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안 좋아해요
그리고 수많은 단순노동 중에서도 오늘 나의 픽은 설거지다.
설거지 호불호를 따지자면 나는 확실한 불호다.
밥은 어찌어찌 차리겠는데, 다 먹고 난 뒤의 상을 바로 물리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그 일이 내게는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툭하면 치워야 하는 밥상을 앞에 두고 휴대폰 보며 십 분, 책 보며 십 분, 혹은 그저 멍하니 십 분, 도합 삼십 분씩 흘려보내기 일쑤다. 그 사이 미처 긁어먹지 못한 밥풀은 그릇에 붙어 화석처럼 굳어져가고, 열린 상태로 방치된 반찬은 삐들삐들 말라간다.
그러다 양심상 더는 미룰 수가 없어 가까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치우고 나면, 다음으로 들이닥치는 시련이 바로 설거지되시겠다.
이미 상을 치우는 데 의지와 기력을 다 써버린 나는 당연한 귀결로 설거지도 종종 방치한다. 문제는 이렇게 방치된 그릇과 냄비, 접시들이 쌓이고 쌓여서 싱크대에 산을 이루고 나면 더더욱 설거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두 끼 분량 정도면 그나마 덤벼볼 만한데, 세 끼가 지나고 하루가 넘어가면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렇게 쌓인 설거지산을 외면하고, 모른 체하고, 배달음식으로 도피하고, 김밥을 사다 먹으며 회피하다가 결국 물 마실 머그컵 한 개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참고로 우리집에는 머그컵이 매우 많다. 한 스무 개 정도...?) 비로소 단두대로 향하는 사형수의 심정이 되어 꾸역꾸역 싱크대 앞에 선다.
이 정도 쌓인 설거지는 더 이상 살림이라 할 수 없다. 노동이다. 전투적인 태도로 임하여 빠르게 쳐내야 할 과업이다. 이 과업을 충실히, 그리고 확실히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효율적인 전략이다. 즉 효과적인 분류와 선후를 파악하는 인지력, 공간확보 능력이 절실하다.
... 설거지감을 종류별로 나누고, 기름 묻은 프라이팬을 닦는 순서는 제일 뒤로 미루고, 이 많은 걸 건조대에 죄다 올리기는 불가능하니 씻은 그릇을 얹어둘 보조 건조대 놓을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둔다는 소리다.
그런데 오늘, 글쓰기 첫 단계로서의 설거지는 그간 피할 도리가 없어 억지로 해오던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 늘 하던 대로 그릇을 씻을 뿐인데.... '글쓰기'라는 목적이 더해져서 그런가? 매우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고무감이 느껴졌다!
여태껏 내 인생에서 설거지는 소모적인 일이지, 생산적인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산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설거지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경우라면) 내게는 그저 생활을 무너짐 없이 영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기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설거지가 처음으로 생산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생산성]. 이것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이슈다. 글쓰기를 열망하면서도, 글밥 먹기를 소망하면서도, 번역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약 십여 년간 실제로 글밥을 먹었으면서도 결국 글을 내려놓고 직장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였다. 번역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정말이지 적었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대개 서너 달이 걸리는데, 최종본을 넘긴 후 몇 달 뒤에 들어오는 번역료는 많아봤자 이삼백을 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책을 받아 번역한다 해도, 일 년에 버는 돈은 천만 원 남짓... 이걸 월급으로 환산하면 얼마지... 잠시만 눈물 좀 닦고...
번역한 책이 꽤 많이 쌓인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의식주를 책임져주는 바깥양반이 계셨기에 생활고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나아지는 바 없이 세월만 흐를수록 마음 밑바닥에는 '빌붙어 산다'는 자조의식이 나날이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그래도 소싯적에는 자존감 꽤나 높은 나였는데, 그 자존감을 바깥양반이 눈칫밥을 먹이며 짓밟지도 않았는데, 아니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는데, 혼자 집에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귓가에 환청처럼 간헐적으로 자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빌붙어 사는 기생충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