금 저게 내 몸에 있다고? 작디작은 생명체가 내 몸속에서 부지런히 자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니. 두렵고도 감격스러운, 불안하면서도 행복한, 모순된 감정들이 뒤엉키는 순간이었다.







1년 뒤, 엄마 4개월 차

지난해 10월,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이제 4개월 차 엄마가 된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매일 느낀다. 토끼잠만 자고 울기만 하는 아이덕분에 나도 함께 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종일 어르고 달래다 보면 저녁 무렵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래도 테스터 두 줄을 확인했던 날, 아기집을 발견했던 날, 처음 심장소리를 들은 날을 떠올리면 조금은 살만 하다. 기적처럼 내게 찾아와 준 아이가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만 해도 매일 감사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마음 컨트롤이 안 되는 날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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