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by rutaro

요즘 나는 '취향 찾기'에 골몰하는 중이다.


뜻 취(趣), 향할 향(向).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선호하는 것이 곧 취향인 셈. 물론 누군가는 '그게 굳이 찾아야만 아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처럼 평생을 무색무취로 살아온 사람에게 취향이란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애써 찾아야 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나는 늘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부러운 사람도 참 많다... 조만간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라는 시리즈로 써도 될 듯). "난 이게 좋아" "저건 내 취향이랑 안 맞다" "어머 이건 딱 내 취향이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확고하게 아는 사람. 수십 가지 색과 모양이 알록달록한 옷들 중에서도 자기 취향인 단 하나의 스웨터를 고를 수 있는 사람. 누군가를 부러워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나는 취향이랄 게 없어서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부럽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그저 주는대로 입고 있는대로 썼다. 그다지 무난한 성격이 아닌데도 그랬다. 가정 형

편이 어려웠다면 그게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름 넉넉하게 자란 편이라 원한다면 내가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취향 레이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나? 그래서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도 엄마가 골라주는대로 쓰고, 사주는대로 입었던 것일까? 나는 왜 엄마의 취향을 내 취향인 양 받아들였을까? 엄마도 나 못지않게 본인 취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스스로에게 무감한 사람일수록 취향이 희미한지도 모른다. 취향을 '굳이' 찾아야 한다는 것은, 다르게 쓰자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인 이상 호불호가 없을 수는 없으니 나도 좋고 싫은 게 있을 텐데, 그걸 구체적으로 모른다는 건 결국 나를 모른다는 거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나의 호불호를 어찌 알겠으며 나 자신에 관한 데이터가 없는데 나만의 취향이 어찌 생기겠나.


이쯤 되자 취향이 없다는 게 정체성의 부재처럼 느껴진다. <향수>의 그르누이가 된 기분이다. 천재적인 후각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체취도 갖지 못한 그르누이. 물론 나는 딱히 천재적인 면모가 있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가 왜 살인을 불사할만큼 '체취'에 절실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내게도 나 자신을 잘 알아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글을 계속 쓰려면 '나'를 팔아야 하는데, 나에 대해 뭘 알아야 팔 것 아닌가!

그르누이에게는 체취, 나에게는 취향. 사람은 원래 자신에게 없는 걸 갖고 싶어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기 위해 그르누이는 살인을 해야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취향이라는 건 꼭 누군가를 해치지 않아도 찾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 '취향 찾기'에 시동을 걸었다. 취향을 찾으려면 우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보자. 보통 어떻게 되지?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자꾸만 보고 싶다. 이제 삼단논법을 적용해보자. 취향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면 자꾸 보고 싶다. 고로 자꾸 보고 싶다면? 그게 바로 내 취향이다!


그리하여 다음으로 이어질 글은 아마도 '취향 찾겠다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돈 꽤나 쓴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나는 가치 있는 소비를 했을 것인가! 궁금하다면 구독과 알림 설정...은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부디 괜찮게 읽힐 글 한편만 나와줘도 감지덕지다. 글을 쓰려고 자아성찰에 몰두하고, 그 결과로 취향을 탐색하게 되고, 취향 탐색한다고 돈을 쓰는 이 흐름이 또다시 글쓰기로 이어진다면 나름 가치 있는 소비이지 않으려나. 내 취향 탐색 소비의 결과가 조금 일찍 당도해준다면 다음 글은 사진이(!!) 함께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좀 더 생동감 넘치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오늘은 이 희망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무리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독서는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