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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Mar 22. 2021

기꺼이 더는 사람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이 버거울 때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분리불안이었다. 공항 가는 길 내내 카톡으로 아이의 안위를 확인했다. 억만 겹처럼 느껴졌던 비행시간이 끝나고, 제주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버리는 통화 연결음만 세 번을 들으니 아빠한테 아이를 맡기면 일어난다는 일들이 떠올랐다. 다행히, 4차 시도만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내가 10분마다 연락할 줄 알았으면 출장을 반대했을 거라고 했다.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애 걱정을 하냐는 거였다. 영화 <올가미> 운운하며 나를 지독한 엄마라고도 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출산 후 4시간 이상 아이와 떨어져 본 적 없었다. 그런 지독한 엄마(?)가 아이를 두고 장거리 출장을 감행했으니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고백하자면 마음 한편에는 신나는 마음도 꿀렁거리고 있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도가 튼 것을 넘어 신바람 나게 즐기던 예전 습관이 슬그머니 올라온 것이다. 혼영, 혼커, 심지어 혼고와 혼뷔(혼자 뷔페) 역시 당당히 즐겼던 내가 역사 속 인물처럼 까마득하다. 그래서 1박 2일의 출장 동안 마지막 날의 반나절은 역사 속 인물의 초대석 시간으로 계획해두었다. 일도 아이도 모두 놓고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숙소 근처 만춘서점에서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샀고, 함덕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폈다. 책장을 넘기다 한참 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제주 바다가 이렇게 오묘했던가. 파랗기도 하고 초록하기도 했다. 반사된 하늘 같고 일렁이는 보석 같았다. 아, 그래 제주 바다는 이랬었지.  

지난해 여름에도 가족과 함께 제주에 왔었다. 바다색은 기억나지 않는다. 8개월 차 아이를 케어하며 다니느라 혼이 쏙 빠졌던 여행이었다. 옆 테이블 손님의 명품가방에 분유를 뿌렸을 땐 아이와의 장거리 여행은 당분간 절대로 없다며 입술을 꽉 깨물었었다. 그런데 그때와 같은 장소에서 느긋하고 골똘히 바다색 감상이나 늘어놓으며 여유를 부리다니. 어색하고 낯선 상황이다. 하지만 홀가분하고 상쾌하기도 하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 엄마도,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니고 싶은 마음이었다.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버렸다.


아이의 엄마뿐만 아니라 그동안 넘쳐나는 역할들이 선사해준 미션이 많긴 했다. 남편의 아내, 시댁의 맏며느리, 일터의 기획자… 나이를 먹을수록 맺게 되는 관계의 수와 함께 역할이 늘었다. 그때마다 요구되는 역할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역할이 두 세 배로 늘었다.

물론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원해서 주어진 역할들이다. 좋아하는 것엔 가진 에너지를 탈탈 털어 넣는 편이라 모든 역할에 열렬한 사랑을 쏟아붓곤 했다. 이 많은 역할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냐고? 최근의 경험으로는 마음의 병, 몸의 병이 생겨 골골거리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에는 능동적으로 덜기 시작해야 한다. 일을, 계획을, 주변 사람들을. 더는 일은 나를 응시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때로 도움을 주기까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다. 담을 때가 아니라 덜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 기꺼이 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은 산문집 『다독임』 중에서 


읽고 있던 책에서 어쩌면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할지도 모르는 문장을 길어 올렸다. 아이와, 남편과, 일과, 그 밖의 모든 관계와 역할에서 능동적으로 마음 덜어내기, 거리 두기 그리고 나를 응시하기. 짐을 덜면 걸음이 경쾌해진다. 콧노래가 나온다. 가려는 길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오래 걸을 수 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면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의 문장들이 나를 다독인다.

어떤 역할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내게 필요한 말이었다. 좋아해서 택한 것이라며 또 사랑과 열정을 쏟아붓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리기엔 조금 이르다. 다른 호칭들이 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들에게도 곁을 내어 주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게 덜어내고 채우는 연습이 필요할 거다. 버티기 힘들 때는 전부 비워내고 누구의 무엇도 아닌 그냥 ‘나’로서 보내는 시간도 가지면서 말이다. 뭐든 열렬하게 사랑해버리는, 나처럼 촌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책장을 덮으며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핸드폰을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6시간 만에 아이와 상봉. 걱정한 일중 그 어느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마음의 짐을 좀 던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폐를 끼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이는 내가 서운할 만큼 잘 지냈고 집은 생각보다 깨끗이 정리된 상태였다. 남편의 육아스킬은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이 5년쯤 늙어버린 것 같았지만!) 아들과 남편과 밀린 이틀 치 포옹을 나누며, 나는 기꺼이 덜어내는 연습이 하고 싶어 졌다.







혼영, 혼커를 사랑하지만 현실은 에너자이너 아들과

말 많은 남편에게 둘러싸여 정신줄 놓고 사는 여자입니다.

최종목표는 (아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덕질하며 사는 호호할머니예요.

그래도 가족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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