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본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개를 슬쩍 돌리니 남편이 아이에게 목마를 태워주고 있었다. 오, 저렇게 해주면 아이가 엄청 좋아하는구나? 몸으로 잘 놀아주는 남편에게 한수 배운다. (리얼)엄마미소를 지으며 하다 만 설거지를 다시 하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조금 전까지도 좋아 죽던 두 사람이었는데?
“너! 아빠가 위험하니까 앉으라고 했지!”
식탁에 올라간 아이는 아빠의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내려왔다. 뭐야 이 녀석, 엄마가 혼낼 땐 눈 하나 끔쩍 안 하고 실실 웃기만 하더니 아빠 한마디에 꼼짝도 못 하잖아? 웃음기를 싹 뺀 건조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에게 또 한수 배웠다.
아이에 관해선 누구보다 엄마인 내가 더 많이,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줄곧 남편에게 육아 지식을 알려주고 실행토록 하는 입장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를 요즘 깨닫고 있다.
출산 직후 나는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동안은 호르몬탓인지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 호르몬의 영향이 끝나고도 남았을 법한데 그 이후로도 계속 남편이 꼴 보기 싫었다. 평생 딩크족으로 살려다가 아이를 가지겠다 결심한 것은 남편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에 대한 의지가 강했으니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세상에 남편이 나의 변화와 아이의 안녕과는 무관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은 그 어떤 변화도 겪지 않아도 되는 남편이 미웠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하던 일을 중단해야하는 것은 나였고, 아이를 종일 어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우는 것도 나였고, ‘목’ 자가 들어가는 신체 부위란 부위는 다 아픈 것도 나였다. 매일의 쳇바퀴를 굴릴 수록 끝없는 물음표들이 나를 괴롭혔다.
‘왜 나만 희생해야 하지?’ ‘애는 나 혼자 낳자고 했나?’
‘내가 낳고 내가 돌보는 아이 성을 왜 남편 성에 따랐을까?’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만 낳으면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던 남편은, 정작 아이에게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부서질 것 같은 아기를 돌보는 일은 엄마의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이었다. 3~4시간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니 하루를 잘게 잘게 쪼개어 살아야 했다. 모유수유를 할 땐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3시간마다 우는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젖을 물릴 때, 남편의 귀에는 귀마개가 꽂혀있었다. 그때는 당장 귀마개를 뽑아 남편의 콧구멍에 꽂아버리고 싶었다. 출근한다며 현관을 나설 때는 남편의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자빠뜨리고 싶었다. 아이와 나만 집에 두고 혼자 회사로 탈출하다니!
저 얄미운 인간 내가 두고 본다.
이토록 못마땅한 남편을, 자연스레 감시자의 눈으로 지켜보게 됐다. 아이에 관해 하나부터 열까지 조곤조곤 알려주고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에는 화가 났다. 남편이 참다 참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성질이라도 낼라치면 나는 한술 더 떠서 “그럼 당신이 알아서 잘 키든가”라며 쏘아댔다.
그때 내 눈에는 아이밖에 안 보였다. 우주의 온 에너지 모아 엄마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아이에게 쏟아붓고 있었으니 남편이 보일 리가 없었다. 아이 너머로 남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1년쯤 지난 뒤였다. 나의 고장 난 ‘-목’ 신체 부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부터였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가 아닌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혼자 아이를 보며 끼니를 놓칠까 아침상을 차려놓고 점심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고 갔다. 퇴근 후엔 퉁퉁 부어 있는 다리를 주물러 주곤 했다. 주말이면 내 등을 떠밀었다. 멀리는 못 가도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언젠가는 우리 가족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는 뻔뻔한 내 소망도 열렬히 지지해줬다.
덕분에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쥐어 짜낼 수 있었다, 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요즘은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나보다 몸으로 잘 놀아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단속하는 남편에게 많이 배운다. 나를 대신하는 육아대타가 아니라,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육아동지로서의 든든함을 느낀다. 남편이 그러하듯 이제는 나도 그에게 따뜻하고 든든한 육아동지가 되어 함께 걷고 싶다. 이제 막 땅을 딛고 걷기 시작한 아이의 손을 한쪽씩 꼭 잡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