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엄마의 조증과 울증 사이
"끄아아아앙~!!"
오늘도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상쾌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 몸속에 타이머라도 있는 게 분명하다. 새벽 2시만 되면 눈을 번쩍 뜨는 걸 보니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재우고 말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1시간여의 사투 끝에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로 눈을 감았다.
“여보, 아기가 배고픈가 봐.”
정말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시계는 벌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금 전에 수유했는데 이상하다, 혹시 이거 데자뷔인가? 수유하는 사이 현관문 닫는 소리가 쾅- 들렸다. 남편 혼자 회사로 탈출하는 소리다.
‘너만 나가냐, 나랑 아기도 데리고 가라!’
아이와 나, 둘만 집에 남겨질 걸 생각하니 머리에 띠를 두르고 데모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나도 남편처럼 직장 나가서 ‘열일’하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주 소소한 작업을 시작했다. 집에 가만히 있질 못하는 변덕스러운 성격 탓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작업 관련 첫 이메일을 열었다. 문장이 너무 길다. 잘 읽히지 않는다. 갑자기 난독증이라도 생긴 걸까. 동글동글 굴림체가 업무용 이메일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꽂혀서 그런가. 한동안 뇌가 임신, 출산, 육아 쪽에만 가동한 탓일까. ‘감 떨어졌다’는 소린 듣고 싶지 않은데 벌써 귓가에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는 복직을 재촉하는 회사가 치사하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글이 잘 읽히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라 얼른 출근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뀐다. 이런 고민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아이 얼굴을 더 봐야 한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또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밥때가 왔구나.
수유 시간은 각성과 반성의 시간이다. 나로 가득 차 있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면서 엄마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아이에게는 하나의 세상이란 생각에 왠지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제발 잠 좀 잘 자줘, 똥은 낮에 싸줘, 조금만 덜 울어줘 같은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무탈하게 자라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을. 아이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모두 내 눈에 담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어제는 소년의 목소리로 껄껄 웃는 걸 처음 봤고, 오늘은 내 얼굴에 자기 볼을 부벼대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를 보고 어찌 사랑스럽고 애틋한 감정이 매일 샘솟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날은 한없이 가라앉기도 한다. 거울 속 초라한 내 모습 때문에 ‘아이는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파던 날, 친구들은 커리어를 착착 쌓아가는데 나만 혼자 저만치 뒤떨어진 기분이 드는 날이 그렇다. 육아도 커리어도 그 무엇 하나 놓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엄마는 당장 결정 내릴 수 없는 문제들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일을 하다 보면 늦은 오후쯤 잠깐의 틈이 난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잔에 커피를 마신다. 파리 방브 벼룩시장에서 샀던 커피잔이다. 터질 듯 말듯한 분홍색 꽃망울과 입이 닿는 부분에 그려진 반짝이는 골드라인을 보고 한눈에 반했었다. 이 커피잔을, 요즘 더 자주 꺼내게 된다. 커피 한잔으로 다시 그 낯설고 신기한 파리의 시장에 발을 디디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파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파리는커녕 제주에도 당분간은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랜선으로나마 우리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분명한 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두 남자와 함께라면 혼자였을 때보다 더 많이 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조울증 환자 수준으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좋게 말해 지금 나는 육아로 인해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중이다. <인셉션>에 버금가는 액자식 구조의 영화랄까. 왜 <인셉션> 주인공 코브가 그토록 팽이를 돌렸는지 알겠다.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데자뷔인지 알아차릴 무언가가 필요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