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하나 되는

<상담과 코칭 이야기-부모와의 건강한 분화>

by 다정코치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관심이나 관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온다.

난 그 정도의 능력이 안 되는데 부모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모가 요구하는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나 방법과 너무 다르다고 느껴질 때도 그렇고, 지금껏 내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요구되는 착한 자녀에 대한 요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가 사랑하기에 주는 관심, 아이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기 위해 주는 관심이 대부분임에도 자녀는 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러한 부담은 자녀의 성향이나 출생 순위, 가정 분위기 등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 상황에 대응하는 자녀의 반응 양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에게 이렇게 요구하지 말라고 강하게 때로는 은근히 저항하는 자녀가 있는 반면, 자녀로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부담을 갖는 자신을 오히려 속으로 책망하고 그 마음을 없애려고 애쓰는 자녀도 있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워낙 공부며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편이라 부모님이 별로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고 (물론 추운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기 싫어서 잔소리 듣는 경우는 많았다.ㅋㅋ) 둘째라서 집안에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나에게는 별로 공유하지 않아서 집안 대소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쯤 집안에 관심이 없다는 부모님의 책망이 시작되었다. 난 공부 열심히 하고 속 썩이지 않는 일이 효도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나이가 들었으니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에게 공유해 준 적도 제대로 설명을 해준 적도 없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비난만 받으니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과 함께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딸로 느껴져서 힘들었다.


그 이후 부모의 요구와 다른 가치 속에서 사는 나는 늘 죄인이었다. 부모를 기쁘시게도 못하는 죄인,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데 부모님은 늘 못마땅하셨으니까 말이다. 부모의 요구가 사랑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에 부응할 수 없던 나는 부모님 앞에서 더욱 움츠러들었고 함께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멀리 떨어지고만 싶었다. 나에 대한 요구가 부담스러웠다.


이러한 부담의 기저에는 부모의 요구가 사랑이 아니라 내 안의 죄책감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는 생각, 부모의 요구가 부당하다거나 싫다거나 거부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나였다. 게다가 멀리 떨어지기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나였다. 내가 부모님을 거부하면 부모님이 나를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가족치료를 배우면서 나의 이러한 역동이 자녀가 부모으로부터 바르게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 수 없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의 동기는 사랑이지만 그 방법이 꼭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자녀가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어떻게 하든 부모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 안에서 부모님이 싫어해도 자신이 확신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녀가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내면의 고통이 나에게는 큰 미션이 되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20대를 보냈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복된 부분도 크지만, 나와 너무 다르게 자율성이 강한 남편을 통해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비합리적인 생각과 거절과 두려움의 감정을 해결해 온 것 같다. 남편은 강하게 저항하는 성향으로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주도적으로 이뤄낸 케이스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모에 대한 사랑과 부담을 동시에 가지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돌본다. 건강한 분화를 이룬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움츠러든 친구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시키는 친구가 있듯이, 나에게는 나와 사뭇 다른 남편이 있어 나의 중심을 찾아간 것 같다. 부모가 나를 잡고 있다기보다 내가 부모를 놓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내가 부모님의 손을 놓기로 결정한 것이 내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내가 부모님의 손을 놓아야 남편의 손을 잡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부모를 떠나는 일은 내가 건강한 부부관계를 이뤄갈 선행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내민 남편의 손을 내가 잡으려면 부모와 잡고 있는 손을 먼저 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쪽 손은 부모, 한쪽 손은 남편을 잡고 있어도 대략 난감이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다. 물론 양쪽 다 건강하고 적절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들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가정은 그리 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가능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한계상 쉽지 않다. 그런 가정의 경우는 이미 한번 서로의 손을 놓는 분화의 과정을 거친 이후의 모습일 거다.


부모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첫째나, 첫째 역할을 해온 둘째나 셋째들이 원가족과 현가족을 같은 수준으로 안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원가족을 봉양하거나 돌볼 수는 있지만 메인은 현가족이 되어야 한다. 현가족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때로 부모가 아파서 절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런 상황이 현가족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거나 소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현가족에게도 그렇지만 본인에게도 중요하다. 힘든 시간에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것은 현가족이어야 바람직하다. 그래서 현가족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도록 형성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원가족에서의 자신의 역할이나 모습을 그대로 배우자에게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현가족이 우선임에도 원가족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괴로움을 겪는다. 원가족에서 착한 아이로,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기에 늘 참고 자신의 욕구를 누르던 모습을 배우자에게 그대로 가져와 희생양처럼 힘들어도 표현 안 하고 참으면서 배우자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원망하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는 셈이다.


서로 양상은 다르지만 그렇게 원가족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배우자에게로 가져와 적용하면서 그 모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못하고 문제의 화살을 현가족에게 향한다. 특히 여전히 원가족의 중심에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 관계의 패턴은 바뀌지 않고 마음에서는 여전히 압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양상이 변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대부분 원가족이 여전히 자신의 돌봄이 필요하고 부담이 되는 분들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더 많이 호소한다.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았으면 새로운 가족에 맞게 기존의 나의 관계 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가족과의 건강한 관계 패턴을 세워가야 한다. 어쩌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원가족과의 관계에서의 부담감이 현재 가족 관계 안에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해야 돼서 하지만, 속으로는 부담스러운 그 관계가 현재 가장 만만하고 편한 배우자에게 분노로 표출되거나 비난의 화살로 향하진 않는지..


많은 부부들이 때에 맞는 부모와의 건강한 분화를 통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배우자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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