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가 이리 빨리 올 줄 미처 몰랐지
글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적어도 생각 없이 쓰는 건 아니다.
첫 문장을 시작했으면, 아무리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다고 해도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끝내겠다는 대략의 계획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계획 없이 그저 신나게 써대던 나는, 지난번 글을 발행해 놓고 어이없게 슬럼프에 빠졌다. 그것도 매일 출근도장 찍듯 글을 쓰겠노라고 결심한 지 불과 삼일만에. 그야말로 삼일천하, 작심삼일. 슬럼프로 곧장 수직낙하하여 전연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자기 연민 냄새가 풀풀 풍기는 지난 글의 마지막 문장이 치명적 패착이었다. 그 문장 하나로 야심 차게 시작한 글쓰기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애당초 나는 현재에 대해 쓰고 싶었다. 왜 내가 글을 쓰겠다고 퇴사했는지, 그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시절의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굴렀고 어떻게 진창을 헤매다가 어떻게 기어올라왔는지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건 좀 더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거나, 혹은 내가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한 후에나 쓸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설거지 얘기하다가 갑자기 기생충으로 빠져서는...
찐득한 슬럼프 속에 허덕이며 고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맘먹고 내가 기생충 운운하게 된 연유를 써볼까? 그럼 나의 경미한 우울증과 기질적 경쟁심과 그것을 억누르는 데 중점을 둔 엄마의 양육방식과 그로 인해 내 안에 형성된 뒤틀린 완벽주의 및 은밀한 욕심을 심리분석하듯 일일이 하나씩 늘어놓아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자기변명과 자기 연민, 그 모든 것이 과연 내가 퇴사까지 하면서 쓰고 싶었던 글일까? 정말? 진짜로?
무얼 써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얼 쓰고 싶은지, 무얼 쓰고 싶지 않은지는 확실했다. 나는 가벼운 글을 쓰고 싶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 아낌없이 담뿍 내리쬐는 햇살의 따스함과 설핏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청량함, 큰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느끼는 기꺼로움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내가 동경하는 삶의 모양에 관해, 그러한 삶을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해 쓰고 싶었다. 또 조금이나마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서 생활을 정갈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나의 노력과 그 노력의 기특함에 대해 쓰고 싶었다.
자기 꼬리를 쫓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설거지다. 지금 내 눈앞에는 작달막한 부엌의 전경이 펼쳐져있고 싱크대에는 여전히 설거지감이 쌓여있다. 감사하게도, 그리고 기특하게도 딱 한 끼 분량이다. 슬럼프에 빠져있으면서도 설거지는 잊지 않았다. 매끼 설거지를 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생각했다. 설거지감을 해치우며 글감을 쌓았다. 무얼 써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저기 쌓인 설거지를 해치울 요량이다. 잘 닦아 엎어놓은 그릇들과 깨끗한 싱크대를 마주하면 다음으로 쓸 글의 첫 문장이 반짝 떠오를지도 모르지. 안 떠오르면 또 어때. 어쨌든 나의 부엌은 말끔히 정돈될 테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단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