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식탁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쓰기 위해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고, 오정희 작가님은 살림하는 사이사이 쓸 수 있도록 부엌 한켠에 놓아둔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의 전부라 했다. 다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 혹은 조건이 한두 가지쯤 있을 테고 나는 나의 글쓰기 조건을 단연 넉넉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지자, 그것도 넉넉하다 못해 넘치도록 주어지자 머릿속이 백지장마냥 새하얘졌다. 회사에서 일에 치일 때는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던 글감들이, 막상 쓰겠다고 각 잡고 앉으니 죄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신기루처럼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던 녀석도 있었는데. 그 때는 내 앞에 커서가 깜박이는 워드 페이지와 시간만 있으면 단숨에 기막힌 명문 한 편을 뚝딱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미처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미 저지른 바가 상당하다(자그마치 퇴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 다시 내 안에서 글이 주체하지 못하고 저절로 튀어나올 때까지 열심히 글밥을 목구멍에 욱여넣어볼까? 아니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하루 몇 시간을 정해두고 되든 안 되든 뭐든 무조건 끼적여볼까?
식탁 앞에 앉아 무릎을 달달 떨며 당혹감과 불안함에 슬슬 발끝이 차가워지려는 찰나, 문득 아침식사 후 방치해둔 설거지감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일단 저걸 해치우자.
내가 회사일을 하면서 체험으로 깨달은 한 가지는 단순한 육체노동이 정신활동을 고양하는 데 꽤나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전 직장에서 나는 택배를 쌌다. 실제 맡은 업무는 그보다 많고 다양했지만 하루 아홉 시간 중 너댓시간을 택배를 싸며 보냈으니 어쨌든 주업무는 택배 포장이었던 셈이다. 전표를 보고 그에 맞는 제품을 꺼내고, 크기에 맞춰 충전재를 적당히 잘라 돌돌 말고, 박스를 접어 포장한 제품을 넣고 노란 테이프로 밀봉하는 일련의 과정을 '무지성'으로 반복하다보면 자연히 머릿속에서는 생각의 나래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졌었다.
때로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게 사고에 도움이 된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단순노동'을 글쓰기 첫 단계로 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