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서럽고 눈물 나는 날들

임신 중 심리적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by 이백칠호


임신을 하니 정말 사소한 일에도 눈물 바람이다. 그날도 그랬다. 남편과 나는 일거리, 놀거리를 들고 카페에 갔다.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잡고 책과 노트북을 펼쳤다. 2시간 즈음 한 자세로 있다 보니 온몸이 뻐근했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 얼른 집에 가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남편은 서둘러 노트북과 책을 덮고 몸을 일으켰다. 프로그램을 종료하려던 찰나,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나는 갑작스레 생각난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고 남편은 말없이 책을 다시 펼쳤다. 20분쯤 흘렀을까.


“여보, 앞으로 이러지 마. 가자고 해서 하던 것 접고 바로 갈 준비했더니. 왜 갑자기 기다리게 해?”


고개를 들어 보니 차갑게 굳은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내 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확 올라왔다.


겨우 그 정도 기다린 것 때문에 화를 내는 거야?
나는 지금 우리 미래를 위해서 가계부 쓰고 지출 계획하는 데 내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우리 아기를 위해서 1년, 아니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그 20분 때문에 찬바람 쌩 날리는 거냐고?


물론 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차마 입을 열어 저 대사를 읊으면 스스로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고 자존심이 상할 것만 같았다. 몸으로도 말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남편을 째려보고 노트북을 부실 듯이 쾅! 덮어버렸다. 그리고 엉엉 울어버리는 대히트를 쳤다. 맙소사. 째려보기, 노트북 부시기, 눈물 흘리기 3단 콤보에 남편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상상해보자. 배가 뽈록한 임산부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그 앞에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연신 빌고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카페 손님들에게 꿀잼 풍경을 제공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골백번 곱씹어봤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제대로 설명조차 할 수 없다. 남편은 단순한 논리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에 대해 예의를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우리 아이도 건강하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탑재하길 바란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싫은 내색을 또박또박 표현하는 순간, 불 같은 화와 서운함이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걸쩍지근한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임신과 출산은 우리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인데, 왜 불편한 몸과 불안한 심리 상태는 나만 부담해야 하는지?’ 같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한번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 감정은 걷잡을 수 없었다. 하긴 어느 날은 보행보조기를 밀고 가는 꼬부랑 할머니를 보고 뜬금없이 눈물이 흘렀고 어느 날은 길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에 짜증이 치솟았다. 대체 어느 타이밍, 어떤 부분에서? 나도 내가 당황스러운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일전에 본 임신출산육아대백과에서는 그랬다. 임산부는 호르몬 변화로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기분이 변화무쌍하게 변해서 심리적 피로를 느낄 수 있다고. 게다가 특정 냄새에 대한 혐오, 구토와 메스꺼움, 급격한 신체적 변화 같은 불쾌감까지 동반되니 심리적 평정심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나 역시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납득 불가한 나의 이상한 행동은 모두 호르몬 탓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라도 탓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다행이다. 임산부의 급격한 기분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 또한 언젠가 끝이 날 것이라는 걸 알고 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와 겨우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남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임산부는 호르몬 때문에 기분 변화의 폭이 크고 예민하다”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남편도 (와이프가 정상이 아님을 눈치챘는지) 본인의 생각이 짧았고 앞으로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나가자며 토닥여주었다. 밀린 집안일도 한 번 더 신경 써서 챙겨주었다. 호르몬이 널뛰기하는 사이 잠깐 잊었다. 남편은 임신한 와이프의 불안한 심리를 토닥여주고, 불편한 몸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는 사람이라는 걸. 임산부가 겪는 고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태도가, 내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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